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중산층 - 박진표 경제부장
2025년 03월 26일(수) 22:00
중산층(中産層)은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중간쯤에 있는 ‘허리층’을 뜻한다. 국가나 시대별로 개념에는 차이가 좀 있다.

1980년대 우리나라는 월 소득 50만~100만원, 자가소유 주택 또는 아파트 거주, 자녀 대학 진학 가능, 피아노·컬러 TV·냉장고·세탁기 등 가전제품 보유, 국내 여행 가능 등의 조건을 충족하면 중산층으로 여겼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경제성장이 가속화하면서 중산층 조건에 소형차 이상 자가용 소유가 포함됐다.

‘학생 인권’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던 그 시절, 신학기만 되면 담임교사는 ‘가정환경 조사’라며 반 학생을 교실에 모아놓고 컬러 TV 등의 보유 여부를 거수방식으로 공개 조사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친구 사이에 빈부 격차를 확인하는 자리가 됐다.

1990년대는 우리나라 중산층의 최대 전성기로 꼽힌다. 소득 수준은 월 평균 150만~300만원으로 높아졌고 현대 쏘나타나 대우 프린스 등 국산 중형차 보유는 중산층의 상징이 됐다. 해외여행 자유화와 함께 해외여행 가능 여부도 중산층 판단 조건 중 하나였다.

1990년대 초 70%까지 올라섰던 중산층의 전성기는 1997년 IMF 외환위기를 전후해 폭삭 내려 앉았다. 2000년대 들어서는 40%대로 뚝 떨어졌고 코로나19가 덮친 2020년 이후에는 지갑조차 열지 않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17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산층 가구의 2020~2024년 실질소비는 코로나19 직전보다 부진했다. 대조적으로 같은 기간 폭넓은 국가지원을 받은 저소득층과 경기 영향을 잘 받지 않는 고소득층은 회복세를 보였다.

중산층 가구의 여윳돈도 2019년 4분기(65만 3000원) 이후 5년 만(2024년 4분기)에 다시 70만원 아래인 65만 8000원으로 떨어졌다. 가계 여윳돈은 소득에서 이자·세금 등 비소비지출과 의식주 비용 등 소비지출을 뺀 금액으로, 중산층과 달리 저소득층과 고소득층 모두 늘었다고 한다. 중산층의 붕괴는 국가 경제 기반 자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산층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박진표 경제부장 luck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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