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 김미경 광주대 보건복지대 학장, 차기 한국여성학회 회장
2025년 06월 10일(화) 00:00 가가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인데 쩨쩨하게 굴지마고 가슴을 좍 펴라~”. 민주화를 갈망하며 대학가 선술집에서 ‘사노라면’을 부르던 1970~80년대는 독재 하 엄혹한 시절이었음에도 청춘들이 희망이라는 것을 얘기하던 시대였다. 개천에서 용이 났고 연애를 하고 가진 것 없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1950년 1인당 GDP 23달러였던 나라가 2016년 GDP 세계 10위에 올랐고 2024년 1인당 GDP 3만6745달러를 넘어 4만 달러 시대를 눈 앞에 두고 있다.
베이비부머들은 최소 4~5명의 아이를 낳았던 그들의 부모세대와 달리 1~2명의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베이비부머 1세대가 은퇴를 하기 시작하는 시점에 우리사회는 고령사회가 되었고 마지막 베이비부머세대가 은퇴하는 시점에 초고령사회가 될 것이다. 베이비부머들의 자식인 MZ세대들은 그 부모세대 보다 잘 사는 나라에서도 연애를 하지 않는다. 결혼도 미루고 아이를 낳을 생각도 없다. 집과 경력까지 포기한 소위 ‘N포 세대’라 불리는 그들은 스스로를 ‘희망을 잃은 세대’라고 여긴다. 세계 1위를 갱신하는 이혼율, 저출산율, 자살율이 그들이 목도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현 주소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그들의 부모세대를 부양해야 한다.
한국전쟁 후 75년 동안 1인당 GDP는 1600배 정도 높아졌다. 우리의 행복지수도 1600배 정도 높아졌을까? 대한민국의 GDP는 이미 2016년에 세계 10위에 도달했지만 1인당 GDP는 세계 30위권이다. OECD국가 삶의 만족도 역시 30위권에 머물러 있다.
가족, 노동, 성평등 정책을 연구하는 필자는 사회의 소외된 계층을 위한 정책을 통해 불평등을 해소할 때 우리 사회는 더욱 정의롭게 진보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산업화 초기에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인권과 노동권, 생존권을 위해 싸워야 했다면 발전된 산업사회에서는 가진 자들이 소외된 계층을 위해 연대하는 복지정책을 통해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공공의 장에서 타당한 주장에 근거해 의사소통을 하는 시민들의 성찰성, 즉 시민의식이다. 시민의식은 자신의 특권에 대한 성찰과 소외된 계층에 대한 연대를 전제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갈수록 보수와 진보, 여성과 남성, 노인과 청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최근 탄핵 국면과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이러한 현실은 여실히 드러났다. 그 어떤 계층도 양보하려 하지 않고 자신들의 정의만을 타당한 것이라 주장한다. 본인들이 어떤 특권을 가지고 있는지 성찰하지 않고 상대만을 문제라고 한다. 복지국가는 이 시스템을 통해 이득만을 보려고 할 때 작동하지 않는다. 일 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자립해야 하고 소득이 있는 사람은 세금을 내야만 작동한다. 일하려고 하지 않고 세금을 내려고도 않으면서 복지혜택만을 누릴려고 한다면 국가는 바로 파산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최우선적으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고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세금을 내서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처지의 사람들을 위해 연대해야 한다.
타인과 연대할 수 있는 의사소통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타인을 비판하는 눈보다 자신을 성찰하는 안목을 더 키워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타인만을 성찰하는 1차 관찰자의 눈이 아닌 우리가 처한 환경 속에서 매일매일 어떠한 선택을 통해 체계를 만들어 가고 있는지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2차 관찰자적 관점이 필요하다”는 독일 사회학자 루만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필자는 최근 사회를 비판만 하던 입장에서 내가 하는 선택이 어떤 사회체계를 만들고 있는가를 성찰할 수 있는 2차 관찰자적 관점을 키워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갖고 있지 못한 것을 남은 갖고 있다는 상대적 박탈감을 내려놓고 타인이 가지고 있지 못한 나의 특권이 무엇인지를 성찰하고 타인을 위해 나의 특권을 내려놓고 연대할 수 있을 때 차이와 다양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환경에 대한 새로운 선택을 통해 사회체계를 바꾸어 갈 수 있는 소통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가능해질 때 현재 갈라치기 정치를 통해 극단화되어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보수와 진보, 여성과 남성, 노인과 청년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해법에 좀 더 다가갈 수 있게 될 것이라 희망해 본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갈수록 보수와 진보, 여성과 남성, 노인과 청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최근 탄핵 국면과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이러한 현실은 여실히 드러났다. 그 어떤 계층도 양보하려 하지 않고 자신들의 정의만을 타당한 것이라 주장한다. 본인들이 어떤 특권을 가지고 있는지 성찰하지 않고 상대만을 문제라고 한다. 복지국가는 이 시스템을 통해 이득만을 보려고 할 때 작동하지 않는다. 일 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자립해야 하고 소득이 있는 사람은 세금을 내야만 작동한다. 일하려고 하지 않고 세금을 내려고도 않으면서 복지혜택만을 누릴려고 한다면 국가는 바로 파산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최우선적으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고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세금을 내서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처지의 사람들을 위해 연대해야 한다.
타인과 연대할 수 있는 의사소통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타인을 비판하는 눈보다 자신을 성찰하는 안목을 더 키워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타인만을 성찰하는 1차 관찰자의 눈이 아닌 우리가 처한 환경 속에서 매일매일 어떠한 선택을 통해 체계를 만들어 가고 있는지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2차 관찰자적 관점이 필요하다”는 독일 사회학자 루만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필자는 최근 사회를 비판만 하던 입장에서 내가 하는 선택이 어떤 사회체계를 만들고 있는가를 성찰할 수 있는 2차 관찰자적 관점을 키워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갖고 있지 못한 것을 남은 갖고 있다는 상대적 박탈감을 내려놓고 타인이 가지고 있지 못한 나의 특권이 무엇인지를 성찰하고 타인을 위해 나의 특권을 내려놓고 연대할 수 있을 때 차이와 다양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환경에 대한 새로운 선택을 통해 사회체계를 바꾸어 갈 수 있는 소통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가능해질 때 현재 갈라치기 정치를 통해 극단화되어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보수와 진보, 여성과 남성, 노인과 청년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해법에 좀 더 다가갈 수 있게 될 것이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