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토끼들을 위한 헌사- 박용수 광주동신고 교사·수필가
2023년 01월 08일(일) 23:00 가가
눈이 토닥토닥 내리는 밤이면 잠들지 못했다. 뒷산 여우 골, 토끼 골에도 수북수북 눈이 쌓였다. 아이는 밤새 토끼를 쫓아서 설원을 달리고 달렸고, 함성도 지르고 눈 위를 뒹굴기도 하였다. 밤새 토끼를 쫓다가 꿈에서 깨곤 했다.
조무래기들은 뒷산으로 갔다. 모두 제 키보다 더 큰 나뭇가지를 들었다. 나뭇가지는 지팡이로도 눈을 헤치는 데도 긴요한데 사냥 도구로도 쓰였다. 눈에 무릎이 푹푹 빠졌다. 산골짜기는 온통 눈꽃이 만발한 새로운 세상이었다. 토끼와 조우, 생각만 해도 신이 났다. 작은 녀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위에서 아래로 토끼를 몰았고, 조금 큰 아이들은 토끼 길목을 지키고 기다렸다.
예상대로 토끼는 양지바른 곳에 있었다. 토끼다! 놀란 토끼는 이리저리 달아났다. 나무 사이, 심지어 아이 가랑이 사이로 비웃듯 달아났다. 아인 깔깔거리며 눈에 파묻혀 뒹굴었다.
배가 고파서야 산에서 내려왔다. 항상 빈손이었지만 언제나 행복했다. 다가갈수록 멀어지고 잡힐 듯 달아나는 게 토끼였다. 아인 매일 토끼 꿈을 꾸며 자랐다. 낮에는 눈도 토끼 눈처럼 빨갰고, 밤에는 토끼를 잡으러 달 속까지 갈 기세였다.
아인 매일 산, 눈, 토끼, 친구, 달, 바람과 함께했다. 그러는 어느새 불쑥 자라 소년이 되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십 년 후인 1963년, 마을은 온통 아이들 천지였다. 열대여섯 살이 되면 이들은 각자 먹거리를 찾아 도시로 낯선 길을 나서야 했다. 토끼를 몰던 이들이 오히려 토끼처럼 세상 이곳저곳으로 몰려다닌 시발점이다. 손수 밥을 하고 빨래도 하면서 헐레벌떡 학교를 다닌 이는 운 좋은 아이였다. 대부분은 공장 시다로 주물공장 보조나 가정부 다방 작부로 두 번째 삶을 시작하였다. 매일 굶고 두들겨도 맞고 도망가고, 손가락이 잘리고 발톱이 빠지고 죄 없이 삼청교육대에 끌려가고 그렇게 감시당했다. 아무도 도와주는 이가 없었기에 스스로 일어서야만 했던, 오직 죽기 살기로 살았던 이들이다.
겨우 기술 하나 배워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문득, 주변을 돌아보니 사람 가진 자와 위정자들의 횡포는 하늘을 찔렀고 무고한 시민들은 산업화를 앞세운 군부 독재의 몽둥이에 마구 죽어가는 세상이었다.
아이들에게 이런 세상은 물려주지 말자고 서로 어깨를 걸고 거리로 나섰다. 학생 노동자들 힘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고, 후손들에게 독재 세상을 물려주지 말자고, 그렇게 우르르 총을 향해 탱크를 향해 몸을 던지고 노상에서 청춘을 바친 이들이다. 목장 주인을, 소설가를, 또 누군 선생님을 향해 달리기도 하였지만 그렇게 길거리에서 공장에서 쓸쓸하게 쓰러진 이들도 적지 않았다. 낮잠 자다 경쟁에서 뒤진 토끼는 동화 속 허구일 뿐이다.
생존은 아이의 목표이자 삶을 끌고 간 동력이었다. 배고팠지만 토끼를 쫓던 놀이를 통해 젊은 날을 견디어 냈듯 훗날, 질긴 노동과 의지로 그들은 세상을 변화시켰고, 투쟁으로 삶의 질을 바꾼 위대한 혁명가들이다.
그런 사이 토끼들이 하나둘 퇴직을 했다. 소년이 젊은 날 뛰놀던 산을 바라보며 머리를 쓸어 넘기자 검었던 머리가 하얀 백발이 되어 버렸다. 턱을 만지자 검은 턱수염이 시나브로 하얗게 변해 버렸다. 환갑이었다.
