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한 20년…우리는 행복한 ‘다문화 가족’입니다
2024년 01월 29일(월) 19:25
[다문화 동반 시대] 김기중-호영미 부부
한국-베트남, 역사·정서 비슷…추위·언어 등 어려움 사랑·존중·배려로 극복
광주 서구 서창동·남구 화장동 일대 시설재배 농촌지역 ‘계절노동자’ 절실
올해 선진국 수준 다문화 국가 진입 예상…사회적 통합 위한 정책 마련돼야

김기중·호영미 부부와 자녀들. 두 사람은 어머니의 노력으로 부부의 연(緣)을 맺었다.

올해 국내 외국인 비중이 전체인구의 5%를 넘어서며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기준 ‘다문화·다인종’ 국가에 진입한다. 앞으로 외국인과 다문화 가족의 비중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국민들의 ‘다문화수용성’ 제고를 위한 프로그램 운영과 국가의 미래를 내다보는 다문화·다인종 정책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 베트남 출신인 호영미·김기중 씨 부부와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 등을 살펴본다.

◇어머니가 맺어준 부부의 인연

“생활력이 강해요. 검소하고, 애들한테 엄청 잘합니다.”

김기중(55) 씨는 부인 호영미(39·베트남 이름 호티반) 씨의 장점으로 강한 생활력을 꼽았다. 혼자서 광주시 남구 화장동 영산강변 들녘에 자리한 비닐하우스 9동(3800평)에서 방울토마토와 고추, 부추 등을 재배한다. 김 씨는 결혼 전부터 현재까지 30여 년 동안 포클레인(굴착기)을 주업으로 삼고 있다.

부부가 살고 있는 광주시 서구 서창동에서 시설하우스가 자리한 남구 화장동 화장평야까지는 5㎞ 거리. 비닐하우스 내부에 들어서자 줄지어 심어진 수많은 부추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겨울에도 부추는 싱싱한 초록빛을 띠었다. 2주일 정도 더 키운 후에 시장에 출하를 하게 된다. 여름철에는 25일, 겨울철에는 40일 만에 부추를 잘라 상품화한다.

두 사람은 지난 2006년 봄에 부부의 연(緣)을 맺었다. 30대 후반 나이에도 장가를 못가고 있었던 아들을 안타깝게 여겼던 어머니가 직접 발 벗고 나선 덕분이었다. 베트남 하롱베이에 여행을 가셨던 어머니가 현지 가이드에게 결혼 못한 아들에 대한 ‘답답함’을 말한 것이 호 씨와의 결혼으로 성사됐다고 한다. 호 씨의 고향은 삼성과 LG 등 한국기업 공장이 많이 진출해 있는 하노이 인근 하이퐁이다.

부부는 큰딸을 낳은 후 베트남 장인·장모를 한국으로 초청했다. 친정 부모가 한집에서 생활하며 자녀(1녀2남)들의 육아를 맡아주면서 호 씨 또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멜론과 고추, 토마토 등 비닐하우스 작물재배에 새롭게 도전할 수 있었다. 1600평에서 시작해 조금씩 재배면적을 늘려 나갔다.

부부는 결혼 초기에 별다른 문화적 갈등을 겪지 않았다고 말한다. 제사 등 닮은 문화가 많았기 때문이다. 두 나라의 공통된 역사문화와 정서가 탄탄한 밑바탕을 이뤘다. 베트남에서 오토바이를 탔기 때문에 결혼 후 자동차 운전도 어렵지 않게 배웠다.

자녀들을 돌봐주는 친정 부모 (호반데, 부디 냉이)님과 김기중· 호영미 부부.
“저는 (문화갈등) 그런 거 못 느꼈어요. 베트남도 제사 지내는 것 똑같거든요. 음식도 똑같아요. 그런데 한국은 밤 12시에 제사를 지내는데 베트남은 낮 12시에 해요. 온 가족이 다 모여 점심 먹고 가더라고요. 집사람이 제사를 다 모십니다. 저는 제사 날짜를 잊어먹어도 집사람은 알고 ‘오늘 제사니까 빨리 오세요’라고 전화해요.”

호 씨는 한국생활 초기에 ‘추위’와 ‘음식’ 때문에 애로를 겪었다. 입덧을 할 때 가장 당긴 것은 고향에서 먹던 음식이었다. 지금은 비닐하우스 한켠에 양배추와 고수, 유채 등을 심어서 샐러드 등 식재료로 활용하고 있다. 한때 시범적으로 파파야 나무 한 주도 키웠으나 겨울철에 그만 얼어 죽고 말았다.

“겨울에 너무 추워서 피부에 알레르기가 생기고 밖에 나가지도 못했어요. 김치는 처음에 씻어서 먹었는데 지금은 잘 먹어요. 김장도 합니다.”

