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난이도 - 윤영기 사회·체육담당 부국장
2024년 11월 18일(월) 00:00
정조 임금은 자신이 출제한 문제로 구일제(九日製)를 시행했다. 구일제는 9월 9일 성균관 유생을 대상으로 치르던 시험이다. 어제(御題)는 ‘포촉불언 홍곡장장’(抱蜀不言 鴻鵠장장). 임금이 공경하는 자세와 예(禮)로써 말 없이 백관을 이끌면 큰 기러기가 날개를 활짝 펴고 높이 날아오르는 것처럼 정사가 자연스럽게 이뤄진다는 뜻이었다. 정조는 평소 입버릇처럼 이 글을 되새겼는데 시험을 앞두고 때마침 기러기 울음소리를 듣고 문제로 낸 것이었다.

뜻밖에도 유생들이 백지답안을 낼 정도로 시험 난도가 매우 높았다. 문제를 이해해야 글을 쓰는 작문 시험이었기 때문이다. 크게 실망한 정조는 친필로 쓴 훈시를 내려 공부 좀 하라고 꾸짖는다. 훈시문은 ‘정조어필-시국제입장제생’(正祖御筆-示菊製入場諸生)으로 명명돼 보물로 지정돼 있다. 정조는 훈시에서 “그대들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어제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 백지답안을 냈다는 일을 혹시라도 들은 적이 있는가. 문제가 어려운 것도 아닌데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다사(多士)의 실력이 다듬어지지 않은 것은 바로 나의 수치”라고 개탄한다. “그대들이 그토록 고루한 자들인 줄 일찍 알았더라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고 알기 쉬운 한 구절의 말을 어찌 아껴 게시하지 않았겠는가”라고 자책도 했다. 정조는 “3일 기한을 줄테니 오늘의 수치를 씻도록 하라”며 재시험을 지시했다.

2025학년도 수능이 지난 14일 치러졌다. 지난 6월 모의평가가 역대급으로 어려웠고 9월 모의평가가 너무 쉬웠기 때문에 실제 수능 난이도가 주목됐다. 가채점 결과 국영수 등 주요과목 난도가 높지 않은 시험이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선택과목인 사회탐구와 과학탐구 영역의 난도는 상대적으로 높아 수험생들이 고전했다는 후문이다. 결국, 올해도 선택과목 유·불리 논란이 되풀이될 조짐이다. 최상위권 수험생은 주요 과목 한 두 문제로 과목별 등급과 입시 성패가 갈릴 전망이다. 수능은 문제가 쉽게 출제되면 물수능, 어려우면 불수능이라며 늘 논란이 된다. 난이도 논란은 수능의 족쇄가 아닐 수 없다. 오죽하면 수능 출제위원들이 ‘난이도 조절은 신의 영역’이라고 할까.

/penfoot@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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