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컷의 5·18 - 송기동 예향부장
2023년 10월 31일(화) 00:00 가가
아버지는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옛 전남도청 앞 광장 분수대에서 열린 ‘민족·민주화 성회’와 횃불을 들고 ‘비상계엄 해제’ 구호를 외치며 금남로를 행진하는 대학생들을 앵글에 담았다. 공수부대원의 조준사격으로 도청 인근 향군회관 앞 도로에 쓰러진 시민과 전남대병원 영안실 옆 천막에 하얀 천으로 덮여있는 시신들, 손수레에 꽃상여를 싣고 걸어서 장지(葬地)로 향하는 일가족 모습도 놓치지 않았다.
아들은 당시 스무 살 미대 1학년이었다. 일간지 사진기자도 자유롭게 취재를 할 수 없는 환경인 까닭에 카메라를 든 사진가는 의도대로 ‘결정적 순간’을 포착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공중전화 박스 뒤편이나 길 건너편에서, 또는 걸어가면서 손에 든 채로 몰래 찍다시피 했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위해 때로는 주변의 시선을 막아주는 가림막이나 ‘몸 삼각대’ 역할을 하기도 했다.
사진가는 카메라로 역사를 ‘기록’한다. 하지만 사진가는 어느 날 집 마당에서 어렵사리 찍은 필름을 소각할 수밖에 없었다.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가 사진관 등을 뒤져 5·18 관련 기록물을 샅샅이 수거해 없애려 하던 엄혹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필름에 대한 아무런 언급 없이 세상을 떠났다. 22년이 흐른 올해, 아들은 아버지의 유품을 다시 정리하며 다섯 롤(137컷)의 필름을 발견했다. 모두 태워 버린 줄만 알았던 필름 속에 ‘80년 5월’ 현장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사진가 아버지와 화가 아들이 본 ‘80년 5월’ 전시가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열리고 있다. ‘최병오·최재영 1980년 5월 단상’(~내년 3월 10일까지)전이다. 아들이 기록관에 기증한 아버지의 사진과 화가인 아들이 날짜별로 표현한 5·18 열 개 장면을 한 공간에서 보여준다. 43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온 137컷의 필름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역사의 현장을 기록하고자 했던 한 사진가의 혼(魂)이 담겨 있다. 광주 시민들이 겪은 5·18 관련 기록물은 무엇보다 소중하고 의미 깊다. 메모와 일기, 사진, 편지 등 어느 하나 아무렇게나 버려져서는 안 될 것이다. 한 줄 기록은 역사의 나이테를 만든다. /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