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연경 시인 “시와 인문학은 좋은 세상 향한 불빛”
2024년 03월 19일(화) 19:35
6번째 시집 ‘탕탕’ 펴내
세계·인류 문명에 대한 성찰 담아
순천서 12년째 인문연구소 운영
‘연경’ 창간해 인문학 대중화 노력

석연경 시인

“돈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쓰면서 운영을 해왔어요.”

AI시대가 도래하고 챗GPT가 상용화되면서 창작, 인문학 분야 등은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어떤 이는 역설적으로 인문학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순천에서 12년간 인문문화예술연구소를 운영하며 인문학 강연, 문예창작 강의, 책 읽기와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해온 석연경 시인. 그것도 모자라 시인은 2년 전부터는 인문학 전문 잡지 ‘연경 然景’을 창간해 인문학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가난한 시인에 가난한 선생인지라 늘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그가 최근에 6번째 시집을 펴냈다. ‘인문학’을 모티브로 10년 넘게 사비를 들여가며 연구소를 운영해오는 것도 모자라 인문잡지를 2년 넘게 발간해오는 저력은 무엇일까. 무엇이 그를 ‘돈 안 되는 일’에 매진하게 하는 것일까.

“때로는 고통이 나를 지그시 누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가 이 길을 쉬지 않고 가는 이유는 시와 인문학은 소박함과 위대함을 동시에 품고 있기 때문이죠. 시와 인문학이 모이면 세상을 구원할 수도 있다고 나는 믿고 있어요.”

그의 말에 어떻게 답을 해줘야 할지 몰랐다. 기자 또한 시와 소설이 문학이 그리고 인문학이 혹여 세상을 구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다. 그런 생각으로 가슴이 뛰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시대는, 더욱이 모든 것이 계수되고 실적으로 치환되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말처럼 쉽지 않음을 절감하고 있다.

이번에 석 시인이 펴낸 시집 제목은 ‘탕탕’. “세계와 인류문명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다”는 말에서 시인의 지향점이 어느 정도 가늠이 되었다.

그는 “인간의 과도한 욕망과 폭력성으로 비정상적으로 훼손된 지구와 인간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며 “생태 위기와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쓴 시도 몇 편 있다”고 했다.

시집 제목 ‘탕탕’이 특이하다고 했더니 “사랑 안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고 시 안에 사랑이 있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경철 평론가는 이를 두고 “‘일즉전 다즉일(一卽全 多卽一)’의 화엄세계를 간절한 사랑으로 보여주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번 시집의 또 하나의 특징은 시인의 확장된 세계관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우주적인 스케일로 근본적인 인류의 삶과 문화를 접근했는데 기독교를 비롯해 불교, 도교, 유교 등 종교철학과 과학이 녹아 있다.

시에는 인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사랑이 제시돼 있다. 그는 “사랑 안에는 다양한 방식이 존재한다. 낳고, 너그럽게 보듬어주고, 키워주는 모성성이 기본이다. 여신의 이미지가 등장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고 말한다.

“하얀 깃털 눈부신 날개는/ 바다에 하얀 꽃도장을 찍으며 날아와/ 구름과 별빛의 언어를/ 침묵으로 읊조리지요// 배옥의 덧문이 열립니다/ 비단 자주 이불 깔린 대지의 아랫목에/ 알 길 없는 깊이를 품은 옥양목 여인이 있습니다/ 흰동백꽃의 깊이라는 게 있다지요/ 별에서부터 뿌리를 지나 지구의 해까지…”

‘하얀, 흰 독백’은 우리 삶을 운행하는 에너지를 묘사한 작품이다. 어떤 화엄의 세계를 상정하고 있는데 그것은 우주와 신의 기운처럼 다가온다. 특히 ‘알 길 없는 깊이를 품은 옥양목 여인’이라는 구절은 모든 것을 품거나 포괄하는 상징으로 수렴된다.

시인은 인문학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전시 기획도 하고 있다. 연구소 건물에 작은 갤러리가 있어 시화, 사진, 그림, 서에 등 다양한 장르 작품도 전시한다. 인문과 문화, 예술 다양한 영역을 오가며 문화의 향기를 지역사회에 퍼뜨리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시를 쓰고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나에게 시와 인문학은 세상 만물과 더불어 잘 살아갈 바를 나누며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가고자 하는 불빛이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박성천 기자 sky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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