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밑 가시 - 오광록 서울취재본부 부장
2024년 10월 10일(목) 00:00 가가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데가 어디일까? 심장, 눈, 얼굴 등 다양한 답변을 할 수 있다. 수년 전 전북의 한 고등학교에서 ‘국제정치’를 주제로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고, 이 질문을 꺼내면서 수업은 시작됐다. 아이들의 답변도 다양했다. 머리가 아픈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곳은 머리이며, 발바닥에 티눈이 박힌 사람은 온통 티눈 생각뿐이다. 그래서 사람마다 중요한 곳이 다르다. 국제정치라는 까다로운 강의 주제를 놓고 티눈 이야기를 꺼냈으니 아이들의 표정도 시큰둥했다. 같은 맥락에서 현재 미국에게 가장 중요한 나라는 미국을 위협하는 ‘손톱 밑 가시’ 같은 북한이다는 말에 아이들은 비로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치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상황과 조건이 때로는 정치 생명을 걸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 되기도 한다. 손톱만큼, 하찮게 여겼던 정치적 사안도 가시가 박히면 두고두고 괴롭기 때문이다.
오는 16일 치러지는 영광·곡성군수 재선거를 두고 호남이 야권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공간이 되고 있다. 텃밭 사수에 나선 더불어민주당은 다음 지방선거 호남 압승을 위해서도 재선거 승리가 절실하다. 특히 지방선거 이후 차기 대통령선거에서도 호남의 지속적인 지지가 필요하다. 지역구 국회의원이 한 명도 없는 조국혁신당도 지방선거를 통해 지역에 뿌리를 내려야 하고, 그 실험무대가 이번 영광·곡성 재선거가 되고 있다.
지난 총선을 통해 정의당으로부터 진보진영 정당의 바통을 이어받은 진보당도 이번 재선거를 통해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선거가 끝나면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던 ‘손톱’ 같았던 호남에 재선거라는 ‘가시’가 박히면서 각 정당의 발걸음도 분주해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번 호남 재선거는 ‘민주당 경선이 곧 본선’이라는 공식이 깨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한 각 정당에게 이번 재선거는 선거 결과도 중요하지만 ‘가시가 박히기 전’까지 ‘호남이 왜 중요한지’ 몰랐거나, 알면서도 챙기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는지 살펴보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kro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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