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의 ‘소설처럼’] 우리가 빌딩에서 할 수 있는 일들 - 박소란 ‘빌딩과 시’
2024년 08월 28일(수) 22:30
우리는 산과 강을, 바다와 하늘을 이야기한다. 그것들을 바라보고 사랑하며, 그것들이 훼손되는 현실을 걱정한다. 그런데 정작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은 도시이며 더 협소하게 살피자면 ‘빌딩’이다. 마천루 빌딩에서부터 낡아빠진 연립주택까지 모두 빌딩이며 우리는 이런저런 빌딩을 들어갔다 나갔다 다시 들어가길 반복하며 일상을 영위한다. 어느 빌딩 안에 있는 집에서 일어나 어느 빌딩 안에 있는 사무실에 간다. 두 빌딩을 오가는 길에 수많은 빌딩이 늘어서 있다. 그중 어느 빌딩에 있는 편의점에 간다. 세탁소에 간다. 부동산에 간다. 병원에 간다. 마트에 간다. 그것들은 모두 빌딩에 있다. 우리의 일상은 이제 빌딩 없이는 설명 불가하다. 본 글도 필자가 자주 다니는 어떤 빌딩 안에서 쓰고 있으며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여느 빌딩 안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빌딩에 갇힌 걸까. 빌딩에서 벗어나 살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빌딩 안에서 행복하게, 평안하게, 별 일 없이 살면 되는 걸까.

박소란 시인의 저서 ‘빌딩과 시’는 위와 같은 빌딩에 대한 사유를 촉발했다. 사유하기 전 빌딩은 똑똑한 자산가의 재산 증식 수단, 깐깐한 건물주의 고정 수입원 그리고 자산가와 건물주가 되지 못한 사람들이 드나드는 공간 정도로 인식했다. 그러나 ‘빌딩과 시’를 읽은 후의 독자는 시의 힘을 빌려 “빌딩이라는 크고 단단한 상자 속에 든 작고 무른 사람. 이따금 상자 밖을 어슬렁거리는 사람. 상자 안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는 사람”을 상상하게 된다. 그곳에는 결국 사람이 있다.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다. 예컨대 고층 건물에서 야근하며 먼 풍경을 바라보며 약간의 위로를 받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비상계단에서 누군가 떨어트린 밴드나 실핀을 줍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루아침에 자신이 살던 집에서 쫓겨나듯 이사를 나가야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며, 거대한 빌딩을 보며 헤어진 연인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빌딩에 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기 때문이다.

글을 읽고, 글을 따라 빌딩에서 새어 나오는 빛과 그 빛에 둘러싸인 사람을 상상하다 보면 예기치 못한 슬픔에 빠져든다. 우리는 빌딩에서 생을 다한 사람들을 알고 있다. 빌딩은 때로 무너지고 불에 타며 유독가스를 만들기도 한다. 또한 어떤 빌딩에서는 사람이 뛰어내리고 또 다른 빌딩에서는 권력이 시민을 죽이기도 했다. 학창 시절 필자가 자주 갔던 빌딩은 충장로 전일빌딩이었다. 빌딩 1층에 크나큰 오락실이 있었다. 거기에서 격투 게임 아니면 리듬 게임을 즐겼다. 그렇게 시시덕거리다 보면 문득 그 빌딩에 얽힌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곳에서 사람이 많이 끌려갔다지. 몇몇은 죽었다지. 군인이 시민에게 총을 쐈다지. 헬기로 조준 사격을 했다지. 그 모든 일이 빌딩 안에서, 빌딩 곁에서, 빌딩 위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에 소름이 인다. 소름 뒤에 슬픔이 밀려온다. 빌딩은 사람이 만든 것이다. 빌딩에서의 폭력 또한 당연히 사람의 짓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그렇게 했다. 그것이 우리가 만든 빌딩의 역사다.

‘빌딩과 시’를 읽은 후에는 시인의 최근 시집 ‘수옥’을 읽는 게 좋다. 시집은 부고의 연습처럼 느껴진다. 부고를 받고 장례식장이 있는 빌딩에 들어서는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아니, 부고를 돌리고 아직 손님이 오지 않은 빈소에 앉아 있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정갈한 자세로 슬픔을 맞이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가늠되는 사람이라면, 박소란 시인의 두 책에서 적잖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번듯한 빌딩에서 최대한 슬프지 않으려 애쓴다. 이 빌딩에서 엑셀 파일을 들여다보며 업무에 집중하고 저 빌딩에서 휴대전화를 뚫어져라 보며 정신을 흩트린다. 그 빌딩에 함께 있는 사람을, 건너 빌딩에 외따로 떨어진 사람을, 같은 빌딩 다른 층의 낯선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잊고 싶어 한다. 나를 생각하는 건 괴로운 일이니까. 사람을 생각하면 결국 나를 생각하게 되니까, 시작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그러한 슬픔을 통과하지 않고 우리가 괴물 아닌 사람으로 계속하여 존재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있다면 박소란의 글과 시를 읽기를, 빌딩 안에 앉아 권해본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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