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영어 사용의 역습- 김해연 동신대 도시계획학과 2년
2024년 05월 20일(월) 22:00
여러분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이름은 몇 글자인가요?

최근 뉴스에서 전국에서 가장 긴 아파트 이름을 듣고 놀란 적이 있다. 전국에서 가장 이름이 긴 아파트는 전남 나주시의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 빛가람 대방엘리움 로얄 카운티 1차’와 ‘2차’로 무려 25자였고, 경기 화성에도 한참 읽어야 하는 이름의 아파트가 있는데, ‘동탄시범 다은마을 월드메르디앙 반도유보라’로 내비게이션에 입력하거나 쓰여진 글을 읽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다.

아파트 이름이 너무 길어지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쉽고 간결하게 짓자는 의견도 있지만, 아파트 이름이 길고 복잡하고 어려울수록 집값이 오른다는 인식 때문에 당분간은 긴 이름이 대세를 이룰 전망이다.

아파트 이름뿐만 아니라 사회 전 분야에서 영어 사용이 급격히 증가해 광고, 미디어에서 교육 및 비즈니스에 이르기까지 일상생활의 다양한 측면에 스며들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 자막이나 MZ세대 사이에 유행하는 소위 ‘인싸’ 용어들도 영어 아니면 영어와 한국어가 결합된 단어가 많다.

이는 현대성과 글로벌 연결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어 사용이 무분별하게 이루어질 경우 위에서 언급한 주거용 아파트의 복잡한 영어 이름으로 인한 부작용처럼 여러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

무분별한 영어사용이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립국어원이 2020년 전국 17개 시도 만 20~69세 성인 남녀 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2.9%가 ‘외래어나 외국어로 된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능력 있어 보이므로’라고 답했고, 15.7%는 ‘외래어나 외국어가 우리말보다 세련된 느낌이 있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단지 세련돼 보이고, 능력 있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의 소중한 한글을 배제하고 영어를 사용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문화 정체성을 약화시키는 행위라고 본다. 언어는 문화 유산의 핵심 요소이며 영어의 지배는 한국의 풍부한 언어 전통을 가리고 약화시킬 수 있다. 영어가 한국어보다 현대적이고 세련됐다는 인식으로 무분별하게 영어를 사용한다면 우리는 대한민국 문화의 독창성을 잃고 지역 정체성을 균질화시킬 위험이 있다.

더욱이 영어의 과도한 사용은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소지가 다분하다. 영어 능력은 종종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 더 나은 교육 기회, 더 유리한 취업 기회와 연관된다. 따라서 영어에 능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으며 이는 기존의 사회적 격차를 더욱 벌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언어적 불균형은 비영어 사용자들 사이에서 소외감을 키우고 소속감을 약화시키기도 한다.

세계화로 가는 첫걸음은 영어 교육일지 몰라도, 세계화로 가는 올바른 길은 우리말을 배우고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어를 잃으면, 문화를 잃고 나라를 잃는다’라는 말이 있다.

과거 일제강점기 시대에 일본인들이 우리말을 없애려고 일본어 교육을 강요한 것도 언어가 없으면 그 민족은 말살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태어나 한국어라는 소중하고 위대한 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았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라는 말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우리말의 소중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우리 언어의 정체성을 지키고 보호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지당한 말을 다시 한번 되새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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