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역사의 창’] 2025년 검정 한국사교과서를 보고
2024년 10월 10일(목) 00:00
2025년부터 사용할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9종이 통과되었다. 그중 하나인 한국능력평가원의 한국사교과서를 두고 논란이 심하다. 필자가 9종의 교과서를 대략 살펴보니 한국능력평가원의 교과서는 대일항전기를 긍정적으로 서술하는 등 많은 문제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능력평가원 교과서뿐만 아니라 다른 8종의 교과서가 모두 크고 작은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모두 교육부에서 제시한 편찬지침에 따라서 서술했기 때문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한국학력평가원의 한국사교과서만 문제이고, 다른 8종의 교과서는 면제부를 받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모든 교과서는 약 65쪽 정도 분량의 1, 2권으로 나누어졌는데 1권의 경우 ‘Ⅰ 근대 이전 한국사의 이해, Ⅱ 근대 이전 한국사의 탐구, Ⅲ 근대 국가 수립의 노력’으로 구성되었다. ‘Ⅰ 근대 이전 한국사의 이해’는 70만년 전의 구석기 시대부터 대원군 시절까지를 약 20쪽 분량에 모두 담는 괴력을 보여주고 있다. 중학교 때 이 시기를 보다 자세히 다루었다고 하더라도 고교에서 배우는 것은 중학 때보다 보다 심화한 내용으로 배우는 것이 마땅하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역사 전체를 보는 기준이 ‘근대’라는 점이다. 근대를 기준으로 고조선 건국부터 모든 역사를 ‘근대 이전’으로 보는 관점이 과연 올바른가? 우리 역사 전체를 ‘근대 이전’으로 폄하한 다음 ‘근대 국가 수립의 노력’이 이어지는데 그 시작이 일본에게 강제 개항한 ‘강화도 조약’이다. 이 강제 개항부터 일제 식민지배까지를 근대화라는 관점으로 서술했으니 ‘식민지 근대화론’에 따른 서술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가 없다.

또 다른 문제는 팩트(사실)와 다른 서술이나 지도들인데 이는 대부분 강역사에 집중되어 있다. 통일신라의 강역이 그 이전 진흥왕의 영토확장 시기보다 축소되어 있는 부분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고려, 조선강역이다. 9종의 교과서는 모두 고려 북방강역 서북쪽은 압록강부터 동북쪽은 지금의 함경남도로 아래로 비스듬히 그려놨다. 이 글을 보는 독자들도 과거에 이런 지도로 배워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지도는 실제 고려 북방강역을 설명하는 ‘고려사’·‘조선왕조실록’은 물론 중국의 ‘명사(明史)’ 등의 기록과도 크게 어긋난다. 고려 동북방 지역을 동계(東界)라고 하는데, ‘고려사’, ‘지리지 동계(東界)’조는 “북쪽은 공험부터 남쪽은 삼척까지”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9종의 교과서는 모두 동계의 남쪽 삼척을 경상도 포항 부근으로 그려놓고 있다. 우리나라 수천 명의 역사학자들이 강원도 삼척을 경상도 포항 부근으로 알고 있다는 뜻이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공험은 고려 원수 윤관이 여기까지가 고려 땅이라는 뜻의 ‘고려지경(高麗之境)’이라는 비석을 세운 곳이다. 이 공험에 대해서 ‘세종실록지리지’는 두만강의 경원에서 북쪽으로 700리라고 명시하고 있고, 성호 이익도 ‘윤관비’에서 ‘두만강 북쪽 700리’라고 명시했다.

일제 때 이케우치 히로시, 쓰다 소키치 등의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 두만강 북쪽 700리의 공험진을 함경남도라고 조작했는데, 한국 역사학계(?)의 이른바 태두(泰斗)라는 이병도 박사는 이케우치, 쓰다 등에 대해서 ‘존경할만한 인격자’, ‘학문이 실증적’이라고 치켜세웠고, 그 제자들이 장악한 한국 역사학계는 광복 80주년이 다 되는 지금까지도 두만강 북쪽 700리 공험진을 두만강 남쪽 1000리 함흥 부근으로, 강원도 삼척을 경상도 포항으로 조작해서 국민들을 속여왔던 것이다.

모든 교과서는 조선 세종 때 조선 국경이 압록강~두만강까지 확장되었다고 그려놨는데 그렇다면 간도는 고려, 조선 천여 년 동안 우리 땅인 적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런지 ‘간도협약’을 서술하면서 간도가 우리 땅이라는 표현을 찾아보기 힘들고 간도를 분쟁지역으로 표현한 교과서가 절대 다수다.

광복 80주년이 되도록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 조작한 내용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나라는 정상일 수가 없다. 우리 학생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는 헌법 조문에 맞는 교과서로 배울 권리가 있다.

<순천향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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