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유익한 인터뷰] 우리들의 변호사, 용서와 화해를 말하다 - 박준영 재심 전문 변호사
2024년 06월 04일(화) 12:15 가가
언어를 갖지 못한 약자를 위한 진실의 힘
진솔하고 당당한 비주류 재심 변호사
재심 당사자들이 설립한 ‘등대장학회’
“저의 말과 글, 실천이 누군가에게
용기와 희망의 동력이 되길 바랍니다
진솔하고 당당한 비주류 재심 변호사
재심 당사자들이 설립한 ‘등대장학회’
“저의 말과 글, 실천이 누군가에게
용기와 희망의 동력이 되길 바랍니다
‘이토록 유익한 인터뷰’는 알아두면 유익한 지식과 함께 삶을 통찰하는 지혜를 전하고자 합니다. 사회, 문학, 철학, 경제, 과학 등 각 분야에서 종횡무진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 그리고 만나고 싶은 셀럽들의 인터뷰를 통해 여러분의 지식창고를 채워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 신화속의 법과 정의의 여신 ‘디케’는 헝겊으로 눈을 가리고 있다. 인간세상에서 재판할 때, 주관성을 버리겠다는 뜻이다. 또한 손에는 법을 엄격하게 집행하겠다는 뜻으로 칼이나 법전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편견을 버리고 공평하고 정의롭게 하겠다는 의미로 저울을 들고 있다. 우리나라 대법원 앞에도 한복을 입은 법과 정의의 여신이 서있다.
‘사람의 생사가 나 한 사람의 살핌에 달려 있으니 밝게 살피지 않을 수 없겠으며, 사람의 생사가 나 한 사람의 생각함에 달려 있으니 신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법관의 판결은 밝게 살피고 공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평하고 정의로운 법의 가치를 말하고 있지만 지금의 현실은 꼭 그렇지 않다.
<순천 청산가리 살인사건>부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나라슈퍼 살인사건>까지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이 사건들은 모두 재심 판정을 받았다. 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난 사건을 다시 따지는 게 재심이다.
재심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결정적인 흠이 있을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어쩌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일이니 법원은 재심 청구를 받아들이는 데 인색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재심 사건으로 무죄가 난 사건은 민주화운동 관련이나 간첩 사건 같은 시국 사건들이 대부분이다. 그것도 민주화 이후에나 가능했다.
시국 사건의 재심은 정치적인 이유로 수많은 변호사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의 응원을 받지만 형사 재심 사건은 사정이 다르다. 피해자 대부분이 가난하고 힘없는 사회적 약자인데다가 재심 청구에 필요한 증거와 기록 확보도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돈이 되지 않는 사건이니 재심 사건에 주목하는 변호사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세상에는 다른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법이다. 우리나라에 극소수에 해당하는 ‘고졸 출신’ 변호사. 공감과 희망의 사회를 살고 싶은 게 꿈이라는 박준영 변호사는 억울한 누명을 써도 변호사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약자들을 위해 기꺼이 힘든 길을 선택했다. 법의 이름으로 살인범의 누명을 쓴 사람들, 짓지 않은 죄 때문에 수십 년 동안 감옥살이를 해야 했던 사람들 곁에 재심 전문 변호사 박준영이 있다. 그가 말하는 용서와 화해는 어떤 의미일까. 박준영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Q. 요즘도 여전히 바쁘시죠?
네, 바빠야 하는데, 일 진행이 더뎌서 좀 답답합니다. 올해 1월 광주고등법원이 재심을 결정한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은 검찰이 대법원에 불복해서 재심 확정이 미뤄진 상태입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대법원이 재심을 확정한 ‘진도 송정 저수지 추락 사건’ 은 광주지방법원 해남지원에서 재심이 진행 중입니다.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조선족 동포 등 앞으로 청구해야 할 외국인 재심 사건도 여러 건 있고요.
그 외에도 포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사망 사건, 북한이탈주민 간첩 사건 등 10여 건이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 속에서 진행됐던 ‘무기수 김신혜 씨 사건’은 선임과 해임이 반복되었습니다. 최근에 다시 맡아서 변호를 하고 있는데요. 올해 안에 1심 판결이 나올 것 같습니다. 속사정을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이야기할 수 있는 적절한 때가 오겠죠. 준비 중인 사건 외에도 도와달라는 요청은 여러 경로로 계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시간과 에너지를 잘 써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습니다.
