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혼동 이겨내려 모국어로 된 책 꾸준히 읽어요”
2024년 02월 05일(월) 19:15
미 시애틀 거주 한혜영 시인, 동시집 ‘치과로 간 빨래집게’ 펴내
2020년 ‘동주해외작가상’ 수상…시조·동화·소설 등 21권 발간
“각종 문학상·정부 지원금 등 해외 작가들에게도 기회 있었으면”

한혜영 시인

“이민생활을 오래 하다보니까 생각이 안 나는 모국어가 점점 늘어납니다. 나이 탓도 있겠지만 알게 모르게 이곳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언어적인 ‘혼동’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 그걸 이겨내려면 모국어로 된 책을 꾸준히 읽으면서 버티는 수밖에 없겠지요.”

지난 2020년 동주해외작가상을 수상한 한혜영 시인. 광주일보와 시 전문지 ‘시산맥’이 공동 운영하는 동주해외작가상은 해외에서 우리말로 시를 쓰는 시인들을 대상으로 한 공모제다. 한혜영 시인은 당시 “청소년 시절에는 윤동주의 해맑은 영혼에 매료되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나라를 잃고 괴로워하는 윤동주와 함께 했다”며 “이민을 와서는 디아스포라의 무게감이 더해진 감성으로 윤동주의 시를 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한 시인이 동시집 ‘치과로 간 빨래집게’(상상아)를 펴내 이목을 끈다.

90년도에 이민을 와서 플로리다에서 34년을 거주한 그는 시, 시조, 동시, 동화, 소설 등 장르를 넘나들며 다채로운 작품집을 펴냈다. 무려 21권의 창작집을 발간한 것. 그는 “21권이나 되는 책을 펴낸 것은 ‘귀국’과 무관치 않다”며 “출간을 핑계로 그리운 사람들을 한 번이라도 더 보겠다는 것이 이유였다”고 밝혔다. 현재 시인은 두 달 전에 플로리다에서 시애틀로 이사를 해 여러 가지로 바쁜 상황이라고 한다.

최근 기자는 이메일을 통해 한 시인과 작품집 발간과 관련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동시집을 발간하게 된 계기를 비롯해 근황, 향후 계획 등에 대한 답을 들었다.

그는 “책만 읽으면 국내 작가로 알 정도로 사람들이 신기해한다. 특히 시에서는 외국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한국방송을 보고, 한국 신문을 읽고, 한글로 된 책을 읽고, SNS에서 한글로 대화를 나누는 등 모국어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창작활동은 이민을 떠나온 지 5년째 되던 해인 1994년 ‘현대시학’(11월호)에 시가 추천되면서다. 1996년에는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됐으며, 이에 앞서 1989년 ‘아동문학연구’에 동시조가 당선되면서 다양한 장르에 걸쳐 활발한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번 동시집은 흔한 소재임에도 시인 특유의 따뜻한 감성과 재기발랄한 상상력을 담고 있다. 어린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함께 읽을 수 있는 작품들로 구성돼 있다.

“동시집이라는 장르로 묶었지만 온 가족이 읽을 수 있는 시집입니다. 함께 읽으면서 각자의 느낌이나 생각을 나눌 수 있었으면 해요. 동식물과 눈, 비, 구름 등 자연과 환경문제를 비롯해 주변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에 시적 의미를 부여했어요. 시인의 눈에 포착된다고 다 시가 될 수는 없지만 이런 것도 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시인은 이번 작품집을 세대를 초월해 누구나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평소 동화까지 쓰기 때문에 상상력을 동원해 재미있게 형상화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작품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동시집에 담긴 그림이다. 정하윤이라는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가 그림을 그렸다. 한 시인은 “시를 이해하는 걸 보면서 깜짝 놀랐다”며 “시인이 전달하고 싶은 부분을 잘 표현해 줘 너무 고맙다”고 전했다.

동시집을 펴내게 된 것은 어느 날, 아파트 복도에서 죽어가는 아기 새를 치료해 주 것이 계기가 됐다. 시인에 따르면 가쁜 숨을 할딱거리는 아기 새를 데리고 돌아와 물을 먹이고 미숫가루를 타서 주사기로 먹였더니 다행히 기운을 차렸다. 아기 새는 다른 새의 소리를 흉내 내기도 할 만큼 똘똘한 새였다. 이름을 ‘똑순이’라고 지어주었고 얼마 후 똑순이를 자연으로 날려 보내주었다.

“나이 많은 집게들은/ 늙은 사자처럼 이빨이 시원치 않다/ 먹잇감을 사냥할 때의 젊은 사자처럼/ 꽉!/ 물고 있어야 하는데/ 빨래가 조금만 몸부림쳐도 놓쳐버린다//주인아줌마가 그런 집게들은/ 쏙쏙 골라서 치과로 보내버리고/ 우리처럼 탄탄한 이빨을 자랑하는 집게들은 쉬는 날이다…”

위 표제시 ‘치과로 간 빨래집게’는 수명이 다한 빨래집게들이 모티브다. 치과로 보내지고 아직은 쓸 만한 집게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쉬고 있다. 빨래집게를 통해 우리 삶의 어떤 단면을 비유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한편의 맑은 동화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한 시인은 “똑순이가 세상 속으로 훨훨 날아갔던 것처럼 이제는 나의 시들을 세상으로 날려 보낸다”며 “많은 독자를 만나 아름다운 노래로 기쁨이 되고 위로가 되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한편으로 그는 해외에서 문학을 하는 작가들이 본국으로부터 ‘차별대우’를 받는 것 같아 때론 속상하다고 했다. 수준 있는 문학상과 정부 지원금을 대한민국 국적자로 한정하고 있어서 안타깝다는 것이다.

“세계 곳곳에 사는 작가들이 그곳 생활과 경험을 바탕으로 쓰는 생생한 문학작품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장려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곳곳에 바리케이트를 쳐놓아서 해외 작가들이 많이 위축이 되죠. 큰 틀에서 해외작가들에게도 기회를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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