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받는 ‘월드뮤직페스티벌’…관객보다 스태프 많은 ‘주객전도’ 공연도
2024년 09월 03일(화) 18:50
ACC재단, 5일간 30여팀 공연 … 야외공연 점유율 20%도 안돼
무더위·과도한 국악 장르 흥행 참패 요인…빅도어 스테이지는 호응

지난 8월 30일~9월 1일 ACC 일원에서 ‘2024 ACC 월드뮤직 페스티벌’이 열렸다. 공연이 한창이지만 자원봉사자, 스태프 외에는 객석이 텅 비어있는 모습.

ACC재단이 주관하는 ‘2024 ACC 월드 뮤직 페스티벌(월페)’이 지난 30일부터 9월 1일까지 ACC 예술극장 일원에서 펼쳐졌다. 빅도어(극장1), 월드 스테이지(극장2), 열린마당 등에서 열린 이번 행사는 스페셜 스테이지(원효사)를 포함해 총 5일간 30여 팀이 참여한 대규모 공연 축제였다.

하지만, 올해 ‘월페’도 지난해에 이어 겉만 화려할 뿐 내용은 빈약한 축제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했지만, 일부 행사장에는 손에 꼽을 만큼의 관객만이 자리해 ‘글로벌음악축제’라는 이름을 무색게 했기 때문이다.

행사 마지막날인 1일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플룻·기타 듀오 ‘미스두라’ 공연 현장에는 측면 파라솔에 앉은 관객, 스태프 30여 명만이 자리했다. 이날 두 자녀, 남편과 함께 야외무대 객석에 앉았다가 자리를 뜬 이선영(여·30대) 씨는 “너무 더워서 ACC 지하라도 내려갔다가 나중에 다시 좋을 것 같다”며 관람을 포기했다.
한낮 기온이 섭씨 32도에 달하는 날씨에도 록밴드 ‘렛가일’은 105데시벨 음향으로 야외무대 근처 시민을 ‘현혹’했다. 현장에는 10분 동안 150여 명이 지나갔으나 이중 관객으로 전환된 이는 단 두 명. 250여 야외 객석은 자원봉사자 7명, 스태프 10여 명만이 자리해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었다. 인디밴드 ‘모노플로’, ‘엑시즘’이 무대에 오를 때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고, 재방문한 이튿날 객석 점유율도 20%가 채 되지 않아 보였다.

‘월페’ 브랜드 자체가 시민들의 관심을 크게 끌지 못하고 있어서다.

ACC재단에 따르면 3일 평균 종합 객석점유율은 65.2%로,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오전 공연은 신예에게 기회를 준다는 의미에서 흥행 참패를 참작한다 하더라도, 가장 큰 무대인 야간공연 ‘빅도어 스테이지’마저도 군데군데 공석이 보였다. 무대 간 객석 점유율 편차도 커 공연 간 시너지를 일으키기 어려웠다는 평가다.

네이버 데이터랩을 통해 분석한 3개월 간 1~3일차 아티스트들의 검색량 추이를 살펴보면 7월을 제외하고 축제가 임박했음에도 검색량이 크게 반등하지 않았다.(그래프는 조회기간 내 최다 검색량을 100으로 설정해 상대적 변화를 보여준다)
지난 2일 네이버 데이터랩을 통해 분석한 결과 행사 3개월 전부터 포탈에 월뮤페를 입력한 ‘검색량 수’는 개별 아티스트 검색량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다. 이는 15회를 맞은 월페가 브랜드로 자리잡기보다 초청 공연자의 휴먼 파워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아울러 국악 장르 중심의 레퍼토리 편성이 흥행 부진의 한 요인이었다는 지적도 있다.

음악계 인사 A씨는 “‘세계음악 축제’를 표방하는 만큼 대중적인 레개, 플라멩코, 집시, 발칸음악 등 장르를 적절히 섞어줄 필요가 있어 보인다”며 “현재로서는 판소리를 기반으로 월드뮤직을 아우르는 ‘전주 세계 소리축제’ 등과 큰 변별성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올해에도 추다혜, 박다울X박우재, 백다솜, 오오(강권순 등) 등 수많은 전통 예술인들이 무대를 장식했다. 지난해에도 Project tHinG, 소리꾼 이나래, ACC PAN(박애리), 헤이 스트링, 첼로가야금, 뮤직그룹 세움 등 국악예술인들이 출연했다.

주최 측은 출연진을 ‘세계가 주목하는 음악가’, ‘전설’ 등 화려한 수사로 소개했으나 그들의 음악적 아성이 행사 성공으로 직결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행사 일수와 출연진을 줄이더라도 라인업을 조밀하게 구성해 ‘외화내빈’이라는 오명을 벗어야 할 필요성이 2년 연속 제기된다.

이 같은 ‘차림’에 비해 출연진들은 분전하는 모양새였다. 현악 주자 박다울과 박우재는 크레셴도의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는 곡들로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생소한 전통악기 카만체를 연주하는 카이안 칼호르 트리오의 공연도 이목을 끌었다. 동양의 아쟁을 빼어 닮은 소리에 어우러지는 병풍 세트, 분위기는 고즈넉한 정취를 선사했다.

‘엘레멘츠 오브 바라카’가 극장1 빅도어 스테이지에서 공연을 펼치는 장면. <ACC재단 제공>
모로코 전통음악과 변화무쌍 일렉트로닉 음악의 진수를 보여준 ‘엘레멘츠 오브 바라카’가 무대에 오를 때에는 관객들의 환호성도 들려왔다. 이들은 사이키델릭한 감성으로 자신들의 음악적 가능성을 증명했다.

한 관객은 “알 수 없는 라인업이지만 마니악한 매력이 있다”는 후기를 남겼다. 그러나 월페는 퓨처 베이스, 트로피컬 등 서브 장르 기반의 마니악한 축제를 기치로 내걸지 않기에, 이 같은 호평 자체도 생각할 여지를 준다.

음악계 인사 B씨는 “‘카이한 칼호르 트리오’ 등은 물론 거장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은 예술가들이지만, 현장 관객들이 그것을 인지할 때 ‘거장’일 것이다”며 “월페가 대중음악과 세계 음악의 간극에서 고민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지만 이제는 정체성을 확립해야 할 때”라고 언급했다.

부대행사인 ‘악기 워크숍’, ‘시민 참여 프로그램’ 등 곁가지를 정돈하는 결정도 필요해 보였다. 주 역할 중 하나가 ‘동원 관객’이던 월페반디(봉사자)도 홍보 역을 보충하거나 재편성하는 것이 나아 보였다.

한편 문체부로부터 ACC재단이 교부받은 이번 축제 예산은 총 7억5000만원이었다.

/글·사진=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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