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는 없다 - 이보람 예향부 차장
2025년 03월 25일(화) 22:00
초등학교 1~2학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집 마당에서 통조림 캔에 줄을 매달아 안에 불을 붙이고 뱅글뱅글 돌리며 쥐불놀이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불씨가 튀었는지 잔디마당에 불이 붙더니 순식간에 공간을 넓혀가며 타들어갔다.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고 방안에 있던 어른들이 달려 나와 간신히 끌 수 있었다. 어린 여자아이 혼자서 쥐불놀이 깡통을 만들었을 리는 없고 분명 오빠와 함께였을 텐데 혼난 사람은 혼자였다. 세 살 터울 오빠는 잽싸게 도망갔던 게 분명하다. 작은 불씨 하나로 집을 잃을 뻔 했던 해프닝이었다.

전국 곳곳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하면서 피해가 커지고 있다. 지난 주말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은 바람을 타고 안동으로 확산되면서 소방차 수백 대와 소방대원 수천 명이 동원된 진화작업에도 불길이 쉽게 잡히지 않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경남 산청, 울산 울주 등 전국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45건의 산불이 발생하면서 인명피해로 이어지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려왔다. 연일 전송되는 산불 재난경보 메시지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봄철은 유난히 산불이 많이 발생한다. 마른 나뭇잎과 가지들이 불쏘시개가 되어 순식간에 산을 집어 삼키고 건조한 날씨와 강한 바람이 이어지며 대형 산불로 번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여기에 인간의 부주의가 더해지면서 결국 재앙이 되고 만다. 이번 대형 산불의 원인도 대부분 실화(失火)로 파악되고 있다.

의성 야산에서 난 불은 성묘객이 묘지를 정리하던 중 실수로 냈다고 진술했으며 산청의 산불 역시 농장주가 예초기로 풀을 베던 중 불씨가 튀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울주 산불은 농막에서 나온 용접 불꽃에서, 김해에서 발생한 불은 과자봉지를 태우던 과정에서 산으로 번진 것으로 추정된다는 소식이다. 한순간의 실수와 방심이 불러낸 결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수십 년 키운 나무들은 한 순간에 잿더미가 되고 복구에는 그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오늘도 바람이 거세다. 누군가의 손에 작은 불씨 하나 들려있진 않은지. ‘설마’, ‘나는 아니겠지’ 라는 어리석은 생각은 부디 버려주길.

/이보람 예향부 차장 bora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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