호 씨는 베트남에서 한국어를 3개월 공부했고, 한국에 정착해서도 광주 여성발전센터 등지에서 한국어 공부를 쉬지 않고 이어갔다. 우리말을 표준어로 배웠지만 생활을 하며 다소 애로를 겪었다. 책에서 접하지 못한 전라도 사투리 때문이었다. 기자는 한국에서 생활하며 차별을 겪지는 않았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참고 사니까 그렇죠. 없겠어요. 더 많죠. 그때는 말을 못 알아먹으니까 그냥 있었어요.”

부부는 20년 가깝게 함께 살며 행복한 가정을 이뤘다. 비닐하우스 재배면적도 3800평까지 늘렸다. 자녀를 돌봐주는 친정 부모님이 있어 더욱 든든하다. 베트남에서 서창 인근으로 시집온 이들과 가끔씩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정이 많은 동네 어르신들도 호 씨와 아이들을 예뻐해 준다.

◇광주지역도 ‘계절노동자’ 지원 절실

부부는 고교 1학년과 중등 1학년, 초등 6학년인 자녀들의 교육에 더욱 신경을 쓴다. 하지만 부부가 워낙 바쁜데다 베트남 외할아버지·외할머니와 외손간 의사소통 문제로 쉽지 않다. 학원에 보내기도 여의치 않다. 그래서 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으로 수학과 국어, 악기 등을 추가로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특히 농사를 짓는 호 씨는 광주광역시도 전남처럼 ‘계절노동자’들이 와서 일을 도와주는 혜택을 줬으면 한다. 광주지역은 수확기 5개월 동안 일하는 ‘계절 노동자’를 배당받을 수 없고 인건비도 더 비싼 실정이다. 광주시 서구 서창동과 남구 화장동 일대는 행정구역상 광주광역시에 속하지만 시설재배를 주로 하는 농촌지역이다.

“공판장 나가면 똑같은데 우리는 인건비가 더 많이 들어가요. 나주는 8만원에 쓰는데 광주는 2만원을 더 줘야 해요. 전남에서는 기본으로 5명의 형제들을 초청해서 일을 도와줄 수 있어요. 인부들은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는데 저는 한 시간 일찍 나가고, 늦게까지 남아 일합니다. 그분들은 열매를 따기만 해주기 때문에, (퇴근 후) 제가 선별기 돌려 크기별로 정리를 해야 합니다.”

김기중·호영미 부부는 지난해 1월 농협중앙회와 서창농협의 지원으로 7박8일 동안 베트남 고향방문을 다녀왔다. 자비를 들여 친정 부모님도 모시고 갔다. 자녀들에게는 엄마 모국인 베트남의 역사문화와 자연을 피부로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부부는 어머니가 놓아준 오작교를 건너 견우와 직녀처럼 만났다. 금슬 좋은 부부의 비결은 사랑과 배려, 존중, 양보, 신뢰이다. 결혼하고 20년을 해로한 부부는 한국과 베트남의 우호를 증진시키며 돈독하고 행복한 가족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김기중·호영미 부부는 지난해 1월 농협중앙회와 서창농협의 지원으로 7박8일간 베트남 고향방문길에 올랐다. 자녀들은 엄마 모국인 베트남의 역사문화를 익히고, 외가 식구들을 만나는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 <김기중·호영미 씨 제공>
◇총인구 5% 넘어서며 다문화 국가 진입

“2024년에는 장·단기 체류 외국인이 총인구의 5%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선진국 수준의 다문화·다인종 국가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위원장 김한길)가 지난해 11월 3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이주민 자치참여 제고 특별위원회’를 출범하며 밝힌 내용이다. ‘외국인 5%’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등 국제기구에서 통용되는 다문화·다인종 국가의 기준이다. 법무부 ‘연도별 인구대비 체류외국인 현황’에 따르면 2022년 전체인구(5143만9038명) 대비 체류외국인(224만5912명) 비율은 4.37% 규모이다.

유례없는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다문화·다인종 국가’ 진입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요구된다. 정부는 출입국·이민 정책 총괄기구인 ‘출입국이민관리청’(가칭) 신설을 검토하고 있다. 앞으로 각자의 문화다양성을 인정하고 사회적 통합을 위한 ‘다문화 수용성’ 제고 등 해결해야할 과제가 산적해있다.

최윤철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12월 전남대 용지관에서 ‘인구소멸 위기와 공법의 대응’이라는 주제로 열린 공동 학술대회에서 ‘인구소멸 위기 대응을 위한 이민(외국인 수용) 법제 개선방안’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최 교수는 논문에서 “외국인을 지방거주 조건(거주이전 제한)으로 입국을 하고 일정기간 해당 지역에서만 노동과 거주(고용허가제 유사한 방식)을 하도록 해서 지방노동력을 공급하겠다는 자치단체의 주장들은 매우 편의적고 사람을 수단으로 여기는 것으로 반인권적이다”면서 “외국인을 수용하여 지방소멸을 막겠다는 정책은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외국인을 출산율 저하를 해결하거나 노동력을 대체하는 대체재로 보아서는 아니 된다”며 “이주자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며, 이들과 어떠한 가치를 공유하면서 공동체를 구성해 나갈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대비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선주자와 이주자를 통합하는 법제와 정책 마련을 역설했다.

/글=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