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농사와 수능 도시락
2024년 11월 13일(수) 22:00 가가
자그마치 40년도 넘은 옛일이 생각난다. 그때는 수능이 아니라 학력고사라 불렀다. 고등학교 내내 공부 안 하고 놀고 방황했는데 어머니는 한 번도 공부하란 말을 안 하셨다. 어련히 알아서 하지 않았겠느냐고 나중에 말씀하셨지만, 당신도 거의 혼자서 벌어 살림을 꾸리느라 자식 공부를 들여다 볼 틈이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새벽 첫 차 타고 나가 장 보시고 허름한 밥집을 꾸렸다. 밤 12시나 되어야 돌아오셨는데, 생각해 보니 말이 안 되는 일상이었다. 하루 18시간 노동을 주 6일, 7일 치렀던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일요일엔 끙끙 앓으셨다. 오히려 쉬면 더 아프다 하시며. 내가 노동자가 되어 일을 해보니, 어머니의 그 노동이 말도 안되게 실감이 나고 마음이 아파서 엉엉 운다.
다시 그날로 간다. 어머니는 시험 치는 아들 밥상을 걸게 차렸다. 귀한 소 불고기가 기억난다. 공부는 안했지만 시험은 시험이라 속이 불편해 제대로 퍼넣지도 못했다. 그 시절엔 도시락을 쌌다. 더운 국을 싸오는 수험생은 드물었다. 그냥 찬 도시락을 모래알 씹듯 넘겨야 했다. 수험철에 요즘은 전날엔 뭘 먹고, 아침은 어떻게 차리라는 언론 기사를 보니 옛 신문도 그런 기사가 실렸던 것 같다. 하지만 노동해야 하는 엄마를 둔 많은 수험생은 그때나 지금이나 엄마솜씨의 훌륭한 시험 밥을 잘 얻어먹기는 쉬운 일이 아닐 테지.
시험장엔 희한하게도 일반 고3은 한 명도 없었다. 머리 기르고 늙수그레(?)한 재수, 삼수생만 가득했다. 말투도 거의 사투리가 많았다.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았는데, 내가 필수과목인 실업 중에서 선택을 농업으로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모교는 상업을 가르쳤지만, 나는 삐딱한 마음에 내 맘대로 농업을 선택했던 것이었다. 물론 광업,수산업, 공업 같은 것도 있었다.
서울에 농업을 선택한 학교가 없으니, 서울에서 농업 시험 치르는 수험생은 죄다 학원 유학 온 농촌지역 출신 재수, 삼수생이었다. 시험 진행 편의상 그들을 한 학교에 몰았고, 서울 고3으로는 나 혼자 그 학교에 간 것이었다.
풀기 어려웠던 농업시험 문제는 많았다. 기출문제에도 이런 게 나오면 거의 틀렸다. “다음 중 배나무의 수형은?” 이 질문에 과실나무의 수형이 그림으로 4개 나열되어 있었다. 닭과 소의 질병을 묻거나 돼지 품종과 임신기간은 외워서 맞힐 수 있었지만 과실나무 외형의 실루엣은 외운다고 외워지는 게 아니었다. ‘쌀나무’나 ‘감자나무’까지는 아니었어도 농촌에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풀기 어려운 문제이리라.
옛날, 군대 시절에 전라도나 충청도 출신 신병이 전입 오면 선임병들이 아주 좋아했다. 높은 확률로 농촌 출신이어서 군대가 요구하는 삽질이나 각종 잡일을 잘 해내기 때문이었다. 이젠 전국이 도시화되고, 농촌엔 젊은이가 없다. 우리나라는 사실상 농촌을 포기한 지 오래이고, 특정 산물은 농사짓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보조금도 준다. 음식문화는 요란하게 발달하고, 요리 프로그램은 전 국민적 화제가 되는 나라에서 농사는 점점 남의 일이다. 외국 노동자 손을 빌리지 않으면 농사도, 뱃일도, 축산도 없는 나라가 되었다. 참담하고 신기한 일이다.
그때 우연히 농업을 배우면서 나는 요리사가 되어서도 농촌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 농촌이 사라져간다. <음식 칼럼니스트>
풀기 어려웠던 농업시험 문제는 많았다. 기출문제에도 이런 게 나오면 거의 틀렸다. “다음 중 배나무의 수형은?” 이 질문에 과실나무의 수형이 그림으로 4개 나열되어 있었다. 닭과 소의 질병을 묻거나 돼지 품종과 임신기간은 외워서 맞힐 수 있었지만 과실나무 외형의 실루엣은 외운다고 외워지는 게 아니었다. ‘쌀나무’나 ‘감자나무’까지는 아니었어도 농촌에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풀기 어려운 문제이리라.
옛날, 군대 시절에 전라도나 충청도 출신 신병이 전입 오면 선임병들이 아주 좋아했다. 높은 확률로 농촌 출신이어서 군대가 요구하는 삽질이나 각종 잡일을 잘 해내기 때문이었다. 이젠 전국이 도시화되고, 농촌엔 젊은이가 없다. 우리나라는 사실상 농촌을 포기한 지 오래이고, 특정 산물은 농사짓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보조금도 준다. 음식문화는 요란하게 발달하고, 요리 프로그램은 전 국민적 화제가 되는 나라에서 농사는 점점 남의 일이다. 외국 노동자 손을 빌리지 않으면 농사도, 뱃일도, 축산도 없는 나라가 되었다. 참담하고 신기한 일이다.
그때 우연히 농업을 배우면서 나는 요리사가 되어서도 농촌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 농촌이 사라져간다. <음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