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정부로 관료·전문가 권력을 넘어서야 - 이민철 광주 광산구도시재생공동체센터장
2025년 06월 13일(금) 00:00
이재명 정부가 ‘국민주권 정부’를 표방하며 출범했다. 촛불혁명과 응원봉 혁명을 통해 시민의 힘으로 탄생한 정부가 진정한 시민정부로 나아가려면 이제 제도와 정치문화, 정책결정 구조 전반에 걸쳐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그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다음 단계를 여는 길이며 K-민주주의의 선도모델로 가는 출발점이다.

시민정부는 단순히 대의제를 보완하는 일이 아니다. 시민을 정책의 수요자나 평가자로 머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의 공동 설계자이자 실행자로 자리매김하는 정부 운영이다. 시민은 단지 선거 때 투표하는 존재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공동의 힘으로 해결하는 주체다. 이런 시민성을 회복시키는 것이 시민정부의 본질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의 제도권 정치는 여전히 대의제의 틀 안에 갇혀 있다. 정당과 관료, 전문가 중심의 정책 설계는 시민의 경험과 상상력을 포용하지 못한다. 그 결과 행정 ‘참여’는 형식적인 절차로 전락하고 ‘주권자’는 투표 이후 소외되고 만다. 이런 구조로는 기후위기, 지역소멸, 불평등 같은 복합적 위기를 풀 수 없다. 이제는 전문가 중심의 정치를 넘어 시민 중심의 분산된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시민정부를 실현하려면 세 가지가 시급하다. 첫째, 숙의민주주의의 제도화다. 대선 과정에서 이재명 후보와 더불어민주당은 국민공회 설치, 시민사회기본법 제정 및 시민사회위원회 설치, 민주시민교육지원법 제정 등 세 가지 약속을 했다. 이는 시민이 실질적 권한을 갖고 공공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새로운 정치문화의 기반이다. 이재명 정부가 관련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예산과 행정 자원을 투입해 지체 없이 추진하면 좋겠다.

둘째, 지방분권과 풀뿌리 마을정부의 과감한 실현이다. 중앙에서 지역으로의 권한과 예산 이양은 형식적 권한 이전이 아니라 지역 주민이 스스로 정책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시민정부-마을정부 체계의 구축이어야 한다. 시민정부는 마을 단위의 자기결정권, 풀뿌리 민주주의 위에 뿌리내릴 수 있다. 이를 위해 지방정부 법제 정비와 시민자치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 주민자치회,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생활권 단위의 자치조직들이 실질적 권한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교육, 돌봄, 기후, 문화 등 일상 영역에서 자치 실험을 촘촘히 축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디지털 기반의 시민 참여 플랫폼 구축이다. 시민은 스마트폰으로 마을 회의에 참여하고 온라인 공론장에 의견을 제안하며 정책 과정 전반에 상시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투명한 정보 공개, 공공 데이터의 개방은 필수다.

디지털 기술은 시민 참여를 확장하는 도구가 되어야 하며 이것이야말로 디지털 강국 대한민국이 선도할 수 있는 K-민주주의 모델이다. 지역 맞춤형 디지털 공론장이 각 지자체와 생활권 단위로 구축되어야 한다. 디지털 플랫폼은 단순히 민원을 접수하는 창구가 아니라 숙의와 토론, 공동의제 도출이 가능한 ‘디지털 공론장’으로 기능해야 한다.

시민정부는 단지 행정의 일부를 시민에게 위임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 문제를 공동의 책임으로 인식하고 함께 해결해가는 민주주의의 재구성이다. 이를 위해 정부와 정당, 시민사회 모두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시민도 단순한 권리의 요구자가 아니라 책임과 권한을 함께 지닌 공적 주체로서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정치와 행정이 그 가능성을 열고 시민이 그 안에서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시민정부는 ‘함께 결정하고 함께 책임지는 민주주의’다. 대의제를 넘어 숙의와 참여, 분권과 연대가 어우러지는 새로운 시대의 정치질서다. 이재명 정부가 시민정부로 나아간다면 그것은 단지 한 정부의 성공을 넘어 한국 민주주의가 성숙한 단계로 이행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그 전환의 기회를 현실로 만들고 세계 민주주의의 미래를 한국이 함께 설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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