Q. 원래 꿈이 변호사였나요?
성적이 좋았다면, 아마 판사나 검사를 했을 겁니다. 사법시험도 1점 차로 합격했고, 사법연수원 성적도 밑바닥이었습니다. 저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물론 사법연수원 수료 후 곧바로 변호사를 시작한 사람들이 다들 저와 같지 않습니다. 충분한 실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판·검사를 지원하지 않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머리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살았는데 진짜 똑똑한 사람이 따로 있었습니다. 사법연수원에서 성실하게 경쟁하지 못한 점도 있지만 뒤처지고 밀리면서 ‘겸손’을 배운 것 같아요.
점점 법적 분쟁이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똑똑한 사람들의 능력과 성실함이 공동체를 위해 쓰여야 하는데, 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판·검사들이 직업적 사명감을 지키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꽤 들려옵니다. 고액의 수임료를 받는 변호사보다는 세상에 대한 애정을 키워가며 판·검사직에서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Q. 사법시험 합격 후에는 인생이 많이 달라졌나요?
많이 달라졌지요.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없거든요.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말과 쌍벽을 이루는 거짓말이 ‘직업엔 귀천이 없다’는 말입니다. 한동안 고시 합격에 취해 살았는데, 요즘은 1점 차로 합격해서 다행이지 1점 차로 떨어졌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이런 생각 할 때가 종종 있어요. 욕심 많고 말 잘하기 때문에 남 등쳐 먹고 살지 않았을까 싶거든요.
한때는 학연, 지연이 없는 고졸 변호사여서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다녔어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참 부끄러워요. 흔히들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것마저 없어서 낙오가 아니라 출발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데요. 무모한 시도나 실수가 용인되던 시절을 살면서 얻어낸 기회를 잘 활용해서 고시 합격이라는 타이틀을 가졌는데, 힘들었다…웃기는 얘기죠.
20년 가까이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돈을 적지 않게 벌 때도 있었는데, 그 당시 부끄러운 변론도 꽤 했습니다. 돈 잘 버는 변호사가 다 이렇다는 건 아닙니다. 요즘 돈으로 보상되는 액수만큼 일의 가치를 평가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것 같아요. 이러한 사회의 가치 풍토에 대해 비판과 성찰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낮춰보는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직하게 땀 흘려 일하는 분들을 존경합니다. 이분들이 정직한 보수와 정직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Q. 첫 재심 사건이 궁금해요?
성적이 안 좋고 인맥도 없어서 취업이 쉽지 않았습니다. 서울에서 일하고 싶었는데, 받아주는 곳이 없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수원에 둥지를 틀었는데, 수원은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곳이었습니다. 고용 변호사로 일하다가 1년 반 정도 지나 수원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사선 변호 사건이 별로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국선 변호를 많이 했어요. 열등감을 느낄 때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운명을 바꾼 ‘수원 10대 소녀 상해치사사건’을 국선 사건으로 맡게 된 거예요. 인생사 새옹지마라 하잖아요. 뒤처지고 실패했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기회로 연결된 거예요.
이 사건은 가출 청소년 5명과 지적 장애 노숙인 2명, 총 7명이 사람을 죽였다는 누명을 쓴 사건인데 모두 무죄로 풀려났습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인사청문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꼽았습니다. 대법원장님은 2심 재판장이셨습니다. 선입견, 편견 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꼼꼼히 살펴주셨습니다.
Q. ‘수원 10대 소녀 상해치사 사건’이 변호사 인생의 전환점이 된 거네요?
맞습니다. 나름 열심히 했지만 억울함만 보고 했던 게 아니에요. 무죄 받으면 변호인으로서 제가 많이 알려지겠다는 생각이 앞섰어요. 2022년 여름에 SBS 윤춘호 논설위원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윤춘호 위원이 수원 사건을 변호할 당시 저를 도왔던 경기도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유순덕 소장님께 저에 대해 여쭤보셨더라고요.
“그때 저희 센터에서 이 사건을 돕기 위해 TF를 꾸렸거든요. 거기에 가셨던 선생님들 이야기가 박준영 변호사가 이 사건으로 개인적인 기회를 잡으려고 하는 것 같다,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것을 보니 그러더라는 겁니다. 저희들 입장에서는 순수한 정의감으로 일하면 좋겠지만 아이들을 도울 변호사가 있다는 것만으로 다행이었고 그분의 그런 의도를 우리도 이용할 수 있는 거 아니냐 생각했습니다.” <[그사람] 용서와 화해를 말하는 ‘재심 변호사’ 박준영의 꿈>
제 욕심을 다 알고 계셨어요. 그런데 드러내지 않으셨거든요. 그 당시 제 욕심과 허물을 감싸주시고 묵묵히 도왔던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수원 사건이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흠을 들추고 잘못을 꼬집는 것보다는 도자기를 굽는 가마처럼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훈도’해주는 사회를 꿈꿉니다.
