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의 ‘우리지역 우리식물’] 겨울 화단의 붉은 보석, 피라칸타
2025년 02월 13일(목) 00:00
한겨울 남쪽 화단에서는 탐스러운 열매를 매단 나무들이 눈에 띈다. 먼나무와 호랑가시나무, 아왜나무 그리고 피라칸타. 이들 열매는 공통적으로 붉다. 물론 붉다고 해서 모두 똑같은 붉은빛을 띠는 것은 아니다. 피라칸타의 열매만 해도 주황빛을 머금은 다홍색에 가깝다.

우리는 피라칸타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도로 옆 가로수, 학교와 관공서의 화단, 수목원 그리고 절에도 이들은 심긴다. 게다가 먼나무나 아왜나무보다 수고가 낮아 눈에 더 잘 띌 수밖에 없다.

물론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피라칸타는 우리나라에 자생하지 않고 도입되어 심어지는 재배식물이다. 온대성이기에 제주를 비롯한 남부지역에서만 볼 수 있어, 내가 사는 경기도에서 이들은 온실 안에 식재된 모습이나 분화 형태로 살아간다.

피라칸타는 한 종의 식물이 아닌 장미과 피라칸타속 식물을 총칭한다. 이 속에 속한 6종 정도가 유럽 남쪽에서 중국 서남부에 걸쳐 분포하며, 우리가 가장 자주 만나는 화단의 그 피라칸타는 앙구스티폴리아(angustifolia)종이다.

나는 지난해 겨울 완도수목원에서 피라칸타를 관찰해 그림 그렸다. 한겨울 모습이 대표 이미지인 식물은 많지 않은데, 피라칸타만큼은 붉은 열매가 무르익은 1월 모습을 도화지 가운데에 기록해야 했다. 그런데 멀리서 사진을 찍고 열매를 더 자세히 보기 위해 가지를 만지작거리다 순간 가지의 뾰족한 가시에 찔리고 말았다. 붉은 열매에 집중한 나머지 가지에 가시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이다. 더구나 한겨울 오랫동안 밖에 있던 터라 건조한 손에 닿은 가시의 촉감은 초여름 여느 장미 가시에 찔렸을 때보다 훨씬 따갑게 느껴졌다.

피라칸타 속명은 그리스어 불(pyr)과 가시(akanthos)의 합성어에서 유래하며, 빨간 열매를 매달고 가지에 가시가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영어 이름 또한 파이어손(firethorn)이다. 중국명이자 생약명도 화극, 착엽화극인데 이 또한 좁은 잎의 붉은 가시나무라는 의미이므로, 동서양에서 피라칸타를 보고 떠올리는 이미지가 동일한 셈이다.

겨울 붉은 열매가 맺힌 순간의 피라칸타도 아름답지만 초여름에 핀 흰 꽃 또한 눈길을 사로잡는다. 오월 즈음 흰 꽃이 무리 지어 피며 꽃받침과 꽃잎 모두 다섯 장이다. 꽃 주변에는 늘 벌들이 많이 꼬이는데 아마도 꿀벌이 이들 수분을 도와주는 듯하다. 시간이 지나 꽃이 지고 날이 서늘해지는 초가을 즈음이 되면 꽃이 진 자리에는 연두색 열매가 달리기 시작하고, 가을 동안 열매는 빨갛게 익어 겨울 내내 가지에 매달려 있다.

피라칸타는 16세기경부터 세계적으로 널리 재배된 화훼식물이다. 이들은 온대성 식물임에도 추위에 꽤 강한 편이고 재배가 까다롭지 않다. 충분한 햇빛과 물만 제공하면 일 년 내내 아름다운 꽃과 열매를 피워낸다. 게다가 빨리 자란다. 위로도 잘 자라지만 옆으로도 잘 뻗어나가기 때문에 정원에 한 번 심어두면 관상식물로서의 존재감을 충분히 내보인다. 우리나라에서 만나는 피라칸타는 대부분 붉은색이지만 노란색과 흰색 열매도 있다.

피라칸타는 태생이 까다롭지 않고 무던한 식물이다. 어떤 환경에서든 적응력이 좋은 식물. 이것이 피라칸타가 세계로 널리 뻗어나갈 수 있던 비결이었다.

다만 이들 열매가 새에게만은 별로 인기가 없는 듯하다. 겨울에 붉은 열매를 매단 나무들을 관찰하다 보면 열매를 먹기 위해 나무 주변을 맴도는 새들의 음성을 쉽게 들을 수 있는데 피라칸타를 관찰할 때만큼은 새소리를 잘 듣지 못했다.

그 까닭을 수소문한 바, 새들은 경쟁적으로 맛있는 열매를 더 빨리 먹기 때문에 새들이 좋아하는 열매는 유독 우리 눈에서 빨리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피라칸타는 새들에게 인기가 별로 없어, 다른 나무 열매들을 다 먹고 식량이 부족해지기 시작하면 찌르레기와 지빠귀가 피라칸타 열매를 찾는다는 것이다.

피라칸타가 늦은 겨울까지 오랫동안 빨간 열매를 매달고 있는 것은 동물에게 인기가 없기 때문이고, 그로 인해 겨우내 탐스런 열매를 매다는 아름다운 식물로 여겨져 인간 곁에 심어지는 셈이다. 이러한 사실을 떠올리면 자연에는 완전한 실패나 좌절은 없다는 생각이 들고, 왠지 내게도 담대하게 눈앞의 세상을 살아갈 용기가 생긴다. <식물 세밀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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