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에 우리가 지켜야 할 덕목 - 양미영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3년
2024년 01월 30일(화) 00:00
만약 국가 위기 상황에서 모르는 사람이 우리 집에 들여보내 달라고 한다면 어떻게 할거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무슨 대답을 했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상황에 따라 다르지 않겠냐는 말로 대답을 얼버무렸던 것 같다.

이 질문이 지난 여름에 개봉한 ‘콘크리트 유토피아’란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영화는 대지진으로 인해 온 세상이 폐허가 된 가운데 단 하나의 건물, 황궁아파트만이 무너지지 않은 채 우뚝 버티고 있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곳에는 각자 다양한 사연을 지닌 아파트 주민들이 모여있는데 영화를 본 관객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인물은 바로 ‘명화’다.

황궁아파트의 주민인 ‘명화’는 재난 가운데서도 옆 아파트의 생존자 모자를 자신의 집에 들이고 방까지 내줄뿐만 아니라 보급품 하나하나가 귀한 시점에 남편 ‘민성’이 어렵사리 구해온 황도 통조림을 모자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이후 아파트에서는 주민이 아닌 사람들을 모조리 내쫓아 명화가 집에 데리고 있던 모자도 예외 없이 쫓겨나게 된다. 하지만 아파트 주민인 ‘도균’이 자신의 집에 머물렀던 외부인 남자아이를 숨겨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명화는 자신의 안위 따위는 따지지 않고 이들을 몰래 돕기도 한다.

영화가 진행돼 갈수록 멸망 직전인 상황 속에서 사람들의 목적은 오직 생존으로만 귀결돼간다.

아파트 주민이 아닌 외부인을 내쫓고 폭력적인 온갖 수단을 써가며 인간성을 점차 잃어가는 것이 당연시되지만 명화는 끝까지 자신이 지닌 인간성, ‘선’을 지켜나간다.

영화를 보면서 답답하기보다 어디에서든 이런 상황이 펼쳐져도 누군가는 명화와 같은 행동을 할 것이기에 마냥 미워할 수는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의 생각은 제각기 달랐다.

애매하게 비겁하고 적당히 타협하면서도 끝끝내 모든걸 포기하고 합리화하지 않는 태도는 보통 사람이 감정을 투사하는 평범함이나 다름없으며, ‘해결책도 없으면서 착한 척은 명화 혼자 다 한다’느니, ‘힘들고 어려운 일은 다른 사람들이 다 하고 착한 일은 혼자 하는 비겁한 인물’이라고 단정지었다.

명화를 보며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 웨어 올 앳 원스’에 나온 ‘웨이먼드’가 생각났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갈등을 황궁아파트 주민들과 정반대로 행동한다.

영화 속 현실과 메타점프를 한 상황 속에서도 일관된 모습을 보이는 그는 항상 자신의 신념을 지킨다. 그렇다고 문제에 수동적이지도 않는 것은 영화 내내 조용히 그리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욕구와 타인의 감정 간의 균형을 계속해서 맞춰가며 문제를 해결한다.

즉, 웨이먼드는 자신이 원하는 걸 알고 있고 그걸 얻기 위해 계속 노력하지만 ‘다정함’을 통해 이뤄나간다. 인내심, 소통, 그리고 공감을 통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다정함’을 실현해 나가며 모든 갈등을 해결해 나갈뿐만 아니라 아내인 ‘에블린’에게 닥친 어려움까지도 ‘웨이먼드’식의 방법으로 이겨낸다.

점점 온라인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고 SNS가 하나의 여가로 바뀐 현재, 타인의 삶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반면 한 사람의 삶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기는 어렵다.

아주 잠깐 비춰진 순간들로 잘잘못을 따지고 비판하고 내 의견과 맞지 않으면 비난하기 일쑤다. 왜냐하면 이해하는 것은 많은 노력을 수반하기 때문에 가장 쉬운 방법인 판단과 비판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강연에서 들었던 것 중에 ‘가장 쉬운 길은 절망’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포기하는 것은 언제나 쉽고 가장 어려운 것이 희망이다. 명화가 지켜낸 ‘선’처럼, 웨이먼드가 노력해온 ‘다정함’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성을 지켜나가는 사람들이 될 수 있길 바란다.

“제가 아는 거라고는 우리 모두 다정해야 한다는 거에요. 제발 다정하게 대해 주세요. 특히 우리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를 때는요.”(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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