Q. 재판 과정에서 잘못된 판단을 하는 이유는 뭘까요?
오판 사례를 분석한 국내외 연구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허위자백, 피해자·목격자의 허위 또는 오인 진술, 과학적 증거의 오류 등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허위자백의 원인은 시대 변화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1980, 1990년대에는 고문, 폭행, 협박, 신체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등의 비중이 높았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회유나 유도 신문 등 참기 힘든 물리력 행사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허위자백을 하는 경우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수원 10대 소녀 상해치사사건’에서는 7명이 회유나 유도 신문 등을 버티지 못하고 사람을 때려 죽였다는 자백을 했습니다. 오판 연구에서 드러난 ‘인간 심리의 타고난 결함’은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입니다. 우리는 가정, 학교, 직장 등에서 일상생활을 하며 무수히 많은 판단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성급함, 편협한 태도, 오해와 오인 등으로 불의한 일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진도 송정 저수지 추락사건’은 과학적 증거의 오류가 오판의 주된 원인이었습니다. 과학적 증거 중에는 DNA와 같이 객관적이고 정량화가 가능해서 신빙성이 높은 증거도 있지만 일부 증거는 해석과 판단과정에서 ‘주관’이 개입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과학을 그 근거로 활용하려 하는 경우 오류 발생 가능성이 커지는 것 같습니다. 과정과 절차보다 실적과 목표가 강조되는 사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Q. 재심 사건을 맡으면서 느끼는 바가 많겠어요?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은 아버지와 딸이 아내이자 엄마를 청산가리 섞은 막걸리를 마시게끔 하여 살해하였다는 이유로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는데, 얼마 전 재심개시결정과 함께 형집행정지가 되어 부녀가 출소했습니다.
저는 순천 사건을 통해 언어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자기 경험과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갖지 못하면 얼마든지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순천 사건은 ‘증거’가 아닌 ‘감’으로 진행된 수사였습니다.
검사실 조사 영상을 보면 검사와 수사관은 자신들의 머릿속 시나리오를 주입하기 바쁘고 언어가 부족한 부녀는 뭐라고 반박해야 할지 모릅니다. 조서에는 부녀의 부족한 언어가 왜곡되어 정리되었고, 제대로 읽지 못하고 한 서명·날인은 무거운 책임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이런 사건에서 변호사는 언어가 부족한 분들의 입이 되어 이들의 처지와 상황을 잘 설명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게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최근에 외국인 재심 사건을 준비하면서 더 절감하는 문제입니다.
Q. 변호사로서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인가요?
스스로 직업인으로서의 장점을 이야기한다는 게 민망한데요. 한때는 조세, 특허, 금융 등 화이트칼라 사건을 다뤄보고 싶었고 공부도 나름 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부족해서인지 기회가 쉽게 찾아오질 않더라고요. 어쩌다 재심사건을 주로 하는 변호사가 되었는데요. 저는 사건을 통해 우리 사법시스템의 실상을 제대로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난방이 잘 된 실내에서 겨울이라는 계절의 실상을 느낄 수 없습니다. 얇은 옷을 입고 밖에 나가야 살을 에는 추위를 느낄 수 있거든요. 사법시스템의 실상도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곤경을 통해 확인하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 신영복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어떤 사람의 인생에 대한 평가는, 삶 속에 그 사람이 살아온 시대의 모순이나 아픔이 얼마나 담겨있는지를 봐야 한다고요. 변호사로서 제가 하는 일의 장점은 제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모순과 아픔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겁니다.
Q. 재심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들의 화해를 돕고 있다면서요?
돕고 있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고요. 여러 시도를 해보는 중입니다.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에서 법정에 나와 증언을 한 경찰이 자살했습니다.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한 자녀들을 둔 가장이었거든요. 사건 당시 막내 경찰이어서 지시에 따르거나 분위기를 거스르지 못했던 사정도 있었을 겁니다. 이런 점에 대한 배려 없이 폭행을 주도한 고참 경찰들과 싸잡아 비난했습니다. 법정에서 큰 소리로 추궁했고요. 저는 정의로움에 취해 있었고 막내 경찰은 저 때문에 과한 비난을 받았습니다.
사건의 충격적인 모습을 이런 식으로 공론화하는 게 누구를 위한 일인가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 사건으로 그 사람의 삶 전체를 부정하면 안 되고, 그 사람의 가족이 받는 고통도 살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가해자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고, 피해자는 용서와 화해를 고민해 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너무 이상적이라고 하실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어렵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시도를 해보자는 겁니다. 주어진 조건에서 하나씩 시도하고 배워가는 게 삶의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장되고 분노 섞인 발언과 차분한 사고에서 나온 주장의 차이는 분명히 있습니다. 호의적이고 품위 있는 말과 글을 함께 고민했으면 합니다.
