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의 이분법, 버리기 딱 좋은 나날- 명 혜 영 광주시민인문학커뮤니티 대표
2025년 01월 13일(월) 21:30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풍전등화인 현 시국.

“응원봉을 든 고3의 바람, 국민을 둘로 가르지 말아 주세요!”라는 헤드라인이 필자의 시선을 붙잡는다. 탄핵집회에 처음으로 참가한 10대 청소년이 인생 첫 시위 경험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기고한 글. ‘갈라치기’에 대한 그녀의 주장에 격하게 공감하며, 한편으론 기성세대의 반성을 담아 이 글을 써본다.

대체 우리의 몸속에 체화된 이 망국의 이분법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자료를 조금만 리서치해보면, 이조 500년을 면면히 살아 숨 쉰 성리학이 그 뿌리인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성리학의 논리를 다소 길게 정리해보면, 먼저 이(理)와 기(氣)를 들 수 있겠다. 즉, 이(理)는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원리이며, 기(氣)는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요소로 설명된다. 그러나 이와 기는 서로 상호작용함에도, 이가 기보다 우위에 있다는 관점이 종종 강조되어 이분법적 구조를 강화했다. 다음으로, 성(性)과 정(情)이다. 성리학에서는 인간 본성(性)은 선(善)한 것으로 간주되며, 이는 하늘의 이치를 따른다고 여겨졌다. 반면 감정(情)은 기의 작용으로, 때로는 본성을 흐릴 수 있는 잠재적 요인으로 간주되었다. 이로 인해 본성과 감정을 대립적으로 보는 경향이 나타났다.

도(道)와 기(器)는 또 어떤가? 도(道)는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이상이며, 기(器)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사물로 구분된다. 이는 이상과 현실, 철학과 실용의 대립적 구도를 형성한다. 잘 알려진 선(善)과 악(惡)의 경우를 보자. 성리학은 도덕적 이분법을 강하게 제시하며, 인간의 행위를 선(善)과 악(惡)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구분은 조선 시대 윤리 체계와 교육에서 특히 강조되었다.

마지막으로 남성과 여성의 갈라치기다. 성리학은 유교적 가부장제를 뒷받침하며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엄격히 구분했다. 남성은 이(理)를, 여성은 기(氣)를 상징적으로 연관 짓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는 남성의 우위와 여성의 종속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렇듯 성리학의 논리는 우리 문화 곳곳에 이분법 정서로 스며있어 개개인의 판단과 선택에 끼어든다.

이런 가운데 희망을 주는 또 하나의 기사를 본다. “우리는 보수의 텃밭이 아니다. (중략) 보수에 미래는 없다. 내 아버지의 표는 내 표로 상쇄될 것이다. 내 어머니의 지지는 내목소리에 묻힐 것이다. 부모와 상사의 표를 무효로 만드는 길에 내 자매와 동료와 친구들이 함께할 것이다. TK의 콘크리트는 TK의 딸들에 의해 부서질 것이다. 몇 년이 걸려도 반드시 부서질 것이다” 라는 일명 ‘TK딸 챌린지’를 수행하는 여성청년 참가자의 피 끓는 ‘선언’.

순간 필자의 가슴은 뛰었다. 기성세대들에 의해 강제된 아웃사이더들의 역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보통시민의 분노라 밝힌 글에서는, 보수를 자처하는 기성세대들의 보신주의 처세에 비열함과 배신감을 느끼고, 그에 따른 분노게이지를 붉은 팬으로 강조해 외친다. 아울러 그네들의 이분법적 사고와 허약한 상상력에 더 이상 미래에 대한 희망의 씨앗은 없다고 단언한다. 이처럼 타락한 기성문화의 유효기한 만료를 선언하고 이제부터는 시스터 후드, 즉 자매애를 통해 해결해 나가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인다.

정치적 이념은 연속적이며 특정 주제에 따라 입장이 달라질 수 있음에도, ‘TK=보수, 호남=진보’라는 이분법으로 갈라치기 된 기성질서. 이런 구태를 극복하려는 여성청년들의 각성에 박수를 보낸다. 이분법을 넘어선 곳에 ‘남태령대첩’의 ‘약자동맹’이라는 스펙트럼 사고가 있다. 다양성을 담보한 가치를 강화해 공감연대로 나아가려는 그들이 있기에 광장에서 울려 퍼지던 ‘다시 만난 세상’은 희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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