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어부(勝於父) - 송기동 예향부장
2024년 10월 15일(화) 00:00
“그 아이의 작품에는 나의 세대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아주 신선하고 새로운 감각이 있어요.”

지난 2021년 여름, 등단 55주년을 맞은 한승원 작가와 장흥 안양면 ‘달긷는 집’에서 인터뷰를 했다. 당시 작가는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2016년)을 수상한 딸(한강 작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이를 ‘승어부’(勝於父·아버지를 뛰어넘는 것)라는 한자말로 표현했다.

또한 작가는 같은 해 출간한 자서전 ‘산돌 키우기’(문학동네)에서 “가장 부르기 쉽고,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도록 이름을 강(江)이라고 지었다”면서 “모든 아이는 태어나면서 다 제 먹을 것 가지고 태어난다는 그 말이 맞는지 그 아이 태어난 다음 내 소설은 잘 써졌고, 작품도 잘 팔렸다. 청탁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줄곧 소설쓰기에 골몰하곤 했다”라고 묘사했다.

이러한 작가 아버지의 모습은 어린 딸에게 어떻게 비춰졌을까. 한강 작가는 같은 책 발문에서 이렇게 토로한다.

“고백하자면 어린 시절 나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어떤 경우에도 문학을 삶 앞에 두지 않겠다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반짝이는 석영 같은 이 페이지들 사이를 서성이고 미끄러지며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한길을 걸어온 아버지와 딸은 같은 문학상을 수상하는 이색 기록도 세웠다. 한승원 작가가 1988년에 ‘해변의 길손’으로, 한강 작가가 2005년에 ‘몽고반점’으로 문학사상사에서 주관하는 ‘이상 문학상’을 각각 수상한 것이다.

한국 작가 최초로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전투구(泥田鬪狗)하는 여야간 정쟁에 시달리는 요즘, 시민들에게 이보다 청량한 뉴스가 있을 수 없다. 광주문학관 벽면에 내걸린 ‘한강! 고맙다! 기쁘다! 5월, 이제는 세계정신!’이라 쓰인 대형 플래카드에는 광주의 환희가 오롯이 담겨있다. 앞으로도 한강 작가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생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스웨덴 한림원)과 독자들에게 ‘떨림과 울림’을 남기는 또 다른 작품을 창작하기를 응원한다.

/송기동 예향부장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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