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유익한 인터뷰] 역사의 흔적을 기록하다 - 박은주 TBS TV PD
2024년 05월 16일(목) 15:15
‘마흔세 살 오일팔’ 제57회 미국휴스턴국제영화제 금상
TBS 박은주 PD, 2년 연속 수상 쾌거
“세대와 국내를 넘어 5.18을 알리고 싶었다”
사람을 아끼고 끊임없이 질문하며 세상을 읽다.

박은주 TBS TV PD

‘이토록 유익한 인터뷰’는 알아두면 유익한 지식과 함께 삶을 통찰하는 지혜를 전하고자 합니다. 사회, 문학, 철학, 경제, 과학 등 각 분야에서 종횡무진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 그리고 만나고 싶은 셀럽들의 인터뷰를 통해 여러분의 지식창고를 채워보시기 바랍니다.

무슨 일이든지 존경할 만한 사람들과 해야 후회가 없다. 일이든 연애든 결혼이든 마찬가지다. 물론 그런 사람을 만난다는 게 쉽지 않지만 그래도 가끔 우연처럼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나의 인연으로 만들고 싶다. 박은주PD가 그런 사람이다. “PD는 사람을 아껴야 합니다.” 어려운 시기에 TBS TV제작본부장이 된 박은주PD는 앳된 얼굴만큼이나 반짝이는 눈빛으로 ‘사람’의 소중함을 강조한다. 어쩌면 당연한 명제처럼 들리는 말이지만 총성없는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방송계 현실에서 이런 사람을 찾기는 사막에서 바늘 찾기처럼 어렵다. 그래서 더 반갑고 귀한 인연이다. 수많은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사라지기를 무한반복하는 방송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에 대한 관심과 끊임없는 질문이라고 말하는 박은주 PD. ‘질문을 한다’는 것은 상대뿐 아니라 스스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서울을 주무대로 활동하던 그가 광주와 인연이 닿은 것은 2년 전의 일이다. 5·18기념재단의 ‘5·18방송 콘텐츠 제작사업’ 공모 당선작으로 선정돼 <오일팔 증명사진관>을 제작했다. 1980년 5월 광주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한 나경택 사진기자(전 전남매일신문·현 광주일보)와 정태원 사진기자(전 UPI통신·로이터통신)가 역사의 현장을 다시 찾는 다큐멘터리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독립영화제인 미국 휴스턴국제영화제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오랫동안 우리만의 리그였던 5·18의 자산을, 젊고 새로운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수작이었다.

그리고 올해, TBS에서 제작한 <마흔세 살, 오일팔>(43 years later: Again in Gwangju·2023)이 제57회 휴스턴국제영화제에서 지난해에 이어 ‘역사필름&비디오’ 부문 금상을 수상했다. 다큐멘터리 <마흔세 살 오일팔>은 5·18민주화운동 43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다큐멘터리로 1980년대 광주에서 태어난, 5·18민주화운동 당사자들의 자녀들이 어떤 기억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품 속 80년대생 뮤지션들과 연극배우들은 1935년에 세워진 광주극장 무대에 모여, 1980년 5월 18일 광주의 이야기와 그날의 아픔과 상처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감을 다루는 무대를 완성했다. 2년 연속 5·18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조명하고 그 가치에 대해 함께 공감한 것이 빛을 발한 것이다.

혹자는 지금이 야만의 시대라고 한다. 상식과 논리가 사라진 곳에 극과 극의 대립이 난무한다. 하지만 천년을 이어 온 어둠도 한 자락의 빛이 들어오는 순간 설 자리를 잃는다. 화려했던 꽃도 열흘이면 지고, 영원할 것 같은 권력도 끝이 있다. 방송을 사랑하고 방송을 가장 잘 만드는 그의 분투가 끝내 승리하기를 바란다. 야만의 시대에도 꺾이지 않는 단단한 마음. 사람 아낄 줄 아는 박은주PD를 만나보자.

