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의 ‘소설처럼’] 스마트폰을 내려두고, 고전을 집어 들며 - 구은서 ‘이유 있는 고전’
2025년 01월 22일(수) 21:30
헌정사상 최초로 구속, 수감된 현직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 나가서도 부정 선거론을 설파했다. 몇 가지 객관적 사실과 담백한 논리만 머릿속에 배열할 수 있으면 부정 선거는 불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지만, 유튜브와 같은 인터넷의 짧은 콘텐츠에 익숙해진 뇌는 사실과 논리의 배열을 어려워한다. 사실과 논리가 아닌 확증과 왜곡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2024년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가 선정한 올해의 단어 ‘뇌썩음(Brain rot)’은 이러한 현상과 사람을 지칭하기에 알맞다.

뇌를 쓰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임을 입시를 체험해 본 우리 대부분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뇌를 쓰려고 한다. 생각하고 의심하려고 한다. 문제를 풀고 답을 내려고 한다. 그렇게 뇌를 써야만 제대로 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가 출현하고 난 이후 어쩐지 뇌를 많이 쓰지 않아도 많이 아는 것만 같고, 뇌를 쓰지 않고 있는데 뇌를 쓰고 있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힌 사람이 많아진 듯하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 피의자도 그중 하나일 테다.

뇌썩음은 옳고 그름, 진실과 거짓의 분별을 어렵게 한다. 뇌썩음은 비상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 국회를 에워싸는 행위의 윤리적 판단을 흐트러뜨린다. 뇌썩음은 음모론을 깨뜨리는 객관적 증거와 사실관계를 애써 무시하게 한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썩은 뇌가 믿는 가상 세계를 끊임없이 반복하고 재생하여 그의 확신을 더욱 단단하게 한다. 반증은 버리고 확증은 강화한다. 토론은 지양하고 선동을 지향한다. 그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발효가 아닌 썩어버린 식재료를 다시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요리사는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들이 식재료가 아닌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뇌썩음을 하나의 병증으로 볼 때, 가장 효과적이고 본질적인 치료는 그들의 손에서 스마트폰을 뺏고 책을 쥐여주는 것이다. 영상 없이 활자를 대하는 것은 뇌의 활성화에 확실한 도움을 준다. 또한 긴 시간 인류와 문명에 의해 고전으로 평가받는 장편소설을 읽을 것을 권한다. 고전 소설은 삶의 총체성을 구현하고 있기에, 편향된 생각으로 삶의 구석을 노려보느라 피폐해진 사고를 유연하고 영민한 상태로 회복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곧바로 톨스토이나 헤밍웨이의 소설을 탐독하기는 아무래도 어려울 법하니, 그 시작을 도울 수 있는 책을 소개하고 싶다. 일간지 기자로 매주 100권이 넘는 신간을 살핀 구은서 기자의 ‘이유 있는 고전’이다.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에서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에 이르기까지 25편이 고전을 쉽고 알차게 다뤘다. 어떤 이는 읽은 것들은 다시 내용을 확인하며 그 시절의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바빠서 못 읽은 고전을 살피며 교양을 찌울 수 있다. 가장 결정적으로 어떤 자는 뇌썩음 상태에서 탈출을 도와줄 고전을 이 책에서 고를 수도 있다.

그중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을 이 책을 통해 다시 곱씹는다. 많은 이가 이 소설을 죄수에서 예수로 변모하는 사나이 장 발장의 일대기로 알고 있지만, 사실 ‘레 미제라블’은 프랑스 혁명의 지속성을 담은 장대한 역사소설이라 할 수 있다. 책에서 일컫길 “독자는 ‘변혁은 반드시 누군가의 피를 요구하는가’ 질문하게 되고, 공화주의자인 마리우스와 왕당파인 질노르망 간의 설전을 통해 민주주의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도 있다.” 이 정도 생각이라면 뇌썩음에서 충분히 벗어날 수 있지 않겠는가.

질문하고, 고민하고 생각해보는 과정이 곧 치료가 될 것이다. 가장 쓰지만 그만큼 효과적인 처방은 고전 읽기다. 고전은 고전의 이유가 있다.

<시인>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