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림호 납북 여수 선장 50년 만에 명예회복
2023년 09월 07일(목) 20:55 가가
광주고법, 재심서 무죄 선고
“고문에 못 이긴 거짓 자백 때문에 저와 가족들은 50여 년을 빨갱이로 살아야 했습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복역한 동림호 선장 신평옥(84)씨가 7일 오후 광주지법 201호 법정에서 광주고법 형사 1부(고법판사 박혜선) 심리로 열린 재심에서 최후 변론을 했다.
신씨는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려준 재판부와 무죄 의견을 낸 검찰에 감사의 뜻을 밝히며 진술을 시작했다. 그는 “어떠한 의도도 없었고 가장으로서 노부모와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어로저지선 근처에서 조업했을 뿐”이라고 납북 경위를 설명했다.
그는 “전향하라는 경찰들의 회유와 감시 뿐 아니라 고향 사람들마저 나를 감시하는 세월을 살아왔다”면서 “복역하고 고향에 왔지만 고용해줄 선주도 없었고 고문으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돼 힘든 일을 할 수 없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신씨는 심지어 “나를 대신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했던 아내의 손을 재판부에 보여주고 싶다”고 절규했다. 그는 “나로 인해 시작된 비극은 우리 가족 모두를 힘들게 했다”고 자책하기도 했다.
신씨의 최후 변론을 경청한 재판부는 “납북 경위, 신씨의 이후 행적 등 제반 사정을 비춰볼 때 당시 검찰의 공소사실은 신씨의 생명과 신체에 위해를 가해 강요된 것으로 봐야 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신씨는 1971년 5월20일 인천 연평도 인근 바다에서 조기를 잡다 선원 8명과 함께 북한경비정에 납치돼 이듬해 5월10일 풀려나 고향 여수에 도착했지만 1973년 9월 국가보안법, 반공법, 수산업법 위반혐의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이 확정됐다.
1974년 1월 만기 출소한 그는 불법 구금과 가혹 행위를 당했다며 50여년 만인 지난해 10월 광주고법에 재심을 청구했고 지난 6월 재심개시 결정을 받았다. 검찰은 재심에서 “50여년 전 검찰이 이 사건과 관련해 적법절차 준수와 기본권 보장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현재 검사의 일원으로서 피고인에게 깊이 사과드린다”며 신씨의 무죄를 구형했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복역한 동림호 선장 신평옥(84)씨가 7일 오후 광주지법 201호 법정에서 광주고법 형사 1부(고법판사 박혜선) 심리로 열린 재심에서 최후 변론을 했다.
그는 “전향하라는 경찰들의 회유와 감시 뿐 아니라 고향 사람들마저 나를 감시하는 세월을 살아왔다”면서 “복역하고 고향에 왔지만 고용해줄 선주도 없었고 고문으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돼 힘든 일을 할 수 없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신씨는 1971년 5월20일 인천 연평도 인근 바다에서 조기를 잡다 선원 8명과 함께 북한경비정에 납치돼 이듬해 5월10일 풀려나 고향 여수에 도착했지만 1973년 9월 국가보안법, 반공법, 수산업법 위반혐의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이 확정됐다.
1974년 1월 만기 출소한 그는 불법 구금과 가혹 행위를 당했다며 50여년 만인 지난해 10월 광주고법에 재심을 청구했고 지난 6월 재심개시 결정을 받았다. 검찰은 재심에서 “50여년 전 검찰이 이 사건과 관련해 적법절차 준수와 기본권 보장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현재 검사의 일원으로서 피고인에게 깊이 사과드린다”며 신씨의 무죄를 구형했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