Q. 북미 3대 영화제 ‘휴스턴국제영화제’에서 2년 연속 수상한 소감은?

가뭄 속 단비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재작년부터 TBS(서울시미디어재단)가 고난의 행군을 걷고 있으니까요. 2022년도에 제작한 5·18특집다큐멘터리 <오일팔 증명사진관>에 이어 2023년도에 제작한 <마흔 세 살, 오일팔>은 TBS가 폐국의 위기에 놓여 있는 과정에서 어렵게 제작을 마무리한 작품이기에 더 의미가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촬영을 마치고 편집을 들어가야 하는 시기였는데, 갑작스럽게 TV제작본부장 역할을 맡게 되면서 <오일팔 증명사진관>보다 제작과정과 마무리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았었거든요. 그런데 휴스턴국제영화제에서 5·18역사를 담아낸 다큐에 2년 연속으로 응답해준 것이지요. 수상 소식을 받자마자 영화제 측에 감사의 메일을 보냈습니다. 오히려 국내에서는 5·18광주 이야기가 매년 반복되는 숙제 같은 주제여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입장이나 콘텐츠를 시청하는 입장에서도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다는 선입견에 쌓여 있거든요. 그래서 새로운 시선과 장치가 절실했던 작업이었습니다. 특히 <마흔세 살, 오일팔>은 지금까지 신개념 극장다큐라는 실험적 장치를 통해 5·18역사를 담아냈기에 이번 수상의 의미는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새로운 시도에 대한 지지를 받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Q. 5·18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그전부터 잘 알고 있었나요?

5·18민주화운동의 역사는 언론인이라면 마음 깊이 간직한 책임 또는 부채와 같습니다. 역사교과를 배웠던 중·고등학교 시절보다 PD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대학교 시절부터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실체 없는 노력처럼 수년을 사건의 겉핥기에 그쳤던 것 같습니다. 역사적 진실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태도를 가진 건 불과 10여 년 전이었어요. TBS에 입사해 라는 책 프로그램을 3년 넘게 연출하면서 5·18실체를 더 온전히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증언자의 기록과 함께 역사적 진실을 각자의 방식으로 기록, 해석한 수많은 작가들의 노력을 책으로, 그들의 입으로 직접 접할 수 있었습니다. 프로그램이 스스로 진화하듯 저 또한 교양·다큐PD로서 많이 성장했던 시간이었습니다.

Q. 광주와 광주 사람들을 직접 만나면서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1980년 5·18민주화운동은 결코 먼지 쌓인 이야기가 아니구나, 40년이 훌쩍 지난 오늘도 여전히 존재하는 우리의 역사구나’ 처음 광주를 찾았을 때 마주한 생각이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큰 슬픔 역사를 겪어낸 광주 사람들에게는 직·간접적인 각자의 이야기가 있었어요. 그저 드러나지 않게 가슴 깊이 파묻고 살아갈 뿐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준희의 해시태그>라는 언론비평 프로그램을 제작했던 2011년 이른 봄날, 5.18특집 촬영차 처음 광주를 찾았습니다. 광주송정역에 내려, 스태프들과 고픈 배를 채우러 허름한 식당에 들어갔어요. 주인 어르신께서 카메라를 손에든 우리를 보시곤, “또 5월이 오는가 보네, 5·18 찍으러 왔는갑소”라고 말을 건네시더라고요. 그걸 들은 옆 손님이 맞장구치시며 80년 그날의 이야기를 띄엄띄엄 풀어내셨지요. 그분의 마지막 한마디가 마음에 꽂혔습니다. “5·18 얘기 계속하면 뭐해, 맨날 똑같은 얘기만 하는데...” 그때 문뜩 혼자 출사표를 내던졌던 것 같아요. 곧 그날의 이야기를 담아보겠노라고요.

TBS TV 다큐멘터리 마흔 세 살 오일팔 제작진
Q. 다큐에 대한 타지역 특히 서울 수도권 젊은 시청자들의 반응이 궁금해요?

요즘 미디어가 역사를 담아낼 때, 자극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풀어낼 때가 많습니다. 저 또한 연출자로서 프로그램을 고민할 때 시청자들의 흥미를 높이기 위해 많이 활용하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역사적 맥락을 세밀하게 엮어가는 힘이 매우 부족합니다. 예를 들어, ‘80년에 5·18민주화운동이 왜 광주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역사에서 70년대 여성노동운동의 역사는 왜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는지?’와 같은 질문에 머뭇거릴 때가 많으니까요. 그런 차원에서 <오일팔 증명사진관>을 보고 ‘1980년 5·18역사, 그 10일간의 항쟁에 대해 시간 순, 사건 순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는 평이 가장 많았습니다. 당시 시청자평에 중·고등학교 역사교사들이 교육용 자료로 꼭 활용하겠다고 말해 주셔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5·18 기록 사진기자하면 독일의 ‘위르겐 힌츠펜터’ 기자를 떠올렸는데 큰 오산이었다고,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5·18 역사를 대표하는 ‘곤봉에 맞는 청년’ 사진을 찍은 사람이 국내 기자였다는 걸 처음 알았다는 시청자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그 사진을 찍은 나경택 기자님이 아직 살아계신다는 것이 놀라웠다’는 중학생의 한마디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어떻게 그런 사진을 찍고도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냐’고요.