Q. 사죄가 있어야 용서와 화해도 가능한데 가해자들의 사죄가 쉽게 이뤄질까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는 ‘완전한 진실을 고백한 가해자에 대한 화해조치’를 담고 있습니다(제38조). 진실규명의 과정에서 가해자가 가해사실을 스스로 인정함으로써 진실규명에 적극 협조하고, 그 인정한 내용이 진실에 부합하는 경우에는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거나 감형을 받게끔 하자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형사상의 선처뿐만 아니라 민사상 배상책임의 감면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과와 반성 이후 감당해야 할 책임을 줄여주면 용기 있는 고백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미국에서 본인이 수사했던 사형수를 찾아가서 사과했던 사례가 있습니다. 글렌 포드라는 사람이 1983년에 1급 살인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30년이 지나서 진범이 따로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요. 글렌 포드는 30년 만에 무죄가 확정됐지만 말기 폐암 투병 중이었습니다.
사형 선고 당시 담당 검사였던 마티 스트라우드가 찾아가서 정말 죄송하다고 말했지만 피해자는 유감이지만 용서는 못 하겠다고 말했죠. 그런데 스트라우드 검사는 이렇게 사과만 한 게 아니라 지역 신문에 기고도 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합니다.
안타깝게도 글랜 포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기구한 운명의 글렌 포드보다는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 스트라우드 검사가 더 회자가 됩니다. 칭찬도 많이 받았고요. 이것이 시사하는 바가 있거든요.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을 때는 사람들이 잘못을 고백한 사람의 과오도 보지만 그 용기에 주목하여 응원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거죠.
Q. 재심으로 무죄를 받은 분들과 함께 장학회를 만들었다면서요?
재심으로 무죄를 받고 나면 피해자들에게 배상금과 보상금이 나오는데 이분들이 주신 돈을 2017년부터 모아왔습니다. ‘삼례, 약촌오거리 사건’ 때부터인데요. 2022년에 ‘낙동강변 살인사건’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신 분들이 적지 않은 돈을 내놓으셨습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을 지원해 오다가 지난해 가을 등대장학회를 설립했습니다.
공익성을 담보하는 기본 재산이 5억 원인 공익 재단법인입니다. 갈수록 각박하고 살기 힘들다고 하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가정의 아이들이 꿈을 지킬 수 있도록 돕는 활동을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할 계획입니다. 장학회 활동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인정이 곳곳에 많이 남아 있고 우리가 키워낼 수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시민들에게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모아주신 돈은 곤경을 겪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쓰입니다. 저는 장학회에서 감사직을 맡고 있습니다. 정직하게 운영되도록 하겠습니다.
Q. 어떤 변호사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핸리 스위트 사건(1925년)에서 클래런스 대로 변호사가 멋진 변론을 했거든요. 흑인들이 노예제에서 공식적으로 해방되었다고 하지만 현실에서 어떤 곤경을 겪고 사는지 막힘없이 설명하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법적으로는 그들이 평등해졌지만, 사람들의 인식은 아직 아닙니다. 결국 핵심은 ‘인간이 무엇을 이루었는가’에 있습니다. ‘법이 무엇을 이루었는가’가 아닙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대로는 또 이런 말을 했습니다.
“결국 현실에서 모든 인간의 삶은 불가피하게 다른 이들의 삶과 얽혀 있으므로, 우리가 어떤 법을 통과시키고 그 어떤 예방조치를 하더라도,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이 호의적이고 품위 있고 인간적이고 자유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자유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유는 법과 제도보다는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정의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흐름 출판>
법이 실제보다 추상적 이론을 앞세울 때가 많습니다. 현실 속 우리의 모습에서 출발하여 함께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이야기하는 변호사가 되고 싶고 그렇게 기억되길 바랍니다.
Q. 이루고 싶은 꿈이 있나요?
모르겠어요. 얼마 전 고향 친구와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 가서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을 불렀어요.
<보일 듯 말 듯 가물거리는 안개 속에 싸인 길, 잡힐 듯 말 듯 멀어져가는 무지개와 같은 길. 그 어디에서 날 기다리는지 둘러 보아도 찾을 수 없네. 그대여 힘이 되주오. 나에게 주어진 길 찾을 수 있도록 그대여 길을 터주오 가리워진 나의 길>
많이 울었습니다. 보일 듯 말 듯하고 잡힐 듯 말 듯합니다. 흠 많은 인간으로 우여곡절을 거듭하지만 큰 실망 드리지 않고 마무리하면 좋겠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의 말과 글 그리고 실천이 누군가에게 용기와 희망의 동력이 되길 바랍니다. 자녀들이 행복하게 살길 바랍니다. 이 꿈을 위해 부모로서 기본적인 노력을 하고 싶습니다. 경제적인 기본은 낮추고 정서적인 기본은 높여 잡고 싶습니다.
