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소년과 인어의 우정…편견 넘어 진정한 소통 이끌어
2024년 08월 27일(화) 19:40
리뷰 - ACC 가족오페라 ‘물의 아이’
미디어아트로 표현 ‘윤슬’ 신비로움
라이브 애니메이션·화려한 삽화 눈길
전 연령 함께 즐길수 있는 가족공연
오케스트라 음향 전달 아쉬움 남아

인어의 미역과 진주의 인어를 받은 어린 오동이는 ‘바다의 힘’을 지니고 있다. 아리가 과거를 회상하며 독창하는 장면. <영아츠컴퍼니 제공>

어떤 공연은 객석을 떠나는 순간 잊히지만 시간이 흘러도 뇌리에 남는 것도 있다. 지난 24일 ACC 예술극장에서 영아츠컴퍼니가 선보인 가족오페라 ‘물의 아이’는 어떤 작품이었을까.

기자는 공연을 관람한 뒤 밖으로 나서는 관객들의 후문(後聞)에 귀 기울였다. 어떤 아이는 들뜬 모습으로 인어 ‘아리’와 소년 ‘오동이’의 모험기를 회자하는 반면, 기대가 컸던 탓인지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어린이 관객들의 마음에 평생 남는 작품이 되기 위해 어떤 점이 더 필요할지.

가족 오페라 ‘물의 아이’는 바다에서 자란 소년 오동이(테너·김지훈)와 인어 아리(소프라노·최예은)의 우정 이야기를 다뤘다. 5세 이상 관람가였으며 주말 시간을 내 찾은 가족 단위 관람객이 대부분이었다.

공연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풍경은 플로어에 드리워진 파랑(波浪)이다. 미디어아트를 통해 형상화한 윤슬은 바다 속 깊이 와있는 듯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천장에서 전동형 와이어를 타고 내려오는 모형 해파리와 돛 등도 ‘바다 전설’이라는 공연 컨셉과 어울렸다. 이 밖에도 비눗방울, 라이브 애니메이션 등 시각 요소가 풍부해 전 연령이 함께 즐기는 가족 공연으로 적합해보였다.

다만 볼거리 못지 않게 오페라에서 핵심적인 것은 작품의 골자가 되는 ‘서사’다. 아이들이 집중력을 잃지 않고 내용을 파악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은 중요하다.

내레이션을 활용하거나 아리아에 서사를 녹여 내러티브를 전하는 방식은 전략적이었으나, 본무대 한 단 아래에 위치한 오케스트라 피트(OP)에서 들려오는 음향이 다소 컸다. 배우들의 대사 위에 음악이 레이어링 돼 소리가 공명하는 것처럼 들렸다.

최근 전국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뮤지컬 ‘시카고’에서 무대 위에 14인조 빅밴드를 그대로 올려 서사와 배경음의 조화를 이룬 방법 등이 떠올랐다.

물론 일부 씬에서 피트에 조명을 비추며 지휘자와 문답을 이어가는 등 연주단을 주역으로 끌어오는 시도는 흥미로웠다.

작중 마을 사람들에게 인어 ‘아리’는 공포의 대상이다. 그럼에도 오동이는 주변의 편견과 차별을 넘어서 아리는 진정한 소통을 나눈다. 교훈적인 내용을 판타지 속에 결합시킨 방식은 나름 호평할 만 했다.

지난 24일 ACC 예술극장에서 판타지 가족오페라 ‘물의 아이’가 펼쳐졌다. 공연에 앞서 리허설을 진행하는 장면.
인어 ‘아리’는 통통 튀는 인간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서양의 세이렌 신화나 바빌로니아의 수신 에아 등과 다른 친근한 이미지로 아이들에게 호감을 줬다.

주술사 우루술사(바리톤·류동휘)가 어린이 관객들에게 퀴즈를 내거나 객석에서 배우가 나타나는 동선은 흩어지는 집중력을 붙잡아주는 장치들이었다. ‘무등산에서 떠온 물’ 등 대사를 활용하거나 전라도 사투리를 접목한 부분은 지역 공연 특성을 살린 개작의 흔적이다.

공연은 진지한 아리아에 위트 있는 동작을 곁들여 아이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다만 8~90년대 유행한 ‘숭구리당당 댄스’나 “침으로 장을 담그면 ‘퇴장’” 등 고루한 유머가 뉴미디어에 익숙해진 아이들에게 통할지 고민이 필요해보였다.

라이브 애니메이션과 화려한 삽화도 이목을 끌었다. 마치 오페라 ‘투란도트’처럼 성곽 형태로 만들어진 LED 디스플레이는 원근감을 자아냈으나 뾰족한 모양 탓에 이미지가 분산된 느낌이었다.

일례로 우루술사가 등장할 때 비친 산수풍경은 삼각형 스크린에 담기는 적절했으나, 정방형의 중심에 인물이 위치하는 대부분 이미지들은 애니메이션이 분산돼 보여 아쉬웠다.

그럼에도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던 장면은 단연 인어 아리가 들려준 청아한 독창이었다.

티 없는 소프라노의 목소리는 오페라 감동의 본질이 서사와 함께 ‘소리’에 있음을 방증했다. 팸플릿에 곡목이 나와 있지 않아 노래들을 레퍼토리로 소개하는 것도 ‘음악’에 집중하도록 하는 방법일 것 같다.

한편 이번 공연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예술지원을 통해 전국에서 상연했다.

/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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