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가는 마음, 윤성희 지음
2025년 03월 14일(금) 00:00
‘느리게 가는 우체통’이 있다. 나는 이모와 함께 그 우체통을 찾으러 가는 길이다. 이들은 왜 우체통을 찾아 나선 것일까. 이야기는 이렇다. 이모는 1년 전 남자친구에게 엽서를 썼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남자는 이모와 헤어지고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다. 흥미로운 것은 엽서에 쓰여 있는 주소에 여전히 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모는 그 엽서가 그 남자에게 도착하기 전에 찾으러 가자고 나에게 부탁을 한 것이다. 이모의 제안은 이해하기 어려운 엉뚱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나는 우체통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 편지를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윤성희 창작집 ‘느리게 가는 마음’에 실린 동명의 표제작 내용이다. 최근 윤 작가가 펴낸 이번 창작집은 모두 8개의 단편이 실려 있다. 지난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레고로 만든 집’이 당선된 후 창작활동을 펼쳐온 작가는 삶의 이면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간결한 문체로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왔다.

창작집에 실린 소설들은 평범한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법사들’, ‘타임캡슐’, ‘느리게 가는 마음’, ‘자장가’, ‘웃는돌’, ‘해피 버스데이’, ‘여름엔 참외’, ‘보통의 속도’는 저마다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가 물 흐르듯 유연하게 펼쳐진다.

지금까지 현대문학상을 비롯해 황순원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한국일보문학상, 김승옥문학상, 동인문학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한 저력에서 보듯 작가의 작품은 독자들과 평자들에게 믿음을 준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응결된 삶과 얼굴을 행간에 부려놓는 솜씨는 윤 작가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다. 다감하면서도 부드러운 필치가 선사하는 소설의 맛은 잔잔한 여운을 준다. <창비·1만7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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