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송년회’ 어때요
2022년 12월 06일(화) 19:25
“세상이 어떻게 가도/들어온 빛이 변함없는 것/그것은 항상 함께 사는 것/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

3층 전시장 입구에 다가가자 벽면에 선명하게 적힌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순간 ‘내게 비추는 빛은 어떤 의미일까’라는 생각에 잠시 빠져들 무렵, 전시장에서 귀에 익숙한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웨이’(My Way)가 흘러 나온다. 중저음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인상적인 노래는 황혼기에 접어든 인생을 되돌아 보며 자신의 방식대로 열심히 살아왔다는 내용이다. 요즘처럼 한해를 마무리하는 연말 분위기에 어울리다 보니 송년 모임 등에서 많이 불려진다.

‘마이웨이’가 유독 가슴에 와 박히는 건 전시장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피에타상’덕분이다. 부활의 상징인 ‘뿌리-반디니 피에타’(2.4m 높이), ‘뿌리-론다니니 피에타’(2.1m)와 동양화의 산수 이미지가 어우러진 영상은 죽음과 삶은 결국 하나라는 의미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실제로 ‘순수, 뿌리들의 일어섬’이라는 테마로 약 10분 간 영상 세편이 릴레이처럼 이어지는 전시는 한편의 영화 같다. 특히 ‘넬라 판타지아’ 선율과 함께 전시장의 4개면에서 휘몰아치는 파도의 역동적인 물결은 세파에 찌든 영혼을 씻어 내듯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관람객들은 전시장 바닥이나 의자에 앉아 화려한 영상과 아름다운 음악이 빚어낸 드라마틱한 광경을 접하며 코로나19와 바쁜 일상으로 지친 마음을 달랜다.

지난 2일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G.MAP)에서 개막한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의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내년 4월 30일까지)은 광주시립미술관이 연말 연시를 맞아 야심차게 기획한 특별전이다. 이이남 작가의 자전적 경험과 1980년 광주의 5월을 미디어아트로 재해석한 작품들은 역사적 비극이 예술로 승화되는 방식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작가가 유년시절의 기억을 딛고 인생의 해답을 찾아 자신만의 ‘마이웨이’를 들려주는 마지막 장(場)인 ‘순수, 뿌리들의 일어섬’은 하이라이트다.

매년 이맘 때면 한해를 되돌아 보는 전시와 공연이 곳곳에서 펼쳐진다. 송년 발레의 대명사인 광주시립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은 올해도 어김없이 오는 21~25일까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난다.

광주시립미술관의 이이남 특별전과 전남도립미술관의 ‘인간의 고귀함을 지킨 화가 조르주 루오’전(내년 1월 29일까지)도 다사다난했던 2022년을 되돌아 보는 뜻깊은 자리다. 특히 루오전의 5개 섹션 가운데 하나인 ‘미제레레’(주여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의미의 라틴어)는 검은 벽면에 걸린 58점의 판화 연작으로, 전쟁으로 고통받는 인간의 모습을 종교적 색채를 통해 위로한다. 1차 세계대전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고 무수한 사람들이 생명을 잃은 참혹한 현실에서 외친 절규이자 간절한 기도를 담은 작품들은 관람객들의 발길을 오랫동안 머물게 한다.

한해의 끄트머리인 12월,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미술관이나 공연장을 찾아 송년의 아쉬움을 달래는 건 어떨까. 작품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분명 예술적 감동 이외에 세파로 무뎌진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잊고 살았던 일상의 여유를 되찾는 건 덤이다.

<문화·예향국장,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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