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아침에 못 볼 줄 알았다면…사랑한다 더 말할걸”
2025년 01월 19일(일) 20:00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합동추모식
유가족·정치인·추모객 등
무안공항 참사 현장 찾아
활주로·둔덕 맴돌며 통곡
편지 낭독·씻김굿 ‘넋 위로’

18일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 합동 추모식에서 희생자를 위한 진도 씻김굿이 열리고 있다. /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하루 아침에 아빠를 못 보게 될 줄 알았더라면, 한 번 더 전화하고 한 번 더 찾아가고 한 번 더 사랑한다고 말해드릴걸…. 지금 이 순간 당신의 따뜻한 미소와 포근한 품이 한없이 그립고 미치도록 보고 싶습니다….”(故 김영준씨 딸 다혜씨)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합동추모식이 열린 지난 18일 오전 11시께 무안국제공항 2층 추모식장.

추모식 시작 전부터 눈물을 닦아내던 유가족은 영혼을 위로하는 ‘진도씻김굿’이 진행되자 일제히 흐느끼기 시작했다.

한 유가족은 휴대전화 앨범에서 아들의 사진을 꺼내보며 이름을 되뇌고, 다른 유가족은 천진난만한 손녀를 품에 안은채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쏟아냈다. 화장실이나 공항 밖으로 달려나가거나 “딸아, 곧 따라갈게”라고 오열하며 바닥에 풀썩 주저앉는 유가족도 있었다.

추모식 행사 중 유가족이 희생자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자 울음바다가 됐다.

고(故) 박현라씨의 남편이자 고 김수림양의 아버지인 김성철씨가 “아내는 많이 아팠겠지만 수림이는 엄마 품에서 상처 하나 없는 얼굴로 찾을 수 있었다”며 “무서웠을 그 순간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가슴 아프고 슬프지만 당신 품에 안겨있었을 수림이를 생각하니 고마운 마음에 가슴이 미어진다”고 울먹였다.

추모식장 대형 스크린에 희생자들의 모습과 결혼식에서 딸에게 축하한다고 말하는 아버지의 모습, 손녀와 함께 생일을 축하하는 모습, 가족여행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사진 등이 나올 때마다 유가족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오열했다.

제주항공 직원과 공무원, 소방관, 공항공사 직원, 자원봉사자 등 너나 할 것 없이 눈시울을 붉혔다.

행사장 출입용 비표를 받지 못한 추모객 300여명은 공항 1층 1번 게이트 앞에 마련된 대형 스크린으로 추모식을 지켜봤다. 자원봉사자는 화면을 통해 유가족이 흐느끼는 모습을 보고 슬픔이 전해져오는 듯 어깨를 들썩였다.

정복을 입은 소방대원들도 눈을 질끈 감고 슬픔을 삼키며 눈가를 닦았으며, 현장 정리를 하던 공무원과 제주항공 직원들도 흐느꼈다.

추모공연을 하던 진도씻김굿 보존회 회원들과 추모곡을 부른 송하예씨도 공연 중간에 울음이 터져나오는 바람에 더듬더듬 공연을 이어가기도 했다.

18일 오전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합동 추모식이 무안국제공항에서 열렸다. 추모식을 마친 후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과 국무위원, 국회의장, 여야정당 대표를 비롯한 유가족들이 사고 현장으로 나와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추모식을 마친 오후부터 유가족들은 초췌한 표정, 퉁퉁 부은 눈으로 부축을 받아 가며 버스에 올라 차례로 무안공항 사고 현장을 방문해 짧은 묵념을 올렸다.

사고 현장에서 사고기 잔해 등은 모두 옮겨졌으나, 사고기가 충돌했던 ‘로컬라이저’ 시설 둔덕은 흙으로 덮인 부분이 처참하게 부서지고 콘크리트 구조물과 토사가 널브러진 채 방치돼 있었다. 로컬라이저 주변에는 국토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의 조사중 출입금지를 알리는 노란 띠와 무단출입금지 팻말이 붙어 적막한 분위기를 풍겼다.

로컬라이저의 주황색 안테나는 처참히 부러져 불에 그을렸고, 콘크리트 상판은 부서져 철근이 생선 가시처럼 드러나 있었다. 사고기 잔해가 있던 곳에는 그을린 자국과 시신 수습 과정에서 잘려나간 수풀만이 남아 있었다. 충돌·폭발 여파로 부서진 외벽 담벼락은 나무 합판으로 임시 수리돼 있었지만, 담장 상단에 설치된 철조망이 처참히 찢겨나가 사고의 충격을 실감케 했다.

유가족은 참사 현장을 차마 볼 수 없어서 한숨만 내쉬다 결국 “가지마”, “아이고” 오열하며 주저앉았고, 가족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하는 소리가 활주로를 맴돌았다.

한편 이날 공항 내 합동분향소에도 유가족과 추모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추모객들은 영정 사진과 위패를 한참 바라보고 서서 한숨을 연신 내쉬고, 저마다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추모객들은 합동분향소 인근 부스에서 쪽지에 추모의 글을 작성해 공항 1층 곳곳의 기둥에 걸어두기도 했다.

그동안 추모의 글은 무안공항 1층과 2층을 잇는 계단에 붙여졌으나, 계단이 추모 글귀로 포화돼 더 붙일 자리가 없자 인근 기둥들에도 쪽지를 가득 붙인 것이다. 쪽지에는 ‘하늘의 별이 된 아가도 천국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하고 있기를’, ‘소중한 한 분, 한 분을 기억하고 기도하겠습니다’ 등 희생자들의 평안을 기원하는 글귀들이 담겼다.

/무안=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무안=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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