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이십대 주방장이 없어요
2024년 09월 11일(수) 22:30
나는 대학을 다니다가 삼십대 초반에 요리사가 되었다. 주방장이 아니라 초보 요리사가 되었단 뜻이다. 보통 한국에서 ‘요리사=주방장’이라고 생각하지만 주방장은 말 그대로 ‘廚房長’이 원래 뜻이다. 어쨌든 그 나이에 이탈리아에 가게 되었다. 단기 코스로 요리를 배우러 떠난 길이었다. 문화 차이로 놀라운 것이 많았는데, 요리사의 경력과 관련해서 놀라운 점도 많았다. 우선, 요리사가 되려는 소년이 있으면 나라에서 거의 공짜로 공부를 시켜주었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실업계 교육에 무상교육과 지원을 하고 있지만 당시(1999년)에는 그 정도 분위기는 아니었으니 차이가 컸다.

또 다른 점은 나이 고작 이십대인 주방장(책임 셰프)이 흔했다. 당시 내 고정관념에는 ‘요리 몇 년 겨우 한 나이에 주방장이 된다고? 이상하군’이었다. 한국은 보통 서른이 한참 넘어야 주방장이 된다. 그러니 큰 식당이나 고급기술이 필요한 식당에서는 나이 이십대로는 주방장급이 나오기 어려운 구조였다. 일반 대학이나 조리전문대학을 나오고, 이런저런 수련을 거친 뒤에야 그 다리에 오를 수 있으니 빨라야 삼십대 중후반은 되어야 했다.

최근에는 조리전문 고등학교가 있지만 오래 전엔 거의 없었다. 한국의 요리 지망생들은 요리에 인생을 결정하는 나이가 대개 늦었다. 게다가 (남자의 경우) 군대도 3년 가까이 다녀오고 인생의 방황이나 모색기를 지나서 요리사가 되면 이미 서른 가까운 나이가 되곤 했다. 대다수의 회사원이 이십대 후반에 시작하는 것과 비슷했다. 여자 요리사는 좀더 빨리 시작할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여자 요리사는 드물었다. 반면 이탈리아인들은 왜 그리 빨리 주방장이 될 수 있었을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교육 체계가 달랐다. 이는 유럽의 다른 많은 나라도 비슷한 실정이었다.

우선 진로교육 체계의 차이다. 한국은 지금도 대부분의 고졸이 수능을 치른다. 대학진학률이 70퍼센트를 넘는다. 이탈리아는 소수만 대학을 간다. 대다수는 한국으로 치면 일찌감치 특성화고를 나와 현장에 뛰어든다. 짧은 전문학교를 가기도 하지만 그리 길지 않고 실무적이다.

나는 한국의 요리현장에서 정말 많은 요리와 관련없는 학과를 다닌 대졸자와 중퇴자를 보았다. 어떤 학문이든 그 학습경험이 무용하지 않겠지만 결국 우회해서 요리판에 오는 셈이다. 비싼 비용과 대가를 치르고서야 요리사를 시작한다. 고등학교에서 이미 요리를 배우고 오는 사람과 같은 대우로 요리를 시작한다. 대부분의 요리판은 조리학과나 유학을 갔다왔다고 해도 특별히 급여가 높지 않다. 조리학과 대학원 석박사를 했어도 요리를 시작하면 최저임금이라고 봐도 된다. 요리는 손으로 하는 기술직업인 까닭이다. 대학 학위가 오히려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탈리아가 왜 그리 빨리 주방장이 되고 사회에서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지 이야기를 계속해보자. 그들은 6세 입학을 하고 군대도 가지 않으며(20여 년 전에 의무징집이 폐지되었다), 특성화 고교에서 충분히 요리교육을 시작한다. 기왕 요리로 직업을 정했으니 방학이나 방과 후, 주말에 견습요리사 생활을 한다. 사실상 15세면 요리사가 된 것이다. 실습이라고 해서 손 놓고 구경하는 게 아니라 실제 요리사처럼 똑같이 일한다. 돈도 받는다. 그러니 대학 다니다 오고, 다른 일 하다 요리사를 시작하는 한국보다 빠를 수밖에 없다. 우리보다 한참 먼저 제대로 칼을 쥐는 셈이다. 그러니 이십칠팔 세가 되면 이미 요리 경력 10년이 넘는다. 제법 농익은 주방장 자격이 된다.

한국은 대학진학에 몰두시키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일찌감치 요리사를 시작하려고 해도 ‘혹시 모르니 대학졸업장을 따놓고 시작하라’는 말이 여전하다. 대학졸업장을 걸어놓고 식당 할 것도 아닌데, 한국 특유의 간판문화가 이런 데서도 부정적으로 작동한다. 그러므로 상당수는 적성에도 안 맞는 대학 다니다가 중퇴하고 요리를 배우겠다고 오는 예비 요리사를 많이 보았다. 한국인 요리사들은 이미 유럽 요리사에 비해 몇 년의 경험과 급여의 손해를 깔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요리는 말이 아니라 기술이다. 손에 붙여서 하는 직업이다.

요즘은 글로벌 시대다. 세계인이 같이 경쟁한다. 그런 상황에서 결코 유리할 게 없는 한국식 현상이다.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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