◇박준영
재심 전문 변호사. 1974년 전남 완도 노화읍 출생. 노화종합고등학교 졸업 후 목포대학교 전자공학과 중퇴. 2002년 제4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 35기 수료한 후 수원시에서 변호사로 개업했다. 2007년 ‘수원역 10대 소녀 상해치사 사건’의 재심을 계기로 국내 최초 재심 전문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대표 재심 사건으로는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무기수 김신혜 사건’,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 ‘낙동강변 살인사건’, ‘8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등으로 영화 ‘재심’과 ‘소년들’의 실제 주인공 변호사다. 2015년 제3회 변호사 공익대상(개인부분)수상, 2016년 헌법재판소 모범 국선대리인 표창, 민간 분야 법조 관련 상 중에 최고 권위의 상인 <제15회 영산법률문화상>을 수상했다.
/글·사진=정지효 기자 1018hyohyo@gmail.com
‘사람의 생사가 나 한 사람의 살핌에 달려 있으니 밝게 살피지 않을 수 없겠으며, 사람의 생사가 나 한 사람의 생각함에 달려 있으니 신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법관의 판결은 밝게 살피고 공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평하고 정의로운 법의 가치를 말하고 있지만 지금의 현실은 꼭 그렇지 않다.
시국 사건의 재심은 정치적인 이유로 수많은 변호사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의 응원을 받지만 형사 재심 사건은 사정이 다르다. 피해자 대부분이 가난하고 힘없는 사회적 약자인데다가 재심 청구에 필요한 증거와 기록 확보도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돈이 되지 않는 사건이니 재심 사건에 주목하는 변호사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세상에는 다른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법이다. 우리나라에 극소수에 해당하는 ‘고졸 출신’ 변호사. 공감과 희망의 사회를 살고 싶은 게 꿈이라는 박준영 변호사는 억울한 누명을 써도 변호사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약자들을 위해 기꺼이 힘든 길을 선택했다. 법의 이름으로 살인범의 누명을 쓴 사람들, 짓지 않은 죄 때문에 수십 년 동안 감옥살이를 해야 했던 사람들 곁에 재심 전문 변호사 박준영이 있다. 그가 말하는 용서와 화해는 어떤 의미일까. 박준영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Q. 요즘도 여전히 바쁘시죠?
네, 바빠야 하는데, 일 진행이 더뎌서 좀 답답합니다. 올해 1월 광주고등법원이 재심을 결정한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은 검찰이 대법원에 불복해서 재심 확정이 미뤄진 상태입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대법원이 재심을 확정한 ‘진도 송정 저수지 추락 사건’ 은 광주지방법원 해남지원에서 재심이 진행 중입니다.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조선족 동포 등 앞으로 청구해야 할 외국인 재심 사건도 여러 건 있고요.
그 외에도 포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사망 사건, 북한이탈주민 간첩 사건 등 10여 건이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 속에서 진행됐던 ‘무기수 김신혜 씨 사건’은 선임과 해임이 반복되었습니다. 최근에 다시 맡아서 변호를 하고 있는데요. 올해 안에 1심 판결이 나올 것 같습니다. 속사정을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이야기할 수 있는 적절한 때가 오겠죠. 준비 중인 사건 외에도 도와달라는 요청은 여러 경로로 계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시간과 에너지를 잘 써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습니다.
Q. 원래 꿈이 변호사였나요?
성적이 좋았다면, 아마 판사나 검사를 했을 겁니다. 사법시험도 1점 차로 합격했고, 사법연수원 성적도 밑바닥이었습니다. 저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물론 사법연수원 수료 후 곧바로 변호사를 시작한 사람들이 다들 저와 같지 않습니다. 충분한 실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판·검사를 지원하지 않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머리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살았는데 진짜 똑똑한 사람이 따로 있었습니다. 사법연수원에서 성실하게 경쟁하지 못한 점도 있지만 뒤처지고 밀리면서 ‘겸손’을 배운 것 같아요.
점점 법적 분쟁이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똑똑한 사람들의 능력과 성실함이 공동체를 위해 쓰여야 하는데, 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판·검사들이 직업적 사명감을 지키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꽤 들려옵니다. 고액의 수임료를 받는 변호사보다는 세상에 대한 애정을 키워가며 판·검사직에서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Q. 사법시험 합격 후에는 인생이 많이 달라졌나요?
많이 달라졌지요.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없거든요.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말과 쌍벽을 이루는 거짓말이 ‘직업엔 귀천이 없다’는 말입니다. 한동안 고시 합격에 취해 살았는데, 요즘은 1점 차로 합격해서 다행이지 1점 차로 떨어졌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이런 생각 할 때가 종종 있어요. 욕심 많고 말 잘하기 때문에 남 등쳐 먹고 살지 않았을까 싶거든요.
