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축제’에서 예술을 만나다
2023년 05월 02일(화) 19:45
“왜 산에만 가십니까?”

10여 년 전 무등산 증심사 길목에 자리한 무등현대미술관에 대형 현수막이 내걸렸다. 빨간색 바탕에 흰색 글씨로 큼지막하게 새겨진 문구는 행인들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당시 현수막을 접한 시민들은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길래 ‘산에만 가는’ 등산객을 탓하는 것인지 궁금해 했다.

하지만 저간의 사정을 들어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그도 그럴것이 지난 2007년 서양화가 정송규씨는 하루에도 수백 여명의 등산객이 지나가는 목좋은 곳에 미술관을 건립했다. 전업작가였던 정씨는 수십 여년 전부터 답답한 도심에서 벗어나 싱그러운 자연 속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예술의 향기를 전하는 문화아지트를 꿈꿨기 때문이다.

그런데 왠걸, 아무리 좋은 전시회를 기획해도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특히 주말이나 휴일에는 산뜻한 복장의 등산객들로 거리가 붐볐지만 미술관은 개점휴업상태였다. 초창기에는 미술관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이 드물어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언젠가는 미술관에 들러주겠지’하며 몇년을 기다렸지만 등산복 차림으로 전시장을 방문하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 정 관장은 고민끝에 육체의 건강만 챙기지 말고 ‘마음의 건강’도 지키자는 뜻에서 등산객의 무관심을 꼬집는 ‘문제의’ 현수막을 내걸었다.

아주 오래전의 일화를 새삼 끄집어 낸건 지난 주말 함평나비대축제(이하 나비축제)에서 뜻밖의 ‘아름다운 풍경’을 접했기 때문이다. 전남의 대표축제로 자리잡은 나비축제는 명성을 실감케 할 만큼 수많은 인파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봄을 여는 소리, 함평 나비 대축제’로 열리고 있는 축제에서는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프로그램이 펼쳐져 그 어느 해 보다 관광객들의 열기로 뜨거웠다.

하지만 누구보다 나비축제의 ‘특수’를 누리고 있는 주인공이 있다. 바로 축제가 열리고 있는 함평나비엑스포공원에 들어선 함평군립미술관이다. 번잡한 축제장에서 한발짝 떨어진 미술관은 연일 밀려드는 관람객들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축제를 만끽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행사장 옆 미술관’도 방문해 나비축제 기념 특별기획전 ‘풍경과 감정이입’(4월28~7월2일)을 관람하며 색다른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평상시 하루 평균 150명이 방문한 미술관은 이번 나비축제 기간에만 무려 10 배 이상인 1일 2000여 명이 찾고 있다. 연간 함평군립미술관의 방문객 8만 여 명 가운데 봄 나비축제와 가을 국화축제가 열리는 기간에만 4만 여 명이 다녀간다고 하니 축제의 시너지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케 한다. 아마도 정송규 관장이 무등산을 찾는 등산객들에게 기대했던 게 이런 모습이었을 터다.

신록의 계절 5월을 맞았다. 지금 담양, 순천, 보성, 함평, 곡성 등 남도 곳곳은 각양각색의 축제와 이벤트가 펼쳐지는 만화방창(萬花方暢)의 세상이다. 특히 이들 축제장 인근에는 색깔있는 미술관들이 많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예향의 축제 현장으로 떠날 계획이 있다면, 그 지역의 미술관도 함께 둘러보시라. 분명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두 배의 감동을 얻게 될 것이다.

<문화·예향국장,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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