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의 ‘우리지역 우리식물’] 동국사에는 왜 대나무 숲이 있을까?
2024년 12월 18일(수) 22:00
20대 시절 무작정 어딘가로 떠나고 싶을 때 내가 자주 찾았던 곳은 군산이다.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세 시간이면 도착하는 적당한 거리, 대중교통만으로도 여행이 가능한 곳이었다. 그 시절 잦은 군산 여행 중 내가 꼭 들르던 장소 중에는 동국사가 있다.

1909년 일본에 의해 창건되어 일제 강점기 내내 일본인 승려들에 의해 운영되었던 동국사는 우리나라에 남겨진 유일한 일본식 사찰이다. 창건된 지 100년이 훌쩍 넘었지만 건축물 곳곳엔 여전히 일본색이 묻어 있다. 아무런 장식이 없는 처마나 대웅전 외벽의 창문들 그리고 대웅전 뒤편 배경으로 보이는 대나무 숲이 그렇다.

우리나라 어느 절을 가도 배경에 인위적으로 조성한 대나무 숲이 있는 경우는 없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자연을 변형하거나 소유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하는 정신으로 식물을 대했기 때문에, 산에 세워진 절 주변에는 원래 살던 자생식물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동국사 대웅전 뒤에는 대나무 숲이 있다. 이 숲은 일본에서 가져온 대나무로 조성한 것이라 알려진다.

동국사에 들러 대나무 숲을 둘러보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왜 일본인들은 이곳에 하필 대나무를 심었을까?’ 질문의 답을 얻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군산에 다녀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교토에 갔고, 그곳에서 대나무가 있는 사찰을 수없이 다녔기 때문이다. 대나무는 일본 사찰에 심는 대표적인 식물이고, 대나무 중에는 ‘템플 뱀부’라는 품종도 있을 정도다.

‘동국사엔 왜 대나무숲이 있는가?’로 시작된 질문은 어느덧 ‘일본인들은 왜 사찰에 대나무를 심는가?’로 바뀌었다.

일본 사람들은 대나무를 좋아한다. 일본 주택가에 가면 집 현관마다 대나무로 꾸민 ‘카도마츠’라는 장식이 있다. 신의 기운이 머물길 바라며 세우는 장식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공사를 시작할 때 고사를 지내듯, 일본 사람들도 공사 현장에서 ‘지친사이’라는 의식을 치르는데, 이때 잎이 달린 네 개의 대나무로 사각 울타리 안에 제단을 세운다. 신성한 대나무를 이용해 성역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은 일본 사람들이 대나무의 영험함을 믿기 때문에 전래된 풍습이다. 대나무가 신성한 존재로 여겨지는 주요 이유는 일 년 내내 푸르른 이들의 영속성 때문이다.

물론 물리적으로도 대나무는 일본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식물이다. 대나무의 뿌리줄기는 토양을 고정하여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자연재해에 취약한 일본에서 대나무는 신성시될 수밖에 없는 식물이다. 서양으로부터 토목 공학 기술이 전파되기 전 대나무는 저수지와 강둑 주변에 많이 심어졌다. 또한 뿌리줄기 덕분에 지반 붕괴가 덜 일어나기 때문에 대나무 숲은 오랫동안 일본에서 지진 발생 시 대피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라고 알려져 왔다.

이러한 면면을 떠올리면 대나무야말로 일본 사찰 정원의 주인공이 되지 않을 이유가 없고, 한국에 세우는 동국사를 완전한 일본식 사찰로 만드는 데에 있어 일본인들이 원래 하던 대로 주변에 대나무를 가져다 심은 것은 무리가 아니다.

다시 동국사를 찾았을 때, 대나무 숲을 보며 나는 더 이상 종에 관한 의문을 품지 않았다. 대신 일본인들이 일찍부터 조경을 건축의 일부로 생각했다는 점, 오래전부터 식물과 식물이 만드는 풍경, 정서를 중요하게 여겼다는 점을 존중하게 되었다.

일본 사람들은 대나무를 재배할 때에 ‘이상적인 밀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대나무를 주기적으로 베어 숲이 무성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이상적인 관리라 생각한다. 사람들이 대나무 사이를 충분히 지나갈 수 있는 거리 정도의 밀도에서 대나무가 햇빛을 적당히 받아 어린 뿌리줄기가 잘 퍼질 수 있다고 믿는다.

일본 사찰의 대나무 숲에 비해 동국사의 대나무 숲은 그 간격이 촘촘했다. 대나무의 키도 제멋대로고, 발 밑에 단정히 갖춰진 이끼도 없다. 일제강점기는 오래전 끝이 났고, 동국사는 온전히 한국식으로 자연스레 관리되고 있다는 증명이다.

환경에 따라, 시간에 의해 식물은 변화한다. 식물은 누군가의 완전한 소유물이나 영원한 낙인일 수 없다. 나는 식물의 이런 점이 꽤 마음에 든다.

<식물 세밀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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