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의 언어 - 송기동 예향부장
2025년 03월 17일(월) 21:30
겨울에서 봄으로 접어드는 시기에 피어나 ‘봄의 전령’으로 불리는 꽃이 복수초(福壽草)다. 그런데 남도에서는 눈 속에서 피는 복수초의 모습을 여간해서는 보기 힘들다. 개화할 무렵 눈이 오더라도 봄 기운에 금세 녹아버리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시골마을 골짜기에서 활짝 핀 복수초 무리를 봤다. 불과 2주 전에는 온통 눈으로 뒤덮여있던 곳이었다. 혹독한 추위를 이기고 척박한 땅에서 꽃망울을 틔운 복수초 자태는 경이로웠다. 복수초가 눈 속에서도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울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식물 세밀화가이자 원예학 연구자인 이소영은 지난해 펴낸 ‘식물에 관한 오해’(위즈덤하우스)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복수초는 글리세롤이란 부동액 성분으로 인해 영하 10도 이하의 온도에서도 얼지 않고 스스로 열을 발산해 눈과 얼음을 녹이고 꽃을 피운다. 열을 발산함으로써 다른 식물보다 이른 계절에 꽃을 피울 수 있고 과도한 수분(受粉) 경쟁을 피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막바지 꽃샘추위가 닥쳤다. 느닷없는 강추위 속에서도 복수초를 비롯해 많은 봄꽃들이 어김없이 피어나고 있다. 이달 초부터 한달 내내 순천 홍매화와 광양 매화, 강진 백련사 동백, 구례 산수유, 신안 선도 수선화 등 봄꽃 축제가 잇따라 열린다.

온갖 생물이 만화방창(萬化方暢)하는 봄날에 상춘(賞春)의 발걸음을 붙잡는 건 엄혹한 시국이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이후 정치권에서는 거짓말과 혐오, 부정의 언어들만 난무했다. 반대로 봄꽃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분명 긍정과 희망의 언어를 상춘객들에게 들려줬을 것이다. 차가운 광장에서 연대하며 응원봉을 든 시민들은 겨울을 이겨낸 복수초와 다름없다. 한겨울 추위보다 더하게 시민들의 몸과 마음을 꽁꽁 얼어붙게 만든 12·3내란 정국도 헌법재판소의 현명한 탄핵 선고를 통해 ‘봄눈 녹듯’ 풀려야 할 것이다. 이제 정치의 ‘새봄’을 맞아야 한다.

“어린 고양이가 처음으로 담을 넘보듯이/ 지난해에 심은 구근(球根)에서 연한 싹이 부드러운 흙을 뚫고 올라오네/ 장문(長文)의 밤/ 한 페이지에 켜둔/ 작은 촛불” (문태준 시인 ‘새봄’ 전문)

/송기동 예향부장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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