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의 ‘소설처럼’] 생추어리를 아시나요 -‘동물의 자리’
2025년 02월 19일(수) 21:30
고기 없이 밥 먹은 지 오래되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부유했나 싶지만 끼니마다 소고기를 굽고 돼지고기를 삶아야만 육식인 게 아니다. 우리가 먹는 찌개, 국, 반찬 심지어 간식에 이르기까지 많은 동물이 인간의 입에 들어가기 위해 함유된다. 인간은 동물을 효율적으로 먹기 위해 대량 사육하고, 이러한 방식으로 사는 동물의 개체수는 아프리카 초원의 야생동물의 그것보다 몇 배는 많다. 어떤 생명은 오로지 음식으로 쓰이기 위해 태어나 몸을(고기를) 키우는 데 짧은 생을 바치고 기계적인 방식으로 죽는 것이다. 소는 24개월이면 육우가 되고 돼지는 6개월 이후 삼겹살이 된다. 우리는 그만큼 먹고 그만큼 다시 키운다. 이걸 키운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또한 인간은 먹기 위해서만 동물을 곁에 두는 건 아니다. 관상을 위해, 즐거움을 위해, 때로 위로받기 위해 동물을 거두고 키운다. 2023년 8월에는 이유 모르게 경북 고령의 농가에서 평생을 살았던 암사자가 우리를 탈출해 다소 당황스러웠을 자유를 1시간 10분 누리고 사살되었다. 같은 해 3월에는 서울어린이대공원에서 사육하는 얼룩말이 사육장을 탈출해 서울 시내를 활보하다 마취총을 맞고 쓰러져 포획됐다.

어떤 동물은 미용을 위한 실험체로 쓰이고 어떤 동물은 관광을 위한 도구로 쓰인다. 어떤 동물은 가족처럼 살다 하루아침에 버려지기도 한다. 가죽을 벗겨 가방을 만든다. 털을 뽑아 옷을 만든다. 이렇듯 인간은 지구의 생물들 사이에서 절대 권력을 쥐고 있다. 인간은 동물과 같이 살지 않는다. 인간은 동물을 사용하거나 보호한다.

김다은 정윤영 쓰고 신선영의 사진이 더해진 책 ‘동물의 자리’는 간단하게는 ‘생추어리’ 탐방기다. 복잡하게는 인간과 동물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공간을 상상하는 책이다. 인간 대부분은 동물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방법을 모르거나 잊었기에 복잡할 수밖에 없다. 가는 길이 복잡하니 중간 기착지가 필요할 것이니, 함께 생추어리에 들르기로 하다. 생추어리(sanctuary)는 일반인의 접근을 막는 신성한 장소, 성역을 뜻한다. 책에서는 성역보다는 안식처, 보호구역이라는 뜻으로 쓰이는데 위기에 처하고 학대받는 동물을 구출해 만든 농장이라 할 수 있다. 그중 일부는 중세 시대의 성역처럼 정확한 장소를 공개하지 않는다. 그것이 동물을 자연스레 늙어가게 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인제에는 여섯 명의 (이 책에서는 동물더러 ‘마리’가 아닌 ‘명’을 붙인다.) 소들이 지내는 생추어리가 있다. 불법 도축소에서 구출된 소들은 각기 이름이 붙어 생추어리의 폐교에 산다. 활동가, 돌봄가족과 어울려 살아간다. 고기가 되지 않고, 태어난 대로 동물답게 살아간다. 화천에는 곰 보금자리가 있다. 많은 곰이 웅담 채취를 위해 사육되었다 이제는 쓸모를 다해 철창 안에 살고 있다. 지금쯤 곰들은 동면에서 깨어날 즈음이겠다. 창살 안에서 쓸개즙을 채취당할 때에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테다. 제주 곶자왈에는 말 보호센터가 있고 경마장에서 평생을 죽도록 달렸던 말이 거기에 산다. 경기도 어딘가 새벽이생추어리에는 종돈장에서 구출된 새벽이와 실험동물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잔디가 산다. 각종 살처분에서 살아남은 돼지로.

동물권에 대한 논의는 간명하고도 복잡하다. 생명을 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인류의 오랜 대전제를 떠올리면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지금 그깟 동물이 큰 문제냐는, 답이 정해진 물음 앞에서 논의를 이어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요즈음 같은 시국에 동물은 무슨 동물이란 말인가. 하지만 인간은 고기를 마음껏 먹는 존재인 동시에, 동물을 깊이 생각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생추어리는 지금 한국에서 매우 급진적인 공간일지도 모르지만 현재의 동물 산업의 실태와 동물을 착취하는 현실을 되짚어보게 하는 유토피아다. 당장 모두가 채식주의자가 되거나 환경보호론자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마음 한쪽에 주저함이라도 남는다면, 눈과 귀를 닫은 채 마음대로 주먹을 휘두르는 인간이 되지 않을 수는 있을 것이다. 거기에서부터 작더라도 희망은 시작될는지도 모르겠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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