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2040] 차별금지법,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다- 김 병 수 위민연구원 이사, 광산구청 인권팀장
2024년 10월 08일(화) 06:00
최근 야당의 대표는 차별금지법 처리와 관련 “지금은 먹고사는 문제가 심각하다”며 차별금지법 처리는 사회적 대화나 타협이 성숙된 다음에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차별금지가 민생이 분리될 수 있냐는 비판과 함께 일부 종교계의 성소수자 보호에 대한 반대로 전체 차별금지법을 외면하는 것으로 보여 우려를 표방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고용, 교육, 재화·용역의 이용과 공급, 행정서비스 제공과 이용 등 4개 영역에서 성별과 장애인, 인종, 학력, 성적지향, 고용 형태 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부 종교계에서 반대하는 성적지향 즉 성소수자에 대한 반대의견을 두고 차별금지법 전체를 반대하는 모양새가 되어서는 안된다. 물론 국내에는 장애나 성별, 연령, 특정 고용 형태에 따른 차별을 규율하는 개별법이 존재하고는 있다. 그러나 이런 개별법만으로는 다양한 차별을 개선하는 데 한계가 존재하기에, 개별법을 떠나 모든 차별에 관한 종합적 법률이 제도화될 필요성이 있다.

차별은 인간으로서의 권리나 기본권을 침해하고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는 주된 요인으로 지목돼 왔다. 대표적으로 코로나19 이후 우리 사회는 노동 불안정, 소득 감소, 돌봄 공백, 고립과 우울, 혐오와 차별 등으로 고통을 겪었고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인권적인 측면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정부의 대응이 일부 계층에 집중된 피해를 유발했다는 조사 보고서도 존재한다. 소위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차별도 가중되고 있는 현실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발생한 확진자에 대한 혐오는 코로나 이후, 사회의 다른 영역에서 차별과 혐오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21년 초 챗봇 ‘이루다’의 차별과 혐오 표현 사건은 인공지능이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혐오를 그대로 학습해 재생산하는 것에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인공지능조차도 쉽게 학습할 정도의 차별과 혐오 표현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1년 5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수행한 온라인 혐오 표현 인식 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 동안 오프라인 실생활이나 온라인 두 곳 중 한 곳에서 혐오 표현을 하는 사람을 보거나 혐오 표현을 들은 경험이 있는 응답자의 비율이 70.3%로 조사됐다.

혐오 표현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것은 2010년경 이후이다. 특히 비대면인 온라인상에서 발생하는 차별과 혐오 표현은 정치영역과 여성, 이주민, 장애인, 성소수자에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과거 차별과 혐오 표현이 지역주의에 의한 사회적 갈등이었다면 현재는 더 광범위하게 사회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혐오 표현은 지속적, 구조적으로 차별을 받아온 특정 집단인 표적 집단을 향하는 것으로 그 구성원에 대한 단순한 불쾌감을 넘어 공포와 위축, 좌절감 등 표적 집단 구성원에 관한 왜곡된 사실을 유포함으로 인해 사회적 갈등을 일으킨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혐오와 차별에 대응과 규제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는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됐다. 2006년 노무현 정부에서 평등법 제정을 권고한 이후부터 시작된 차별금지는 2013년까지 7건의 법안이 발의됐으나, 법안심의가 이뤄지지 않아 자동 폐기됐다. 2021년에는 국회 국민 동의 청원 성립 요건인 국민 10만 명 동의를 얻었지만 청원 심사기간이 연장됐고 이후 개별 의원들에 의해 차별금지법이 발의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유럽연합은 연합 가입 조건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고 유럽연합 여러 결의안과 국제법적 차별금지법이 도입돼 대부분의 회원국은 강도 높은 차별금지법을 가지고 있다. 유엔 역시 2007년부터 2017년까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한국 정부에 꾸준히 요구했지만,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성소수자에 대한 문제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성소수자의 인권이 포함된다는 점이다.

필자는 서두에 밝히듯 차별금지법이 성소수자의 차별 해소에 목적을 두기보다는 한국 사회의 다양한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차별과 혐오 표현에 대한 법적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데 있다. 물론 성소수자의 인권 역시 우리 주변에 실존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들이 소수자이기 때문에 인권의 사각지대로 몰려서는 안된다고 본다. 더 근본적인 것은 차별금지법이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해결해야 할 한국 사회의 과제 중 하나라는 점에서 더 이상 미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헌법에서도 평등의 원칙은 기본권 보장의 핵심 원리로 다루고 있지만 평등의 원칙을 더욱 세부적으로 규정하고 법률로 제도화해야만 한다. 그만큼 한국 사회의 다양성이 포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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