한때는 학연, 지연이 없는 고졸 변호사여서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다녔어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참 부끄러워요. 흔히들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것마저 없어서 낙오가 아니라 출발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데요. 무모한 시도나 실수가 용인되던 시절을 살면서 얻어낸 기회를 잘 활용해서 고시 합격이라는 타이틀을 가졌는데, 힘들었다…웃기는 얘기죠.
20년 가까이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돈을 적지 않게 벌 때도 있었는데, 그 당시 부끄러운 변론도 꽤 했습니다. 돈 잘 버는 변호사가 다 이렇다는 건 아닙니다. 요즘 돈으로 보상되는 액수만큼 일의 가치를 평가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것 같아요. 이러한 사회의 가치 풍토에 대해 비판과 성찰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낮춰보는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직하게 땀 흘려 일하는 분들을 존경합니다. 이분들이 정직한 보수와 정직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 ![]() |
성적이 안 좋고 인맥도 없어서 취업이 쉽지 않았습니다. 서울에서 일하고 싶었는데, 받아주는 곳이 없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수원에 둥지를 틀었는데, 수원은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곳이었습니다. 고용 변호사로 일하다가 1년 반 정도 지나 수원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사선 변호 사건이 별로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국선 변호를 많이 했어요. 열등감을 느낄 때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운명을 바꾼 ‘수원 10대 소녀 상해치사사건’을 국선 사건으로 맡게 된 거예요. 인생사 새옹지마라 하잖아요. 뒤처지고 실패했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기회로 연결된 거예요.
이 사건은 가출 청소년 5명과 지적 장애 노숙인 2명, 총 7명이 사람을 죽였다는 누명을 쓴 사건인데 모두 무죄로 풀려났습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인사청문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꼽았습니다. 대법원장님은 2심 재판장이셨습니다. 선입견, 편견 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꼼꼼히 살펴주셨습니다.
Q. ‘수원 10대 소녀 상해치사 사건’이 변호사 인생의 전환점이 된 거네요?
맞습니다. 나름 열심히 했지만 억울함만 보고 했던 게 아니에요. 무죄 받으면 변호인으로서 제가 많이 알려지겠다는 생각이 앞섰어요. 2022년 여름에 SBS 윤춘호 논설위원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윤춘호 위원이 수원 사건을 변호할 당시 저를 도왔던 경기도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유순덕 소장님께 저에 대해 여쭤보셨더라고요.
“그때 저희 센터에서 이 사건을 돕기 위해 TF를 꾸렸거든요. 거기에 가셨던 선생님들 이야기가 박준영 변호사가 이 사건으로 개인적인 기회를 잡으려고 하는 것 같다,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것을 보니 그러더라는 겁니다. 저희들 입장에서는 순수한 정의감으로 일하면 좋겠지만 아이들을 도울 변호사가 있다는 것만으로 다행이었고 그분의 그런 의도를 우리도 이용할 수 있는 거 아니냐 생각했습니다.” <[그사람] 용서와 화해를 말하는 ‘재심 변호사’ 박준영의 꿈>
제 욕심을 다 알고 계셨어요. 그런데 드러내지 않으셨거든요. 그 당시 제 욕심과 허물을 감싸주시고 묵묵히 도왔던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수원 사건이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흠을 들추고 잘못을 꼬집는 것보다는 도자기를 굽는 가마처럼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훈도’해주는 사회를 꿈꿉니다.
Q. 재판 과정에서 잘못된 판단을 하는 이유는 뭘까요?
오판 사례를 분석한 국내외 연구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허위자백, 피해자·목격자의 허위 또는 오인 진술, 과학적 증거의 오류 등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허위자백의 원인은 시대 변화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1980, 1990년대에는 고문, 폭행, 협박, 신체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등의 비중이 높았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회유나 유도 신문 등 참기 힘든 물리력 행사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허위자백을 하는 경우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수원 10대 소녀 상해치사사건’에서는 7명이 회유나 유도 신문 등을 버티지 못하고 사람을 때려 죽였다는 자백을 했습니다. 오판 연구에서 드러난 ‘인간 심리의 타고난 결함’은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입니다. 우리는 가정, 학교, 직장 등에서 일상생활을 하며 무수히 많은 판단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성급함, 편협한 태도, 오해와 오인 등으로 불의한 일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진도 송정 저수지 추락사건’은 과학적 증거의 오류가 오판의 주된 원인이었습니다. 과학적 증거 중에는 DNA와 같이 객관적이고 정량화가 가능해서 신빙성이 높은 증거도 있지만 일부 증거는 해석과 판단과정에서 ‘주관’이 개입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과학을 그 근거로 활용하려 하는 경우 오류 발생 가능성이 커지는 것 같습니다. 과정과 절차보다 실적과 목표가 강조되는 사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Q. 재심 사건을 맡으면서 느끼는 바가 많겠어요?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은 아버지와 딸이 아내이자 엄마를 청산가리 섞은 막걸리를 마시게끔 하여 살해하였다는 이유로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는데, 얼마 전 재심개시결정과 함께 형집행정지가 되어 부녀가 출소했습니다.
