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이 생각나는 아들, 딸…잔인한 4월 없었으면”
2025년 04월 16일(수) 20:35 가가
세월호 11주기 선상 추모식·기억식
유가족·416재단 등 70여명 진도 맹골수도서 추모식
‘세월호 부표’ 위로 흩날리는 단원고 벚꽃에 흐느낌만
목포신항서 기억식…이태원·제주항공 참사 유족 동행
유가족·416재단 등 70여명 진도 맹골수도서 추모식
‘세월호 부표’ 위로 흩날리는 단원고 벚꽃에 흐느낌만
목포신항서 기억식…이태원·제주항공 참사 유족 동행
“1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픔이 가시질 않습니다. 너무나도 보고 싶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게는 잔인한 달, 4월이 왔다. 수학여행을 갔다가 차가운 바다 속에서 구조를 기다렸을 아이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하늘의 별이 된 지 11년이 지났다.
세월호 참사 11주기 선상 추모식이 열린 16일 오전 7시 30분께 목포시 죽교동 목포해경전용부두를 찾은 0416단원고가족협의회 세월호 유가족들은 가장 가까이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진도 앞 바다로 출항하기를 기다리고 있았다.
세월호 유가족 27명을 비롯한 416재단 관계자 등 75명은 이날 오전 7시 30분 해경 함정 3015함(3000t)에 탑승해 사고 현장인 진도 맹골수도로 출항했다.
배로 3시간 걸려 도착한 진도군 조도면 맹골수도 앞바다. 꽃다운 아이들을 집어삼킨 바다는 ‘세월호’가 적힌 노란 부표를 흔들고 있었다.
참사 시각인 오전 10시 30분. 추모식이 진행됐다. 뱃전에서 희생자 304명을 기리는 조포(弔砲) 포음 3발이 울렸다.
희생된 단원고 학생 250명의 이름이 불리자 유족들은 하나둘 흐느꼈고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모든 아이들의 이름이 하나씩 불릴 때마다 유족들은 이름 하나하나를 되새기며 눈물을 훔치거나 눈을 질끈 감고 두 손을 모았다.
유가족들은 자녀들의 이름을 목놓아 외치며 바다를 향해 꽃을 던졌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애달픈 목소리와 울부짖음에도 아무 대답도 없었다.
한 희생자 아버지는 “아빠 소리 들리냐, 아빠는 매일 네가 보고 싶어 죽겠다. 아빠가 헌화할게 잘 받아라”고 소리쳤다.
다른 희생자 어머니는 “엄마는 여기 다녀가야 한 해가 시작되는 것 같아. 사진을 보면 얼굴은 생각이 나는데 목소리가 생각이 안 나. 행복하게 잘 지내야해”라고 울부짖었다.
유가족들은 또 단원고 교정에 핀 벚꽃도 참사 해역에 흩뿌렸다. 바다 위에 뿌려진 흰 국화와 분홍색 벚꽃은 슬픔을 더했다.
유가족들은 노란 리본에 소원을 적어 선상에 마련된 벚꽃나무 조형물에 매달기도 했다. 벚꽃나무는 ‘사랑하는 딸 영원히 잊지 않을게’, ‘안전한 대한민국이 되길’, ‘11년, 잊지 않겠습니다’ 등 메시지가 적힌 노란 리본으로 가득했다.
김정화 0416단원고가족협의회 위원장은 “오늘 선상추모식을 준비하면서 비가 내리는 걸 보고 우리 아이들의 눈물이 아닌가 생각했다. 4월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힘든 날인데 춥기까지 하니 마음이 더 힘들었다”며 “4월 달력을 찢어버릴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인사말 중 목에 메어 몇 번이나 말을 잇지 못한 김 위원장은 “교복 입은 학생들만 보면 세상에 없는 걸 알면서도 혹시 내 아이가 아닐까 마음을 졸이며 따라다녔다. 지금은 장성한 청년들을 보면 어떤 모습으로 성장했을까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다”며 “우리 아이들이 보고 싶고, 너무나 미안하고 사랑한다. 대한민국이 안전하고 행복한 나라가 되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단원고 2학년 3반 고(故) 김빛나라양 아버지 김병권(60)씨는 “보고 싶은 아이를 왜 바다를 보며 소리쳐야하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한 해 한 해 잊히는 게 아니라 더 많이 생각난다”며 눈물을 보였다.
사고 이후 ‘아빠 무서워. 빨리 와 줘’라고 전화 온 딸에게 ‘선생님 말씀 듣고 기다려라’라고 말한 건 김씨에게 가장 후회스럽고 괴로운 일로 남았다. 김 씨는 “지금이라도 숨기지 말고 진상규명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선상 추모식을 마치고 세월호 선체가 놓여있는 목포 신항으로 옮겨 기억식 행사를 치렀다.
세월호잊지않기목포지역공동실천회의가 개최한 기억식에는 0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4·16연대뿐 아니라 10·29이태원참사 유족과 12·29제주항공 참사 유족도 함께했다.
그날의 아픔이 묻어있는 녹슨 세월호 선체 앞에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곡과 ‘천개의 바람’ 연주가 울려퍼졌고, 시민들도 희생자들을 기렸다.
2학년 8반 고 이호진군 어머니 김성하씨가 먼저 떠난 아들에게 쓴 편지를 낭독하자 눈물을 훔치며 흐느끼는 참가자들도 눈에 띄었다.
김씨는 “호진아, 네가 태어나서 처음 말이 트이고 엄마를 불렀을 때 벅차고 감격했는데 네가 떠난지도 열하고도 한 해째 또 그날이 됐다”며 “벚꽃나무 옆에서 활짝 웃는 네 사진을 보고 그 나무를 찾아서 해마다 사진을 찍고 한참을 서있다 오곤 했다”고 말했다.
