조봉암과 진보당 - 윤영기 정치·경제담당 에디터
2025년 12월 01일(월) 00:20
독립운동가이자 사회민주주의자였던 조봉암(1899~1959) 선생은 자유당 정권의 이승만을 위협했던 정적이었다. 1956년 5월 치러진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500여만표를 얻은 이승만에 맞서 216만표를 얻을 정도로 대중적 지지를 받았다. 전주·정읍·목포·완도 지역을 비롯해 전국 23곳에서는 이승만을 꺾었다. 조봉암이 여세를 몰아 같은 해 11월 10일 창당한 진보당은 서구 사회주의 맥을 계승한 대한민국 진보정당으로 평가 받는다.

진보당의 꿈은 ‘진보당 사건’으로 꺾였다. 자유당 정권이 주도하고 제3당의 성장에 위협을 느낀 민주당이 동조한 허위, 날조 사건이었다. 조봉암을 비롯한 진보당 간부들이 간첩죄와 국가보안법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되고 당의 등록까지 취소됐다.

육군 특무대는 육군첩보부대(HID) 소속으로 북과 남을 오가던 양명산이 조봉암과 김일성을 연결했다고 꾸몄다. 날조한 기소였기 때문에 1심에서 조봉암만 불법무기(총기) 부문이 일부 인정돼 징역 5년을 선고 받았고 나머지 피고인은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양명산은 2심 재판에서 ‘특무대의 회유와 압박으로 이들이 써준 시나리오에 따랐을 뿐’이라고 1심 진술을 전부 번복했다. 핵심 증인이자 공범이 검찰의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했으나 서울고등법원은 검찰 구형대로 조봉암과 양명산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조봉암 변호인단은 대법원 상고까지 기각되자 재심을 청구했으나 무위에 그쳤다. 양명산에 대한 사형이 1959년 7월 29일 집행돼버린 것이다. 대법원은 다음 날 조봉암의 재심을 기각하고 31일 사형을 집행했다. 사법사상 치욕으로 남아있는 ‘사법살인’이다.

대법원은 2011년 재심에서 조봉암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시절 자신의 사법리스크를 거론하면서 조봉암을 소환한데 이어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최근 조봉암 선생 묘역을 참배하고 “죽산의 길을 잇겠다”고 선언했다. 조봉암 선생 묘역을 정당 대표 자격으로 참배한 것은 조 대표가 처음이라고 한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조봉암의 정신을 현실 정치에서 어떻게 구현할지 궁금하다.

/윤영기 정치·경제담당 에디터 penfoot@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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