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축제 파행, 누가 죄인인가? - 박준원 호남대 미디어커뮤티케이션학과 3년
2024년 10월 29일(화) 00:00
차가운 바람에 코끝이 시려오고 낙엽 밟는 소리가 귀를 간질이면, 가을이 온 것이다. 가을 대학가에는 많은 대학생이 기다리는 행사가 있다. 대학 생활의 백미인 대학축제다. 누군가는 터널 같은 중·고등학생 시절에 대한 보상처럼 느끼기도 하고, 누군가는 ‘잉여’행위로 느낀다. 또 누군가는 찬란한 청춘을 빛낸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하며, 다른 누군가에게는 부끄러운 기억이 평생의 꼬리표처럼 따라오기도 한다.

대중문화가 크게 성장하기 전 대학축제는 말 그대로 ‘대학생의, 대학생을 위한, 대학생에 의한’ 행사였다. 동기와 선후배, 동아리 친구들, 교수, 너, 나 할 것 없이 대학의 일원으로 자신을 주장하고 끼와 재능을 뽐내며 단합하는 ‘대동(大同)’의 장이었다. 으레 창작 시나 노래, 연극을 선보이거나 캠퍼스 한편에 자신의 미술작품을 전시해 오가는 학우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관람하는 학우들도 다른 학우의 예술혼과 끼를 예찬하고 존중했다. 어설프고 부족해도 ‘우리의 축제’였다.

이제 대학에서 그런 풍경은 생경한 과거의 전유물이 됐다. 일부 학생들은 여전히 축제에서 동아리 활동의 일환이나 전공의 연장선으로 자기표현을 하고 있지만, 예전처럼 모두가 함께 즐긴다는 느낌을 받기는 힘들다. “왜 나대?”, “안 부끄럽나?” 같은 반응도 심심치 않게 현장이나 대학 커뮤니티에서 발견할 수 있다. 많은 대학생들은 ‘가수는 누가 오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의 내면과 우리만의 콘텐츠는 배제된 지 오래다. 항간에는 ‘아이돌 콘서트로 전락한 대학축제’라는 평가도 들려온다.

모 대학은 축제 예산의 70% 가량을 연예인 섭외에 사용했다고 한다. 연예인 섭외는 대학축제의 명운을 가르는 문제이기 때문에, 여타 대학도 비슷한 비율로 연예인 섭외에 투자하고 있을 것이다. 대학생 축제가 연예인들의 비즈니스 현장으로 변질됐다는 오명을 벗으려야 벗을 수 없는 노릇이다. 기현상은 계속된다. 연예인을 보기 위해 행사장에 몰린 재학생들과 지역민의 갈등이 빚어지고, 그로 인해 재학생 석과 외부인 석을 구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연예인이 잘 보이는 자리의 티켓은 중고거래 사이트에 암표로 매매되기도 했다. 연예인 공연을 촬영해 사진과 영상을 판매하는 잡상인들까지 ‘우리의 축제’를 타락시켰다.

누가 죄인인가. 개성을 잃어버린 대학생들? 전대(纏帶) 차고 와서 반짝하고 사라지는 연예인과 기획사? 무분별하게 난입한 지역민? 잡상인과 암표상? 축제를 기획한 대학과 학생회? 사실 누구 하나 잘못을 꼬집기 어렵다.

입시와 사교육이라는 제도에 개성을 거세당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펼쳐나갈 수 있는 대학생이 몇이나 되겠으며, 더 즐거운 무대를 선사하고 싶어도 물리적 한계로 정성을 다할 수 없는 섭외 연예인들의 사정도 있을 것이다. 비일상성을 경험할 기회가 적은 지역민들에게도 대학축제는 좋은 기회다. 학교의 홍보와 학생의 복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 대학과 학생회는 피해자처럼 보일 때도 있다. 잡상인과 암표상도 대학축제가 상업성을 띠지 않았다면 존재가 불가했을 것이다.

다만 조금 더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 어색하고 서툴러도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의 표현을 따듯하게 인정해야 한다. 이른바 ‘잘 나가는 가수’가 아니더라도 비교하지 않고 ‘우리’만의 즐거움을 찾아가면 된다. 지역민과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축제와 무대를 기획하고, 주체적으로 학교와 학생회에 의견을 제시해 여론에 부합하는 축제를 만들어가야 한다. 대학축제에 상업성이 점점 사라지면 암표상도 사라지지 않을까?

숨이 턱 막히는 힘든 여름을 이겨내고 서로의 온기가 필요한 가을이 찾아왔다. 몸도 마음도 나른해지는 가을이 온 만큼, 앞으로의 대학 축제는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모두가 행복하고 아름다운 ‘대학생의, 대학생을 위한, 대학생에 의한’ 축제로 각각의 마음에 자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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