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4계] 겨울 무등산이 품은 비경(祕境)
2024년 01월 06일(토) 17:00

무등산에서 바라보는 일출

겨울 산행의 진수를 맛보고 싶다면 무등산에 올라보자. 무등산은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하지만 그 중 최고를 꼽는다면 새하얀 눈꽃을 배경으로 정상 일출을 볼 수 있는 겨울 무등산이 단연 최고이다. 무등산은 광주 시내 어디에서나 고개만 들면 볼 수 있는 산이다. 오래 두고 사귄 벗처럼 늘 가까이에 있어서 그런지 광주 시민들에게 무등산 산행은 그리 어려운 도전이 아니다. 국립공원 중에서 충북 월악산이나 강원도 치악산과 비슷한 높이지만 등산의 강도는 사뭇 다르다.

겨울 무등산의 ‘정상 설경’
무등산을 오르는 등산 코스는 옛길을 따라 산 능선을 돌아볼 수 있는 무돌길부터 토끼등·새인봉·중봉에 오르는 중급 코스와 입석대·서석대까지 오르는 상급 코스까지 다양하다. 특히 21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전국에서 탐방객들이 찾아오면서 코스별로 등산로 정비가 잘 돼 있다. 간단한 겨울 산행 장비와 옷차림만 잘 챙긴다면 산길이 서툰 등산 초보라도 겨울 무등산을 오르는 게 어렵지 않다. 이름부터 ‘무등(無等)’, 뜻풀이 그대로 만인에게 평등하게 너른 품을 내어주는 곳이 아닌가.

무등산 ‘만남의 장소’ 장불재 평원
겨울 무등산을 찾는 등산객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등산로는 원효사 입구에서 시작해 장불재를 거쳐 정상부인 입석대와 서석대까지 오르는 코스이다. 상쾌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걷다 보면 겨울에만 만날 수 있는 진귀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장불재로 향하는 마지막 고개 옆으로 거대한 얼음벽이 시선을 압도하는데 암벽을 타고 흐르던 물이 얼면서 커다란 고드름 벽을 만들었다. 무등산 천왕봉에서 시작된 1급수 계곡물답게 고드름마저 맑고 투명하다. 예전에는 등산하다가 목이 마르면 고드름을 하나씩 따서 물 대신 먹기도 했는데 국립공원이 되면서 금지됐다. 이제 아무리 목이 말라도 또 무등산 고드름이 탐이 나도 눈으로만 감상하는 것이 좋다.

겨울에 만날 수 있는 진귀한 빙벽
얼음벽 고개를 돌아서면 무등산 정상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장불재 평원이 나타난다. 장불재는 일출 명소로 가장 많이 찾는 곳인데, 평원이 넓고 쉼터 같은 편의시설이 마련돼 있어서 해가 떠오를 때까지 삼삼오오 모여서 차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며 기다릴 수 있다. 무등산 정상에서 일출을 보고 싶다면 40분쯤 더 산길을 올라야 한다. 입석대와 서석대까지 이어진 길은 두 사람이 바짝 붙어서 걸어야 할 정도로 좁은 길인데 나무마다 새하얀 눈꽃(상고대)이 내려앉아 아름다운 겨울왕국을 만들었다.

무등산 서석대 <동구청 제공>
눈이 부시게 빛나는 눈꽃 터널을 지나면 드디어 서석대 도착이다. 돌기둥 사이로 피어난 새하얀 눈꽃들이 감탄을 자아내는데 수정 병풍처럼 우뚝 솟은 서석대를 중심으로 입석대와 규봉까지 이어지는 무등산 주상절리대는 천연기념물이자 유네스코 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세계적인 명소이다. 약 9천만 년 전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무등산 주상절리대는 해발 천 미터 이상에 존재하는 세계 유일의 주상절리대로서 30여 개의 대형 돌기둥이 하늘로 우뚝 솟은 모습이 수려하고 웅장하다.

해가 뜨기 전 붉은 빛으로 물든 하늘
겨울 무등산의 아침은 상서로운 기운으로 가득하다. 어둑했던 시야가 조금씩 밝아오는 것이 느껴진다면 무등산 능선이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자. 아침이 오기 전 가장 어둡다는 새벽 미명(未明). 영원할 것 같던 어둠이 한 순간의 빛으로 사라지는 순간이다. 무등산 위로 떠오른 찬란한 일출의 기운을 담뿍 맞으며 새로운 한 해를 살아가는 힘을 얻을 수 있다.

무등산 일출
물론 산 정상의 날씨는 늘 변수가 뒤따르기 때문에 일출의 장관을 놓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이 항상 뜻한 대로 풀리리 않는 것처럼 무등산 일출을 직관하지 못했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겨울 무등산은 새벽 한설을 뚫고 오를만한 가치가 있고 또 그렇게 새로운 일상을 살아갈 힘을 줄 것이다.

/글·사진=정지효 기자 1018hyohyo@gmail.com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