저는 순천 사건을 통해 언어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자기 경험과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갖지 못하면 얼마든지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순천 사건은 ‘증거’가 아닌 ‘감’으로 진행된 수사였습니다.
검사실 조사 영상을 보면 검사와 수사관은 자신들의 머릿속 시나리오를 주입하기 바쁘고 언어가 부족한 부녀는 뭐라고 반박해야 할지 모릅니다. 조서에는 부녀의 부족한 언어가 왜곡되어 정리되었고, 제대로 읽지 못하고 한 서명·날인은 무거운 책임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이런 사건에서 변호사는 언어가 부족한 분들의 입이 되어 이들의 처지와 상황을 잘 설명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게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최근에 외국인 재심 사건을 준비하면서 더 절감하는 문제입니다.
![]() ![]() |
스스로 직업인으로서의 장점을 이야기한다는 게 민망한데요. 한때는 조세, 특허, 금융 등 화이트칼라 사건을 다뤄보고 싶었고 공부도 나름 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부족해서인지 기회가 쉽게 찾아오질 않더라고요. 어쩌다 재심사건을 주로 하는 변호사가 되었는데요. 저는 사건을 통해 우리 사법시스템의 실상을 제대로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난방이 잘 된 실내에서 겨울이라는 계절의 실상을 느낄 수 없습니다. 얇은 옷을 입고 밖에 나가야 살을 에는 추위를 느낄 수 있거든요. 사법시스템의 실상도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곤경을 통해 확인하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 신영복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어떤 사람의 인생에 대한 평가는, 삶 속에 그 사람이 살아온 시대의 모순이나 아픔이 얼마나 담겨있는지를 봐야 한다고요. 변호사로서 제가 하는 일의 장점은 제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모순과 아픔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겁니다.
Q. 재심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들의 화해를 돕고 있다면서요?
돕고 있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고요. 여러 시도를 해보는 중입니다.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에서 법정에 나와 증언을 한 경찰이 자살했습니다.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한 자녀들을 둔 가장이었거든요. 사건 당시 막내 경찰이어서 지시에 따르거나 분위기를 거스르지 못했던 사정도 있었을 겁니다. 이런 점에 대한 배려 없이 폭행을 주도한 고참 경찰들과 싸잡아 비난했습니다. 법정에서 큰 소리로 추궁했고요. 저는 정의로움에 취해 있었고 막내 경찰은 저 때문에 과한 비난을 받았습니다.
사건의 충격적인 모습을 이런 식으로 공론화하는 게 누구를 위한 일인가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 사건으로 그 사람의 삶 전체를 부정하면 안 되고, 그 사람의 가족이 받는 고통도 살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가해자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고, 피해자는 용서와 화해를 고민해 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너무 이상적이라고 하실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어렵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시도를 해보자는 겁니다. 주어진 조건에서 하나씩 시도하고 배워가는 게 삶의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장되고 분노 섞인 발언과 차분한 사고에서 나온 주장의 차이는 분명히 있습니다. 호의적이고 품위 있는 말과 글을 함께 고민했으면 합니다.
Q. 사죄가 있어야 용서와 화해도 가능한데 가해자들의 사죄가 쉽게 이뤄질까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는 ‘완전한 진실을 고백한 가해자에 대한 화해조치’를 담고 있습니다(제38조). 진실규명의 과정에서 가해자가 가해사실을 스스로 인정함으로써 진실규명에 적극 협조하고, 그 인정한 내용이 진실에 부합하는 경우에는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거나 감형을 받게끔 하자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형사상의 선처뿐만 아니라 민사상 배상책임의 감면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과와 반성 이후 감당해야 할 책임을 줄여주면 용기 있는 고백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미국에서 본인이 수사했던 사형수를 찾아가서 사과했던 사례가 있습니다. 글렌 포드라는 사람이 1983년에 1급 살인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30년이 지나서 진범이 따로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요. 글렌 포드는 30년 만에 무죄가 확정됐지만 말기 폐암 투병 중이었습니다.
