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악화가 양화 구축하기’- 최영태 전남대 명예교수
2024년 04월 09일(화) 21:15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그레셤의 법칙으로 알려진 이 말은 시장에 좋은 품질의 화폐와 나쁜 품질의 화폐가 동시에 존재할 때 좋은 화폐는 사라지고 품질이 떨어지는 화폐만 남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레셤의 법칙은 요즘 정치권에 잘 들어맞는 말 같다. 그 이유를 몇 가지 들어보겠다. 먼저, 민주당의 이탄희, 오영환, 홍성국 의원 등 국민에게 좋은 이미지를 가진 초선 의원 몇몇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들은 모두 4년 전 총선 때 민주당의 영입 인사들이었다. 이들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유가 전부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은 정치권의 반개혁적 정치형태나 극단적인 증오와 반목의 정치에 실망하여 불출마를 결심했다.

많은 언론은 2022년 대통령 선거를 가리켜 역대 최악의 선거였다고 평가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역대 보수 진영 대통령 후보 중에서 가장 준비가 안 된 후보로 정평이 났다. 게다가 윤 후보 주변에는 부인 김건희 씨 등을 비롯하여 구설수에 오른 사람이 많았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에 대해서도 말이 많았다. 형수 욕설 파문, 대장동 사건 등 고개를 갸웃거리게 할만한 부정적 요소가 많았다. 국민의힘 지지자나 민주당 지지자 상당수는 찍긴 찍지만, 기분이 유쾌하지 못하다고 말하면서 투표했다.

한 달 전 세상을 떠난 이홍길 전남대 명예교수는 술자리에서 가끔 이런 풍자 노래를 부르셨다. “총장이 쪼다니까 교수도 쪼다, 교수가 쪼다니까 학생도 쪼다?” 실제로 윤석열과 이재명 두 사람이 주도한 지난 2년의 한국 정치사는 예상대로 최악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을 보면서 우선 떠오르는 것은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라는 말이다. 그의 정치는 한마디로 좌충우돌이었다. 게다가 그는 유승민 의원이나 이준석 전 대표처럼 직언이나 쓴소리하는 사람을 가만두지 않았다. 굴러온 돌인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내의 합리적 보수주의자들을 철저히 무력화시켰다. 윤석열 정치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라는 말의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이재명 대표가 주도한 민주당 국회의원 후보 공천은 많은 사람을 실망하게 했다. 선거기간 큰 구설수에 오른 김준혁, 양문석 후보는 민주당이 비명계라고 지칭된 박광온, 전해철 대신 공천한 사람들이다. 박용진을 대신하여 공천하려 했던 정봉주와 조수진은 각각 막말과 성폭력범 전문 변호 경력으로 도중 하차했다. 민주당의 몇몇 공천 사례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라는 말을 실감 나게 했다.

민주주의 사회는 국민이 주인인 사회이다. 선거는 바로 국민이 주인 노릇을 할 최고의 기회이다. 그러나 호남 지역 선거는 대부분 민주당이 점찍어준 사람을 선거날 인준해주는 행위에 머물렀다. 가장 큰 이유로는 민주당 외에 선택의 폭이 협소한 점을 들 수 있다. 그럼 민주당이라도 호남 정치의 이런 특수 상황을 고려한 공천을 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민주당의 공천은 형식상으로는 권리당원 여론조사 50%, 일반 여론조사 50%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실제로 대부분의 경선은 사실상 권리당원에 의해 주도되었다.

심지어 민주당 지도부의 ‘엿장수 맘대로’ 공천의 성격을 지닌 곳도 있었다. 일반 여론조사 1~2위가 민주당 경선과정에서 뚜렷한 이유 없이 아예 배제되는 경우도 있었다. 일반 유권자로서는 이런 것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사례로 해석할 수 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논리는 유권자 자신의 행위에도 적용할 수 있다. 우리 지역 민주 진영의 제3당 후보 중에는 도덕성과 민주화 경력 등 삶의 흔적에서 혹은 지역과 국가에 대한 기여도 등에서 민주당 후보보다 장점이 많은 사람도 있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의 폭주를 견제하는 역할에서도 민주당 인사들에 결코 뒤지지 않을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우리 지역 유권자들은 오로지 민주당 소속 만을 고집하면서 민주당 밖의 유능한 인재들을 사장해버린다. 이것 역시 큰 틀에서 보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유권자의 선택 기준이 바뀌어야 정치인의 수준이 달라진다. 대통령이나 정당 대표의 수준도 유권자가 하기 나름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여 정치권의 ‘악화가 양화 구축하기’를 근절할 주체는 유권자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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