<마흔세 살 오일팔>에 대한 평가는 전작과는 달랐습니다. 서사보다는 이를 겪어낸 사람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으니까요. 특히 80년에 태어난 5·18둥이들의 증언을 통해 당시 광주시민들이 겪어야 했던, 그리고 견디며 살아내야 했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묶은 구성은 80년대 생 시청자들에게 더 큰 울림으로 전달됐던 것 같습니다. 동시대에 태어나 광주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살아온 그들의 눈에 5·18둥이들의 삶은 더 애처롭게 느껴졌기 때문일 거라 생각합니다.

박은주 TBS TV PD
Q. 원래 PD가 꿈이었나요?

대학교 시절, 고민에 빠져서 일주일 동안 집밖에 한발자국도 안 나간 적이 있었어요. ‘나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 방학이었는데, 라디오를 듣다가 문뜩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본 거죠. ‘사회에 나가 밥벌이를 하기 위해서?’, ‘그럼 어떤 일을 해야, 사회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최대한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의 교집합을 키워보자’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해답을 찾은 끝에 나온 답이 ‘PD’였습니다. 평소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어요. 사회에 대한 관심도 남달랐죠. 나라가, 사회가, 내 일상이 왜 이렇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계속 품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소위 방송 바닥에서 버텨낼 체격과 체력 또한 자신 있었고요. 지금 생각하면 나름 ‘성찰의 시간’을 가지며 인생의 로드맵을 그렸던 것 같아요. 스스로 자문자답하며 결론을 낸 거죠. 당시 저를 지켜보던 가족들의 반응은 상상에 맡기겠습니다.(하하하) 비교적 남들보다 진로를 일찍 잡았던 게 ‘PD로서 삶’에 큰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Q. ‘사람을 아낀다’는 어떤 의미인가요?

“PD는 사람을 아껴야 한다” 방송 일을 시작하면서 머릿속에 스스로 새겼던 문장입니다. 특히 ‘평범한 사람’을 아끼자고요. ‘한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같은 맥락으로 ‘한 사람을 지탱하는 것은 평범한 일상’이라고 생각해요. ‘한 사람의 일상이 흔들리게 되면 한 사회는 무너지고 만다’는 이야기지요.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유지가 그만큼 역사적으로 중요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최근에 ‘나는 왜 공부를 계속 해야 할까?’ 라는 질문을 다시 꺼내본 적이 있어요. 대학시절과는 전혀 다른 답을 떠올렸지요. ‘더 많은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라고요. 이래서 경험의 축적이 무서운 가봅니다. 돌이켜보면, PD가 되고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가장 현명한 해답은 언제나 ‘평범한 사람’에게서 찾았거든요. 지금까지의 경험을 비춰볼 때, 적어도 아직까지는 옳은 길인 것 같습니다.

Q. OTT와 플랫폼의 전성시대, 기존 방송사들의 위기감이 큽니다.

어떤 콘텐츠가 살아남을지, 또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나요?

영상 자본의 흐름이 OTT와 디지털 플랫폼으로 넘어갔기에 공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공영방송사의 책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거대자본이 투입되는 드라마나 예능 장르에만 치우친 영상 콘텐츠 제작에 소외되고 있는 교양, 다큐 장르는 공영방송이 책임지고 감당하며 발전시켜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협찬과 제작지원금에 의존하지 않는 기본제작비에 대한 일정비율의 공적재원 투입이 꼭 필요합니다. 여기에 교양, 다큐 분야 제작진들의 다양한 장르파괴와 새로운 시도는 필수적일 것입니다. 저 또한 교양·다큐 PD로서 여러 형태를 접목한 기획안을 쓰고, 제안하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특히 OTT 자본을 유입할 수 있는 예교(예능x교양) 장르 기획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최근 합숙 예능 장치를 통해 현재 사회 문제의 주 부류인 시민들의 리얼한 삶과 시선을 직접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각계각층 임산부들(미혼모, 워킹맘, 다문화가족 등)의 산전 합숙을 통해 출산 전에 겪어야 하는 정신적, 육체적 상처를 치유해 가는 과정을 담아내는 리얼예교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이러한 콘텐츠를 통해 저출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작은 단서라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요.

