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흑백 요리사에서 배우는 인생
2024년 10월 17일(목) 00:00 가가
요리 경연 프로그램이 한동안 뜸하더니 다시 화제다. ‘흑백 요리사’다. 우리 사회를 뒤흔드는 계급적인 문제인 ‘금수저, 흙수저’에서 모티브를 따왔을 것이다. 이 방송이 대히트를 친 이유는 여럿이 있는데 낮은 계급 ‘흑 요리사’의 인생 역전, 승부 뒤집기에 열광하는 서사가 제일 컸던 것 같다.
사람들은 개천에서 용이 나길 바라고, 그런 성공담에 경도되게 마련이다. 문득 왕년의 임춘애 선수의 ‘라면 신화’가 떠오르는 것도 그런 배경이다. 임 선수는 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따면서 혜성처럼 등장했고, 그의 어려운 가정형편을 강조하는 신문기사에서 라면만 먹고 뛰었다는 식으로 과장되게 회자되며 생겨난 신화다. 물론 실제와는 차이가 있는 이야기다. 과거엔 기사를 쓰다가 이렇게 과장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어쨌든 요리 대결이라는 흥미로운 소재, 이미 유명한 요리사로 구성된 백 요리사와 무명 요리사(게다가 서사를 입히느라 철가방요리사니, 만화책으로만 요리를 배웠느니 하는 요소를 배치했다)가 거액의 상금을 놓고 외나무다리 승부를 펼친다는 건 너무도 재미있을 수밖에 없었다. 잘 조절된 연출도 눈에 띄었다. 이 프로그램은 대결을 진행해가며 방송된 게 아니라, 이미 승패가 진행된 상태에서 사후에 편집한 것이라 더욱 극적인 연출이 가능했다. 다시 말해서 단순한 승부 경쟁 프로그램이 아니고 하나의 주제에 맞춰 이미 찍은 필름 편집을 크게 가미했다는 뜻이다. 그 때문에 극적인 승부를 더 돋보이게 만들 수 있었다. 이것이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흥미와 시청률을 지상의 목표로 하는 ‘예능’이라는 점을 우리가 알 필요가 있다. 어쨌든 넷플릭스 제작진의 영리한 제작은 성공했다.
이 방송이 보통의 수많은 예능(연예인이 나오는 토크쇼나 리얼리티 프로그램 등)이나 요리경연 프로그램과 다른 건 이른바 ‘서사’가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또는 사후에 시청자들이 그 서사를 ‘읽어냈다’는 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누구나 배경이나 유명도와 관계없이 공정한 경쟁을 한다는 것이 제일 큰 요소였다. 이미 방송을 통해 유명해진 요리사들 다수는 듣도 보도 못한 무명 요리사들과 나란히 서서 요리 평가를 받으며 크게 긴장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고, 심지어 1회전에서 지면서 긴장하거나 실망스러워 하는 등 스타일을 구기는 장면도 그대로 노출되었다. 인센티브 없이 싸우고 승복한다는 점, 무명이라도 실력만 있으면 유명 요리사를 이길 수 있다는 점은 시청자를 흥분시키는 절대 반지였다. 또 무명이면서 고난과 독학의 배경이 있는 출연자들은 그 서사를 더욱 다채롭게 만들었다. 요리 프로그램이지만 이것을 맛있는 요리를 구경한다거나 3억 원 상금을 놓고 토너먼트 대결을 한다는 것으로만 받아들인 시청자는 없을 것이다. 바로 그 부분이 이 방송의 남다른 특징이었다.
현대인은 대리의 시대를 산다. 현대식 민주주의의 근간인 투표라는 것도 결국은 내 권리를 대리(대의)하는 사람을 뽑는 것이다. 방송도 우리가 겪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놓고 대리로 사랑도 하고(드라마) 고난도 겪고(다큐멘터리) 경쟁도 한다(흑백 요리사). 그 대리적 상황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실제는 아니다. 흑백 요리사의 경쟁으로 우리가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매우 훌륭한 것이지만, 우리 삶의 실제는 또 아니다. 때문에 우리가 어떤 이슈를 통해서 얻는 감정은 그것을 확장하는 데서 가치를 발하게 된다. 배경 없이, 기울어지지 않은 운동장에서, 진짜 실력으로만 경쟁하는 사회를 우리가 열렬히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평소 감정을 ‘흑백 요리사’에 투사한 것은 아닐까.
<음식 칼럼니스트>
현대인은 대리의 시대를 산다. 현대식 민주주의의 근간인 투표라는 것도 결국은 내 권리를 대리(대의)하는 사람을 뽑는 것이다. 방송도 우리가 겪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놓고 대리로 사랑도 하고(드라마) 고난도 겪고(다큐멘터리) 경쟁도 한다(흑백 요리사). 그 대리적 상황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실제는 아니다. 흑백 요리사의 경쟁으로 우리가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매우 훌륭한 것이지만, 우리 삶의 실제는 또 아니다. 때문에 우리가 어떤 이슈를 통해서 얻는 감정은 그것을 확장하는 데서 가치를 발하게 된다. 배경 없이, 기울어지지 않은 운동장에서, 진짜 실력으로만 경쟁하는 사회를 우리가 열렬히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평소 감정을 ‘흑백 요리사’에 투사한 것은 아닐까.
<음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