10·29이태원참사 피해자 고 이해린씨 아버지 이종민씨는 연대사에서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는 국가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지 못해 발생한 필연적 사고다. 국가는 침묵했고, 방치했으며 더욱 비통한 것은 참사 이후 진상규명과 책임소재 파악을 방해했다”며 “이제 국가의 무능으로 소중한 생명을 잃을 일은 없어야 한다. 정부의 잘못을 명백히 밝혀내고 책임자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목포·진도 글·사진=양재희 기자 heestory@kwangju.co.kr
세월호 유가족들에게는 잔인한 달, 4월이 왔다. 수학여행을 갔다가 차가운 바다 속에서 구조를 기다렸을 아이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하늘의 별이 된 지 11년이 지났다.
세월호 유가족 27명을 비롯한 416재단 관계자 등 75명은 이날 오전 7시 30분 해경 함정 3015함(3000t)에 탑승해 사고 현장인 진도 맹골수도로 출항했다.
배로 3시간 걸려 도착한 진도군 조도면 맹골수도 앞바다. 꽃다운 아이들을 집어삼킨 바다는 ‘세월호’가 적힌 노란 부표를 흔들고 있었다.
희생된 단원고 학생 250명의 이름이 불리자 유족들은 하나둘 흐느꼈고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모든 아이들의 이름이 하나씩 불릴 때마다 유족들은 이름 하나하나를 되새기며 눈물을 훔치거나 눈을 질끈 감고 두 손을 모았다.
한 희생자 아버지는 “아빠 소리 들리냐, 아빠는 매일 네가 보고 싶어 죽겠다. 아빠가 헌화할게 잘 받아라”고 소리쳤다.
다른 희생자 어머니는 “엄마는 여기 다녀가야 한 해가 시작되는 것 같아. 사진을 보면 얼굴은 생각이 나는데 목소리가 생각이 안 나. 행복하게 잘 지내야해”라고 울부짖었다.
유가족들은 또 단원고 교정에 핀 벚꽃도 참사 해역에 흩뿌렸다. 바다 위에 뿌려진 흰 국화와 분홍색 벚꽃은 슬픔을 더했다.
유가족들은 노란 리본에 소원을 적어 선상에 마련된 벚꽃나무 조형물에 매달기도 했다. 벚꽃나무는 ‘사랑하는 딸 영원히 잊지 않을게’, ‘안전한 대한민국이 되길’, ‘11년, 잊지 않겠습니다’ 등 메시지가 적힌 노란 리본으로 가득했다.
김정화 0416단원고가족협의회 위원장은 “오늘 선상추모식을 준비하면서 비가 내리는 걸 보고 우리 아이들의 눈물이 아닌가 생각했다. 4월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힘든 날인데 춥기까지 하니 마음이 더 힘들었다”며 “4월 달력을 찢어버릴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인사말 중 목에 메어 몇 번이나 말을 잇지 못한 김 위원장은 “교복 입은 학생들만 보면 세상에 없는 걸 알면서도 혹시 내 아이가 아닐까 마음을 졸이며 따라다녔다. 지금은 장성한 청년들을 보면 어떤 모습으로 성장했을까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다”며 “우리 아이들이 보고 싶고, 너무나 미안하고 사랑한다. 대한민국이 안전하고 행복한 나라가 되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단원고 2학년 3반 고(故) 김빛나라양 아버지 김병권(60)씨는 “보고 싶은 아이를 왜 바다를 보며 소리쳐야하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한 해 한 해 잊히는 게 아니라 더 많이 생각난다”며 눈물을 보였다.
사고 이후 ‘아빠 무서워. 빨리 와 줘’라고 전화 온 딸에게 ‘선생님 말씀 듣고 기다려라’라고 말한 건 김씨에게 가장 후회스럽고 괴로운 일로 남았다. 김 씨는 “지금이라도 숨기지 말고 진상규명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선상 추모식을 마치고 세월호 선체가 놓여있는 목포 신항으로 옮겨 기억식 행사를 치렀다.
세월호잊지않기목포지역공동실천회의가 개최한 기억식에는 0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4·16연대뿐 아니라 10·29이태원참사 유족과 12·29제주항공 참사 유족도 함께했다.
그날의 아픔이 묻어있는 녹슨 세월호 선체 앞에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곡과 ‘천개의 바람’ 연주가 울려퍼졌고, 시민들도 희생자들을 기렸다.
2학년 8반 고 이호진군 어머니 김성하씨가 먼저 떠난 아들에게 쓴 편지를 낭독하자 눈물을 훔치며 흐느끼는 참가자들도 눈에 띄었다.
김씨는 “호진아, 네가 태어나서 처음 말이 트이고 엄마를 불렀을 때 벅차고 감격했는데 네가 떠난지도 열하고도 한 해째 또 그날이 됐다”며 “벚꽃나무 옆에서 활짝 웃는 네 사진을 보고 그 나무를 찾아서 해마다 사진을 찍고 한참을 서있다 오곤 했다”고 말했다.
10·29이태원참사 피해자 고 이해린씨 아버지 이종민씨는 연대사에서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는 국가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지 못해 발생한 필연적 사고다. 국가는 침묵했고, 방치했으며 더욱 비통한 것은 참사 이후 진상규명과 책임소재 파악을 방해했다”며 “이제 국가의 무능으로 소중한 생명을 잃을 일은 없어야 한다. 정부의 잘못을 명백히 밝혀내고 책임자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목포·진도 글·사진=양재희 기자 heestory@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