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어떻게 조물(造物) 할 것인가 - 김원명 광주원음방송 교무
2024년 08월 30일(금) 07:00 가가
우리가 삶을 마치면 영혼만 남게 되는데 그 영혼은 유일자이자 단독자이다. 영혼이 가진 특성에 따라 세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상주아(常住我 )이다. 영혼이란 죽었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다만 몸과 장소를 바꿀 뿐이다. 사람이 이 몸을 떠나 영혼으로 있다가 다음 생에는 박씨가 될 수도 있고 김씨가 되기도 한다.
둘째는 구족아(具足我)이다. 원불교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이것만 잘 계발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하셨다. 무엇이든 다 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원만 구족한 보배라고 했다. 내 영혼을 어떻게 사용하고 어떻게 계발하느냐에 따라 부자도 되고 부처도 되므로 구족하게 갖춘 자아라고 한 것이다. 이 자아를 잘 계발하면 부처님이나 대종사님처럼 우주도 들었다 놨다 하고 대각도 하고 부처도 될 수 있기에 다른 말로 이를 충만아(充滿我)라고 한다.
셋째는 주재아(主宰我)이다. 조물주가 나의 행복과 불행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로 조물주가 되어 나의 행복과 불행을 만들어 간다. 내가 나를 주재해서 이리 가기도 하고 또 저리 가기도 하기 때문에 영혼은 주재아이다. 조물주는 바로 나 자신이지 다른 누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조물주인 내가 나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사람은 누구나 근본적으로 두 가지 마음이 있다. 하나는 자애심으로 자기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다. 그런데 그 마음이 넘치거나 과하면 욕심쟁이가 되고 만다. 자기를 사랑하되 부처님의 자비로움으로 사랑해야지 탐욕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범부 중생의 삶은 안 된다.
둘은 의타심으로 누군가에게 의지하려는 마음이다. 사람이 죽어서 영혼이 뜨게 되면 어딘가에 기대고 싶어 한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영혼이 거래할 때 모습을 구생(救生)이라고 말한다. 평소 잘 살았다고 할지라도 영혼은 그 습성 자체가 어디에 붙기를 좋아해서 누군가에게 자꾸 의지하려고 한다. 그리고 의타심이 일어나게 되면 근본적으로 내 편과 네 편을 가르게 된다. 보통은 돈과 권력에 의타해서 속인이 되고 어두워지기 쉽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두 가지 마음을 잘 사용해서 나를 조물(造物)하고 훌륭한 인물이 되도록 해야겠다. 영혼이 육신을 떠나면 착심을 따라서 간다고 했다. 영혼이 거래할 때 착심 있는 곳은 밝고 다른 곳은 어두우므로 착심 있는 쪽으로 가서 부모를 선택한다. 내가 가고 싶고 또 집착하는 쪽으로 가니까 이것을 일러 끌어당기는 ‘인업(引業)’이라고 한다. 보통은 남녀에 집착하거나 전생의 습관을 따라가는데 신앙과 수행하는 사람은 부처가 되겠다는 원력을 따라간다. 그런데 정산 종사께서는 “원력도 혹 어두워질 수 있으니 그것마저도 놓아야 한다”고 했다. 원력을 단단히 세우고 서원을 하면 윤회를 벗어나 자유를 얻고 해탈을 얻어서 본인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
신앙과 수행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좋은 일을 많이 했어도 마지막 최후 일념을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 그곳으로 가서 태어나 업을 받는다고 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꾸며주는 업, 다시 말해서 만업(滿業)이라고 한다. 예를 들자면 집착으로 인해 강아지의 몸을 받았더라도 전생에 좋은 일을 많이 한 영혼은 예쁜 강아지로 태어난다. 내가 아무리 좋은 일을 많이 했어도 결정적일 때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서 만업이 꾸며지고 나타난다. 우리도 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때 최후의 일념을 어떻게 챙길 것인가를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최후 일념을 잘 챙겼더라도 평소 잘 살지 못했다면 그 잘못 살았던 기억들이 떠올라 거룩한 최후 일념이 되기가 어렵다.
서원을 잘 세우고 최후 일념을 잘 챙겨야 잘 거래할 수 있고 또 만업도 잘 지을 수 있다. 서원과 인업과 만업으로 잘 거래할 수 있도록 보통 때 애경(愛敬)에 힘써서 부처님께 공양도 올리고 경례도 잘하고 선행도 열심히 하면 자연히 인업도 만업도 잘 꾸며지게 된다.
첫째는 상주아(常住我 )이다. 영혼이란 죽었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다만 몸과 장소를 바꿀 뿐이다. 사람이 이 몸을 떠나 영혼으로 있다가 다음 생에는 박씨가 될 수도 있고 김씨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두 가지 마음을 잘 사용해서 나를 조물(造物)하고 훌륭한 인물이 되도록 해야겠다. 영혼이 육신을 떠나면 착심을 따라서 간다고 했다. 영혼이 거래할 때 착심 있는 곳은 밝고 다른 곳은 어두우므로 착심 있는 쪽으로 가서 부모를 선택한다. 내가 가고 싶고 또 집착하는 쪽으로 가니까 이것을 일러 끌어당기는 ‘인업(引業)’이라고 한다. 보통은 남녀에 집착하거나 전생의 습관을 따라가는데 신앙과 수행하는 사람은 부처가 되겠다는 원력을 따라간다. 그런데 정산 종사께서는 “원력도 혹 어두워질 수 있으니 그것마저도 놓아야 한다”고 했다. 원력을 단단히 세우고 서원을 하면 윤회를 벗어나 자유를 얻고 해탈을 얻어서 본인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
신앙과 수행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좋은 일을 많이 했어도 마지막 최후 일념을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 그곳으로 가서 태어나 업을 받는다고 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꾸며주는 업, 다시 말해서 만업(滿業)이라고 한다. 예를 들자면 집착으로 인해 강아지의 몸을 받았더라도 전생에 좋은 일을 많이 한 영혼은 예쁜 강아지로 태어난다. 내가 아무리 좋은 일을 많이 했어도 결정적일 때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서 만업이 꾸며지고 나타난다. 우리도 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때 최후의 일념을 어떻게 챙길 것인가를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최후 일념을 잘 챙겼더라도 평소 잘 살지 못했다면 그 잘못 살았던 기억들이 떠올라 거룩한 최후 일념이 되기가 어렵다.
서원을 잘 세우고 최후 일념을 잘 챙겨야 잘 거래할 수 있고 또 만업도 잘 지을 수 있다. 서원과 인업과 만업으로 잘 거래할 수 있도록 보통 때 애경(愛敬)에 힘써서 부처님께 공양도 올리고 경례도 잘하고 선행도 열심히 하면 자연히 인업도 만업도 잘 꾸며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