자신을 쫓아오는 게 없다고 여겼는데, 아이를 바지런히 쫓아온 것은 바로 ‘시간’이었다. 시간은 토끼보다 더 빨랐다. 소년의 뒤를 한시도 해찰하지 않고 쫓아왔던 모양이다. 이제 그들도 퇴직이란 종착지에 몰려 있다. 간을 꺼내 달라는 용왕의 명에 토끼가 지혜로 답할 때다.
2023년 올해는 검은 토끼의 해이다. 63년 토끼띠는 마지막 베이비부머이고 이들은 올해 대거 퇴직을 한다. 굶주리고 고달팠던 이들은 유년 시절 토끼를 몰며 자연스럽게 호연지기를 배웠고, 장성해서는 도시에서 유신과 독재를 종식시킨 386 세대 주축들이다. 오늘 대한민국은 이들 손과 목숨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퇴직은 위기이자 기회라고들 한다. 고달팠던 만큼 노년이나마 토끼들이 조금 더 행복하기를 바란다.
예상대로 토끼는 양지바른 곳에 있었다. 토끼다! 놀란 토끼는 이리저리 달아났다. 나무 사이, 심지어 아이 가랑이 사이로 비웃듯 달아났다. 아인 깔깔거리며 눈에 파묻혀 뒹굴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십 년 후인 1963년, 마을은 온통 아이들 천지였다. 열대여섯 살이 되면 이들은 각자 먹거리를 찾아 도시로 낯선 길을 나서야 했다. 토끼를 몰던 이들이 오히려 토끼처럼 세상 이곳저곳으로 몰려다닌 시발점이다. 손수 밥을 하고 빨래도 하면서 헐레벌떡 학교를 다닌 이는 운 좋은 아이였다. 대부분은 공장 시다로 주물공장 보조나 가정부 다방 작부로 두 번째 삶을 시작하였다. 매일 굶고 두들겨도 맞고 도망가고, 손가락이 잘리고 발톱이 빠지고 죄 없이 삼청교육대에 끌려가고 그렇게 감시당했다. 아무도 도와주는 이가 없었기에 스스로 일어서야만 했던, 오직 죽기 살기로 살았던 이들이다.
겨우 기술 하나 배워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문득, 주변을 돌아보니 사람 가진 자와 위정자들의 횡포는 하늘을 찔렀고 무고한 시민들은 산업화를 앞세운 군부 독재의 몽둥이에 마구 죽어가는 세상이었다.
아이들에게 이런 세상은 물려주지 말자고 서로 어깨를 걸고 거리로 나섰다. 학생 노동자들 힘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고, 후손들에게 독재 세상을 물려주지 말자고, 그렇게 우르르 총을 향해 탱크를 향해 몸을 던지고 노상에서 청춘을 바친 이들이다. 목장 주인을, 소설가를, 또 누군 선생님을 향해 달리기도 하였지만 그렇게 길거리에서 공장에서 쓸쓸하게 쓰러진 이들도 적지 않았다. 낮잠 자다 경쟁에서 뒤진 토끼는 동화 속 허구일 뿐이다.
생존은 아이의 목표이자 삶을 끌고 간 동력이었다. 배고팠지만 토끼를 쫓던 놀이를 통해 젊은 날을 견디어 냈듯 훗날, 질긴 노동과 의지로 그들은 세상을 변화시켰고, 투쟁으로 삶의 질을 바꾼 위대한 혁명가들이다.
그런 사이 토끼들이 하나둘 퇴직을 했다. 소년이 젊은 날 뛰놀던 산을 바라보며 머리를 쓸어 넘기자 검었던 머리가 하얀 백발이 되어 버렸다. 턱을 만지자 검은 턱수염이 시나브로 하얗게 변해 버렸다. 환갑이었다.
자신을 쫓아오는 게 없다고 여겼는데, 아이를 바지런히 쫓아온 것은 바로 ‘시간’이었다. 시간은 토끼보다 더 빨랐다. 소년의 뒤를 한시도 해찰하지 않고 쫓아왔던 모양이다. 이제 그들도 퇴직이란 종착지에 몰려 있다. 간을 꺼내 달라는 용왕의 명에 토끼가 지혜로 답할 때다.
2023년 올해는 검은 토끼의 해이다. 63년 토끼띠는 마지막 베이비부머이고 이들은 올해 대거 퇴직을 한다. 굶주리고 고달팠던 이들은 유년 시절 토끼를 몰며 자연스럽게 호연지기를 배웠고, 장성해서는 도시에서 유신과 독재를 종식시킨 386 세대 주축들이다. 오늘 대한민국은 이들 손과 목숨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퇴직은 위기이자 기회라고들 한다. 고달팠던 만큼 노년이나마 토끼들이 조금 더 행복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