Q. 책 <역세권>을 집필했는데 역사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것 같아요?

‘책을 만든 사람보다 책이 만든 사람이 더 많다’는 말이 있습니다. 영상콘텐츠로 담아냈던 이야기를 책으로 다시 한번 정갈하게 묶어낸 이유입니다. <역사를 품은 역 : 역세권>은 제가 제작했던 프로그램이 기초가 되어 완성한 결과물입니다. 2012년 TBS입사 후, 다양한 프로그램을 런칭, 제작해 왔습니다. 교양 다큐 프로그램이 주 장르였는데요. 건축다큐 <공간사람>, 역사스테이 <흔적>, 5분다큐 <사람>, 5.18특집 다큐 등 우리나라 근현대사와 역사 공간을 기반으로 주제를 잡고 이야기를 풀어나갈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 제작과정이 켜켜이 쌓여 역사에세이 한 권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역세권>은 어려운 역사서가 아닙니다. 역사를 애정하고 사람에 관심 많은 서울 변방 방송사의 한 PD의 소소한 기록이라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건축과 책, 교육과 역사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직접 취재하고 만났던 사람들과 공간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서울과 수도권 지하철 근처에 자리 잡은 역사가 깃든 공간을 찾아 숨은 이야기를 기록하고, 증언자와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더 했습니다. 주말에 자녀들과 함께 지하철역 역사탐방에 유용하다고 말해주는 독자분들이 많았습니다. 콘텐츠의 기획의도가 딱 맞아떨어졌을 때의 행복은 언제나 달콤한 것 같습니다.

Q. TBS 방송사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현재 상황은 어떤가요?

재작년부터 TBS가 고난의 행군을 걷고 있습니다. 2022년 6월 지방선거 이후, 국민의 힘이 다수 석(112석 중 76석)을 차지한 이후 시의회에서 TBS에 대한 시의 예산지원 근거인 ‘TBS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폐지하는 조례안을 제1호 법안으로 가결했어요. 당시 폐지되는 시점이 2024년 1월 1일 자였지만, 5개월 연장을 통해 오는 6월 1일로 변경됐습니다. 당장 다음 달이면 시 예산지원이 끊기게 되고, 공영방송사 TBS(라디오 1990년 개국, TV 2005년 개국)는 폐국를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현재 남은 256명의 TBS 직원들은 생계의 불안에 떨면서 1년이 넘는 시간을 혼란 속에서 버텨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하게 공적역할을 해내온 직원들에게 참으로 가혹한 시간입니다. 특히 일정 제작비가 담보돼야 제작에 들어갈 수 있는 TV프로그램 같은 경우, 제작PD들이 직접 제작비를 벌기 위해 협찬 영업에 나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와 자치구 같은 공기관들 조차도 곧 폐국 위기에 놓인 방송사에 예산을 책정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합니다. 공기관도 이런데 민간기업의 협찬은 바랄 수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이 1년을 넘기니 직원들의 불안감과 피로도는 극에 치닫는 상태입니다. 콘텐츠를 생산해 내야 하는 방송사가 콘텐츠 제작이 막히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셈입니다. 현재 새로운 대표대행이 선임된 상태입니다. 5월까지는 서울시의 지원조례가 담보되어 있기 때문에 시와 함께 현재 폐국을 막을 다양한 시나리오를 놓고 비상대책을 세우고 있습니다. 직원들의 고통이 수반 돼야 하는 것들도 있기에 고심의 고심을 더하고 있습니다.

Q. 광주일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우리가 역사를 바라볼 때 가장 잘못된 습관이 있습니다. 그 사건이 일어난 지역에 매몰된다는 것과 슬픈 역사적 사건일수록, 떠올리기 불편한 사건일수록 외면하려고 합니다. 5·18민주화운동은 여기에 가장 부합하는 역사이지요. 그래서 1980년 5·18의 역사는 계승, 진화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5·18의 역사는 매년 끊임없이 새로운 누군가에 의해 다뤄지고 계승되어야 할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사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현재 제가 횟수로 13년째 몸담고 있는 TBS도 ‘어쩌면 44년 전의 그 아픈 역사의 연장선에서 똑같은 상처를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폐국의 위기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공영방송사 TBS에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마흔세 살, 오일팔>과 <오일팔 증명사진관>은 5월 17일(금) 오전 10시 30분에 TBS TV를 통해 연속 방송된다. 두 작품 모두 ‘TBS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다시 볼 수 있다.

박은주

TBS PD이자 TV제작본부장. 호(號)는 아혜(峨慧)다. 높은 봉우리 ‘아’, 슬기로울 ‘혜’. 가을이 깊어져 나뭇잎이 떨어져야 봉우리는 참모습을 드러낸다. 연출 프로그램으로는 <역사스테이 흔적>, <오일팔 증명사진관>, <마흔 세 살 오일팔>, <정준희의 해시태그>, , <만권의 북살롱>, <공간사람>, <5분 다큐 사람>, 등이 있으며 제56회 휴스턴국제영화제 ‘장편 다큐멘터리’ 부문 은상, 제57회 휴스턴국제영화제 ‘역사필름&비디오’ 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는 <역세권:역사를 품은 역>, <언론술사>가 있다.

/글·사진=정지효 기자 1018hyohy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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