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의 ‘소설처럼’] 나폴리가 우리에게 준 것 - 정대건 소설 ‘부오니시모, 나폴리’
2024년 11월 27일(수) 22:00
여행과 경험은 다르다고 누군가 말했다. 그곳이 어디든 잠깐 스쳐 지나듯 자유를 만끽하고 오는 여행과 삶을 유지하고 일상을 지탱해야 하는 경험은 엄연히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배낭여행으로 들른 유럽의 식당과 설거지 아르바이트하러 매일 출근하는 유럽의 식당은 같을 리 없다. 이곳의 삶이 지쳐 위안 삼아 떠나는 여행으로는 결국 이곳의 삶에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다주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여행을 즐기는 이들이 이러한 사정을 모르지는 않을 테다. 대체로 우리의 삶은 급격히 방향을 꺾기보다는 살짝 쉬었다 가기를 더 필요로 한다. 휴식과 위로, 그리고 다시 일상… 이러한 루틴을 유지하기 위해 여행은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정대건 작가의 소설 ‘보우니시모, 나폴리’의 주인공 화자는 여행을 통해 삶의 궤적을 바꾸는 데 성공한 인물이다. 생각지 못한 파혼 이후 그녀가 원래 갖고 있는 외국 생활의 환상은 더 커진다. 하지만 그것을 구체화시킬 엄두는 나지 않고 주변에서는 그의 바람을 ‘외국병’이 도진 상태나 유난 정도로 취급한다. 결국 그녀가 택한 것은 여행이다. 두 달의 유럽 여행을 로마에서 마무리하기에 앞서 여행지로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나폴리에 들른다. 그리고 그곳에서 피자를 배우러 나폴리에 머물고 있다는 한국인 ‘한’을 만난다. 한은 나폴리를 여행 중인 게 아니다. 그는 삶의 경로를 바꾸기 위한 진지한 체험의 경로에 있다.

소설은 크나큰 사건이나 반전 없이 두 인물의 대화에 집중한다. 둘은 내심 갖고 있던 정체성에 대한 고민, 미래에 대한 불안 같은 것을 스스럼 없이 공유한다. 이는 어쩌면 이 여행이 끝나면 다시 볼 일 없는, 스쳐 지나가는 인연에 불과하기에 가능한 일일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눈 대화 속에 둘의 감정과 심리는 묘하게 겹친다. 이곳에서 우연히 만난 당신으로부터 내 인생이 바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과 쉬이 사랑에 빠지는 이유일 것이다. 과연 그러한 일이 일어날까? 나폴리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과 사랑을 나누고, 그 사랑으로 인생의 행로를 바꾸는 일이?

결말은 소설로 확인하는 게 좋겠다. 작가는 전작인 ‘급류’에서 보여주는 솜씨대로 사랑의 감정과 과정을 담백하고 솔직하게 묘사하고 진술한다. 어느덧 우리 소설에 사라진 듯 보이는 사랑이라는 마음을 소설과 밀접하게 결부시킨다. 덧붙여 작가는 나폴리아라는 도시에 대한 사랑을 숨기지 않고 발설한다. 소설의 내용에 있어 배경이 되는 도시가 꼭 나폴리일 필요는 없겠으나, 정대건 작가가 앞으로 이뤄낼 작업과 작품에 있어 나폴리는 무한한 에너지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보우니시모, 나폴리’와 짝지를 이루는 그의 산문집 ‘나의 파란, 나폴리’에서 이러한 사랑과 열정은 더욱 도드라진다. 여행이든 체험이든 당장 남이탈리아로 떠나고 싶게 만드는 충동을 선사하는 책이기도 하다.

여행은 경험이 될 수 있는가. ‘보우니시모, 나폴리’의 주인공 ‘선화’는 여행에서 무언가를 바꾸기 주저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바꾼다. ‘나의 파란, 나폴리’에서 작가는 여행에서 발견한 자신의 다른 모습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삶의 변화를 가져온다. 여행이 경험이 되고 안 되고는 여행자 스스로에게 달린 듯하다. 소설의 주인공이나 소설의 작가나 모두 여행에서 만난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것으로 그 도시에 예의를 다하였다. 예의를 갖춘 여행자에게 도시는 많은 것을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 나폴리에 간 사람들은 나폴리 특유의 파란색을 얻어오는 게 아닐까. 나폴리에서 선화는 캐나다로 떠날 용기를 얻었다. 나폴리에서 작가는 작가로서의 삶을 보다 긍정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신의 나폴리는 어디인가? 그곳을 찾아 최선을 다한 여행을 떠나길 바란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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