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박기-박성천 문화부장
2025년 04월 14일(월) 00:00
개발 예정지의 땅을 시세보다 비싸게 팔기 위해 미리 선점하는 행위를 ‘알박기’라고 한다. ‘황금알을 기대하며 알을 땅에 박는다’라는 의미로 주로 건물이나 토지 분쟁에 자주 등장한다. 즉 알짜배기 땅을 선점해 땅값을 예상보다 훨씬 부풀려 시세차익을 얻으려는 행위가 이에 해당한다.

일반적인 사례와 달리 반대의 알박기도 있다. 오랫동안 살아온 터전에서 개발사업으로 불가피하게 이주를 해야 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개발업체 측이 지나치게 적은 보상금을 제시해 소유주가 어쩔 수 없이 버티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원만히 해결되면 좋지만 그렇지 않을 시 개발업체는 문제의 토지를 제외하고 개발을 하거나 도로를 내기도 한다.

오늘날에는 개발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알박기가 성행한다. 차박과 캠핑이 인기를 끌면서 캠핑카와 캠핑트레일러를 공원이나 무료주차장에 장기간 주차해둔 얌체족들이 늘고 있다. 목이 좋거나 주차하기 좋은 곳에 차를 방치하는 바람에 정작 주차장을 이용해야 할 주민들은 피해를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 파면 이후 정치권에서 신종 ‘알박기’가 등장해 이목을 끌고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이완규 법제처장을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원내 정책수석 부대표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은 최소한의 현상 유지 정도라는 게 헌법학자들의 동일한 의견”이라고 언급했다. 사실 이 법제처장은 12·3 비상계엄 직후 이른바 ‘안가 회동’에 참석해 ‘내란 방조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수사까지 받은 인물이다.

한 대행의 ‘알박기 인사’는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그는 지난해 말 “헌법기관 임명을 포함한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 권한 행사는 자제하라는 것이 우리 헌법 정신”이라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내란 방조 혐의’로 수사가 진행 중인 인물을 헌법재판관에 지명한다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다. 단순한 차원의 ‘알박기’를 넘어 ‘내란 종식’을 간절히 염원하는 국민들 가슴에 ‘대못 박기’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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