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 중정부장 - 윤영기 사회·체육담당 부국장
2025년 02월 24일(월) 00:00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제8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박 대통령과 육사 동기이자 친구인 그가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을 살해한 이유는 의문으로 남아 있다. 단지 차지철과 충성경쟁 과정에서 빚어진 갈등 때문에 발생한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내란목적 살인 혐의 등으로 기소됐으나 군대를 동원하거나 소요를 일으키려고 후속 조치를 마련했다는 증거도 없었다. 정보 수사전문가는 이 사건을 “계획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엉터리고 우발적이라고 보기엔 치밀하다”고 평가했다.

신군부는 자신들의 권력찬탈을 정당화하려고 김재규가 내란을 획책한 것으로 몰아갔다. 군법회의에서 초고속 재판이 이뤄진 탓에 공판조서가 작성되지 않아 변호인들이 볼 수도 없었다. 합동수사본부가 메모로 재판을 코치하는 ‘쪽지재판’이 진행됐고 재판장 뒤편에 숨어 있던 법관 등이 훈수를 두기도 했다. 이돈명 변호사가 “재판장은 가만히 있는 데,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재판에 관여하는 거냐’고 항의했다는 일화가 있다.

김 전 부장은 사건 발생 두 달 여 만인 12월 20일 사형을 선고받았다. 1980년 5월 20일 대법원 앞에 탱크가 진주한 상황에서 상고는 기각됐고, 24일 사형이 집행됐다. 애초 대법원 형사3부에서 맡았던 이 사건은 결론을 내지 못해 전원합의체로 넘겨져 재판부 14명 가운데 6명이 ‘내란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소수의견을 낼 정도로 의견차가 컸다. 신군부는 소수의견을 주도했던 양병호 판사를 악명높은 보안사 서빙고실로 연행해 사표를 받아내는 등 사법부를 유린했다.

서울고법이 유족의 신청으로 최근 김 전 부장에 대한 재심을 결정했다.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단이 김 전 부장에게 고문과 가혹행위를 자행했다는 사실이 인정됐다. 5·16 쿠데타의 장본인 가운데 한 명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증언대로라면 김 전 부장은 박 전 대통령의 영구집권을 꿈꿨던 인물이자 그의 명령에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충복이었다. 재심에서 두 얼굴을 가진 김 전 부장의 진면목과 역사에서 의문으로 남아 있는 10·26의 진실이 드러날지 궁금하다.

/윤영기 사회·체육담당 부국장 penfoot@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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