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와 목조유산 - 윤영기 사회·체육담당 부국장
2024년 10월 07일(월) 00:00
최근 광주 무등산 증심사에서 불이 나 공양간과 요사채(행원당)가 전소됐다. 다행히 불이 인근 대웅전까지 번지지 않았으나 목조 문화유산이 화재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일단 불이 붙으면 모두 태우고 나서야 꺼지는 특성이다. 통일신라 말 철감선사(798~868)가 창건한 증심사는 1597년 정유재란, 1951년 한국전쟁기 등 줄잡아 세 차례에 걸쳐 큰 불이나 원형을 잃었다. 행원당은 소실돼 1989년 복원한 공간인데 이번에 또 화마에 휩싸였다.

철감선사가 창건한 화순 쌍봉사 대웅전(보물 163)도 1984년 화재로 전소됐다. 연등에서 옮겨붙은 불이 대웅전을 집어 삼켰다. 쌍봉사 대웅전은 복원됐으나 원형을 잃는 바람에 보물에서 해제되는 아픔을 겪었다. 2009년에는 여수 향일암에서 불이 나 대웅전, 종각 등 사찰 건물 8동 가운데 3동이 전소돼 큰 충격을 줬다.

목조문화유산 화재는 건물을 잃는데 그치지 않는다. 사찰의 경우 불상과 탱화 등을 모시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이서 필연적으로 추가 피해를 동반한다. 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중요 목조국가유산 경내에 3∼5건 가량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공간은 37곳, 2개 이하는 19곳이었다.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합천 해인사는 50건 이상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이들 건축물에 불이 나면 걷잡을 수 없는 재앙이다. 2005년 낙산사에 불이 나 전각까지 번지는 바람에 동종(보물 479호)이 완전히 녹아내린 게 대표적이다. 낙산사 동종은 복원됐으나 고유성과 역사성을 잃어 보물에서 해제됐다.

우리 목조유산 화재 방비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민형배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가유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보·보물 등 목조 국가 문화유산 가운데 9건은 소화기구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소화전이나 방수총 등 소화 설비가 마련돼 있지 않은 목조 문화유산은 40건이었고 불꽃 감지기, 연기 감지기와 같은 경보 설비가 아예 없는 문화유산은 51건에 달했다. 목조문화유산 화재 예방대책은 매년 국감에서 지적되는 단골 현안이다. 제발 내년에는 같은 지적을 받지 않았으면.

/penfoot@kwangju.co.kr

실시간 핫뉴스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