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AI와 국자
2025년 02월 06일(목) 00:00 가가
요리계에 들어갔던 오래 전, 주방에 속칭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많았다. 아침엔 홀 막내가 바친 커피와 토스트를 드시며 조간신문을 보던 주방장의 위엄도 기억난다. 예전 주방장의 능력 평가는 역시 매출을 올리는 것이었지만 다른 가게가 못 따라오는 독보적 조리법이 얼마나 있느냐 하는 점도 따졌다. 예를 들어, 돈가스소스는 시중에서 전혀 구할 수 없을 때라 그 배합법도 주방장의 자산이었다.
사실이냐고 묻겠지만 중국집에 흔한 칠리새우나 마파두부 조리법을 아는 주방장이 장안에 손 꼽던 때도 있었다. 마요네즈 만드는 법도 1970년대 전에는 최고급 호텔 요리사나 알던 기술이었다. 그때 주방장들은 대체로 후배들에게 쉽게 기술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기술이 곧 자기 밥줄이었고, 일정 단계를 밟아 올라오면서 자격이 생기면 자연스레 기술전수를 받아 주방장이 된다는 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서 나온 말이 “국자로 맞아가며 배웠다”는 요리계의 오랜 속언이다. 그 상황이란 이렇다. 선배가 요리사들을 물리고 혼자 비장의 소스를 만들고 있다, 이때 후배가 선배 뒤로 가서 흘낏 넘겨본다, 기술 유출(?)을 우려한 선배가 국자를 휘둘러 쫓아낸다. 뭐 이런 상황이다.
“어깨너머로 배웠다”는 말은 기술분야에 흔한 전설인데, 그 장면을 상상해보면 이해가 된다. 쉬이 가르쳐주지 않으려는 선배의 우려, 그걸 어떻게든 배우려는 후배의 욕망이 그 시대의 언어로 지금까지 통용된다.
나 역시 온갖 기술을 주방장, 선배, 동료들에게 배웠다. 스파게티 국수 한 줌 삶는 법을 배우러 외국까지 갔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덕에 유명해진 이탈리아 생면도 내 세대가 2002 월드컵 무렵 거의 처음으로 한국에서 만들어 팔았던, 말하자면 ‘신상’이었다. 칼국수랑 별 다를 바 없는 기술인데, 이탈리아 생면을 아는 한국 요리사는 찾아볼 수 없었던 시대였다.
요리책도 아주 빈약하고, 가정요리 중심이어서 프로 요리사가 볼 만한 게 드물었다. 간혹 외국 책을 무단 번역하여 편집한 책이 고작이었다. 그래서 외국출장을 가서 책을 한 보따리 사오고, 인터넷시대 이후에는 아마존에서 주문해 보는 게 전부였다. 스마트폰만 열면 레시피가 쏟아지고, 국내외 최고의 셰프가 만드는 장면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요즘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는 후배 몰래 만드는 사람도 없다. 좋은 기술이 있으면 유튜버가 되어 만천하(?)에 알리는 게 유명해지고 돈도 버는 길이 되었다. 국자로 쫓아내기는커녕 어서 와서 많이들 보라고, 자기의 독자적 기술을 마구 알려준다. 정보의 양이 많고 정확할수록 구독자가 늘고 수입도 커질 확률이 높다. 없는 기술을 만들어서라도 알려주기도 한다. 그런 창작의욕이 요리의 세계를 더 넓히기도 한다. 물론 유튜브란 게 실제 만들어보면 별 것 아닌 과대포장이 다반사라는 것도 이젠 다 알려진 사실이다. 이른바 낚시용 콘텐츠를 말한다.
한술 더 떠 최신 유행인 AI로 내가 원하는 레시피를 광범위하게 빨리 찾을 수 있다. 외국회사가 만든 시스템인데, 심지어 제주 토속요리 이름을 넣어도 조리법을 찾아내 준다. 아직은 제한된 조건을 탐색하는지라 틀린 내용을 버젓이 진짜처럼 알려주는 일도 벌어지지만.
유튜브나 AI가 아무리 발달한들 우리네 할머니 손맛을 가르치고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 아날로그적이고 인간적인 구석도 남아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고. <음식 칼럼니스트>
요리책도 아주 빈약하고, 가정요리 중심이어서 프로 요리사가 볼 만한 게 드물었다. 간혹 외국 책을 무단 번역하여 편집한 책이 고작이었다. 그래서 외국출장을 가서 책을 한 보따리 사오고, 인터넷시대 이후에는 아마존에서 주문해 보는 게 전부였다. 스마트폰만 열면 레시피가 쏟아지고, 국내외 최고의 셰프가 만드는 장면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요즘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는 후배 몰래 만드는 사람도 없다. 좋은 기술이 있으면 유튜버가 되어 만천하(?)에 알리는 게 유명해지고 돈도 버는 길이 되었다. 국자로 쫓아내기는커녕 어서 와서 많이들 보라고, 자기의 독자적 기술을 마구 알려준다. 정보의 양이 많고 정확할수록 구독자가 늘고 수입도 커질 확률이 높다. 없는 기술을 만들어서라도 알려주기도 한다. 그런 창작의욕이 요리의 세계를 더 넓히기도 한다. 물론 유튜브란 게 실제 만들어보면 별 것 아닌 과대포장이 다반사라는 것도 이젠 다 알려진 사실이다. 이른바 낚시용 콘텐츠를 말한다.
한술 더 떠 최신 유행인 AI로 내가 원하는 레시피를 광범위하게 빨리 찾을 수 있다. 외국회사가 만든 시스템인데, 심지어 제주 토속요리 이름을 넣어도 조리법을 찾아내 준다. 아직은 제한된 조건을 탐색하는지라 틀린 내용을 버젓이 진짜처럼 알려주는 일도 벌어지지만.
유튜브나 AI가 아무리 발달한들 우리네 할머니 손맛을 가르치고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 아날로그적이고 인간적인 구석도 남아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고. <음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