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팬 - 김미은 여론매체부장
2025년 03월 06일(목) 00:00
지난해 인천공항을 찾았을 때 언론에서나 접했던 장면을 목격했다. 이른 새벽임에도 사람들이 몰려 있어 무슨 일인가 싶었다. 망원렌즈가 장착된 일명 ‘대포’라 불리는 카메라를 든 사람 등 수 백명의 시선은 공항 입구를 향해 있었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남성 아이돌 그룹이 손을 흔들며 들어왔다. 귀가 찢어지는 환호성과 함께 그들의 동선을 따라 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름의 규칙이 있는 것 같았다. 팬층은 남녀노소 다양했다.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는 그들을 촬영하기 위해 높은 사다리에 올라가 셔터를 누르는 모습은 아슬아슬하게 보였다.

예술가에 환호하는 팬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1811~1886)는 수많은 팬을 몰고 다닌 스타였다. 쇼맨십도 있었던 그는 자신의 얼굴이 정면보다 측면이 더 낫다는 이유로, 관객들이 자신의 옆모습을 보도록 하기 위해 피아노를 돌려 놓고 연주했다. 현재의 피아노 공연 무대 형태는 그렇게 탄생했다. 리스트의 열성팬은 유명하다. 그가 공연중에 사용했던 장갑이나 손수건을 차지하기 위해 싸움을 하고 그의 머리카락을 자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이런 현상은 리스트마니아, 리스트피버라고 불렸다.

국내에서는 스케줄에 상관 없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연예인의 사생활(私生活)까지 알아내려고 밤낮 없이 쫓아다니며 스토킹하는 ‘사생팬’이 문제가 되곤 한다.

며칠 전 인기 그룹 BTS 등 유명 연예인의 항공권 정보를 빼돌려 팬들에게 판매해 수익을 챙긴 외국 항공사 직원이 경찰에 입건됐다. 피의자는 업무용 프로그램에 접속, 연예인 이름과 생년월일 등을 입력해 세계 각국의 항공권 정보를 알아냈다. 싼 가격은 탑승 편명과 시각 정도를 알려주고 돈을 더 지불하면 더 내밀한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를 얻은 사생팬은 같은 항공기에 탑승해 근접 접촉을 시도하고, 항공편 예약을 아예 취소시켜 가수의 일정에 차질을 주는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연예인과 팬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좋아하는 연예인을 응원하는 것과 함께 그들의 사생활을 지켜주는 것 역시 성숙한 팬들의 자세다.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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