사형 선고 당시 담당 검사였던 마티 스트라우드가 찾아가서 정말 죄송하다고 말했지만 피해자는 유감이지만 용서는 못 하겠다고 말했죠. 그런데 스트라우드 검사는 이렇게 사과만 한 게 아니라 지역 신문에 기고도 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합니다.
안타깝게도 글랜 포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기구한 운명의 글렌 포드보다는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 스트라우드 검사가 더 회자가 됩니다. 칭찬도 많이 받았고요. 이것이 시사하는 바가 있거든요.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을 때는 사람들이 잘못을 고백한 사람의 과오도 보지만 그 용기에 주목하여 응원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거죠.
![]() ![]() |
등대장학회 개소식. <(재)등대장학회 제공> |
재심으로 무죄를 받고 나면 피해자들에게 배상금과 보상금이 나오는데 이분들이 주신 돈을 2017년부터 모아왔습니다. ‘삼례, 약촌오거리 사건’ 때부터인데요. 2022년에 ‘낙동강변 살인사건’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신 분들이 적지 않은 돈을 내놓으셨습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을 지원해 오다가 지난해 가을 등대장학회를 설립했습니다.
공익성을 담보하는 기본 재산이 5억 원인 공익 재단법인입니다. 갈수록 각박하고 살기 힘들다고 하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가정의 아이들이 꿈을 지킬 수 있도록 돕는 활동을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할 계획입니다. 장학회 활동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인정이 곳곳에 많이 남아 있고 우리가 키워낼 수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시민들에게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모아주신 돈은 곤경을 겪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쓰입니다. 저는 장학회에서 감사직을 맡고 있습니다. 정직하게 운영되도록 하겠습니다.
Q. 어떤 변호사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핸리 스위트 사건(1925년)에서 클래런스 대로 변호사가 멋진 변론을 했거든요. 흑인들이 노예제에서 공식적으로 해방되었다고 하지만 현실에서 어떤 곤경을 겪고 사는지 막힘없이 설명하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법적으로는 그들이 평등해졌지만, 사람들의 인식은 아직 아닙니다. 결국 핵심은 ‘인간이 무엇을 이루었는가’에 있습니다. ‘법이 무엇을 이루었는가’가 아닙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대로는 또 이런 말을 했습니다.
“결국 현실에서 모든 인간의 삶은 불가피하게 다른 이들의 삶과 얽혀 있으므로, 우리가 어떤 법을 통과시키고 그 어떤 예방조치를 하더라도,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이 호의적이고 품위 있고 인간적이고 자유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자유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유는 법과 제도보다는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정의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흐름 출판>
법이 실제보다 추상적 이론을 앞세울 때가 많습니다. 현실 속 우리의 모습에서 출발하여 함께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이야기하는 변호사가 되고 싶고 그렇게 기억되길 바랍니다.
Q. 이루고 싶은 꿈이 있나요?
모르겠어요. 얼마 전 고향 친구와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 가서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을 불렀어요.
<보일 듯 말 듯 가물거리는 안개 속에 싸인 길, 잡힐 듯 말 듯 멀어져가는 무지개와 같은 길. 그 어디에서 날 기다리는지 둘러 보아도 찾을 수 없네. 그대여 힘이 되주오. 나에게 주어진 길 찾을 수 있도록 그대여 길을 터주오 가리워진 나의 길>
많이 울었습니다. 보일 듯 말 듯하고 잡힐 듯 말 듯합니다. 흠 많은 인간으로 우여곡절을 거듭하지만 큰 실망 드리지 않고 마무리하면 좋겠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의 말과 글 그리고 실천이 누군가에게 용기와 희망의 동력이 되길 바랍니다. 자녀들이 행복하게 살길 바랍니다. 이 꿈을 위해 부모로서 기본적인 노력을 하고 싶습니다. 경제적인 기본은 낮추고 정서적인 기본은 높여 잡고 싶습니다.
◇박준영
재심 전문 변호사. 1974년 전남 완도 노화읍 출생. 노화종합고등학교 졸업 후 목포대학교 전자공학과 중퇴. 2002년 제4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 35기 수료한 후 수원시에서 변호사로 개업했다. 2007년 ‘수원역 10대 소녀 상해치사 사건’의 재심을 계기로 국내 최초 재심 전문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대표 재심 사건으로는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무기수 김신혜 사건’,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 ‘낙동강변 살인사건’, ‘8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등으로 영화 ‘재심’과 ‘소년들’의 실제 주인공 변호사다. 2015년 제3회 변호사 공익대상(개인부분)수상, 2016년 헌법재판소 모범 국선대리인 표창, 민간 분야 법조 관련 상 중에 최고 권위의 상인 <제15회 영산법률문화상>을 수상했다.
/글·사진=정지효 기자 1018hyohy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