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과거’의 역사는 ‘현재’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질문한다
2022년 09월 15일(목) 23:00
제주 4·3항쟁, 서대문형무소
세월호 ‘4·16 안산기억교실’
베를린 홀로코스트 기념물
아카이브 자료·전시공간 등
생활 속 역사의 현장 찾아

‘제주 4·3평화 기념관’에 설치된 강요배 작가의 ‘제주도민의 5·10’. 기념관에는 역사적 자료 뿐 아니라 다양한 예술작품이 함께 전시돼 있어 또 다른 감흥을 전달한다.

지금 광주 은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기록하고 기억하라’전은 묵직한 주제를 전달한다. 국내 뿐 아니라 베를린 등 세계 곳곳에 세워져 평화와 인권에 대한 의지를 소환하는 ‘평화의 소녀상’ 제작자 김서경·김상운 부부의 작품 ‘과거, 오늘을 묻다’. 반쯤 몸을 비틀고 먼 곳을 응시하는 한 인물의 표정이 인상적이다. “현재는 과거의 반증이며 미래를 가늠하는 나침반”이라고 말하는 작가의 마음이 읽힌다.

일제 강점기 인간 존엄성을 무참히 짓밟은 생체 실험의 잔혹함을 소환하는 731 부대 관계자, 앳된 가미가제의 모습 등을 수묵으로 담아낸 재독작가 정영창의 인물상도 깊은 울림을 준다.

시대의 흐름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며 발언하는 작가들을 통해 과거의 역사는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나 질문을 던진다. 아마도 우리가 땅을 딛고 있는 바로 이곳에서 벌어졌을 어떤 사건들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는 지도 모른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역사는 우리 삶의 한 축이라는 말일 것이다.

몇 년전부터는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졌던 역사적 장소나 재난·재해 현장을 돌아보는 여행을 의미하는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 자주 등장한다. 사람들은 일부러 비극의 현장을 찾아 공부하고, 애써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려 한다. 지난 2017년 TV 예능 프로그램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 출연했던 세 명의 독일 청년들이 한국의 유명 관광지 대신 역사관으로 바뀐 옛 서대문형무소를 방문, 나치와 독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광주 5·18 이야기를 따라가는 ‘오월길’ 안내 조형물.
◇5월 민중항쟁의 현장들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절대적 순간인 5·18 광주민중항쟁은 광주의 상징과 같은 것이다. 사람들은 광주하면, 무등산 등과 함께 5·18을 떠올린다. 광주시와 5·18재단 등은 5월의 현장을 보존하고, 또 기억하는 공간들을 꾸준히 만들고 여러 프로그램들을 운영중이다.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곳으로는 5·18 진압작전의 지휘부대였던 옛 505 보안부대 자리에 들어선 ‘5·18역사공원’을 들 수 있다. 계엄군에 끌려온 광주시민들이 고문을 당하고 영창에 갇히고 법정에서 재판받는 상황을 체험해 볼 수 있는 ‘5·18 자유공원’, 5·18문화센터와 무각사, 산책길등과 이어진 ‘5·18민주공원’도 있다.

국립 5·18민주묘지와 구묘역, 헬리콥터 사격 흔적이 남아있는 전일빌딩을 리모델링한 ‘전일 245’, 5·18민주광장 등이 모두 오월의 현장이다.

오월 광주를 직접 걸으며 만나는 프로그램도 있다. ‘오월길’이 대표적이다. ‘오월 인권길’, ‘오월 민중길’, ‘오월 의향길’, ‘오월 예술길’, ‘오월 남도길’ 등 5개 테마 18개 코스로 구성돼 있으며 광주 구석구석을 걷는 ‘오월길’은 5·18민주화운동 26개 사적지와 연계돼 있다.

가장 상징적 공간 중 하나인 옛 전남도청과 상무관 등은 원형 복원 문제와 함께 콘텐츠를 어떻게 꾸릴 것인가에 대해 심도 있고,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역사적인 현장인 옛 전남도청은 제대로 된 공간 구성 등을 통해 오월을 가장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장소가 되어야할 것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찾을 때면 민주평화교류원을 채울 5월 콘텐츠들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지는 이유다. 사실, ‘광주의 오월’을 기억하는 현장이나, 최근 새롭게 조성되는 공간들의 경우 기존 틀을 벗어나지 못해 아쉬움을 주기도 한다.

이제 본격적인 진상규명이 시작된 여수순천사건 역시 70여년전 역사를 어떻게 기록하고 기억해야할 지 숙제를 안고 있다.

시리즈 ‘도시가 역사를 기억하는 법’에서는 역사를 관통하는 아카이빙 자료들이 한 데 모인 박물관 등과 더불어 시민들의 일상 속으로 파고든 역사 현장을 찾아간다. 독일의 추모 동판 프로젝트 등 생활 속에서 숨쉬는 역사를 만나고 일방적인 가르침과 주입이 아닌, 문화와 예술적인 가치를 통해 스며들 듯 교훈을 전하는 사례를 둘러볼 예정이다.

이번 시리즈는 광주 역사와 결합한 문화예술 잠재력이 새로운 도시 경쟁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지 그 가능성을 모색해보는 기획이기도 하다. 5·18, 광주학생독립운동 등 민주화를 테마로 한 컨셉은 광주비엔날레 등 대규모 예술 행사가 열릴 때마다 전 세계 예술가들이 관심을 갖는 주제인 터라 확장성도 높다.

시리즈에서는 제주 4·3항쟁의 자취를 찾아간다. 이어 일제 강점기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과 지난 3월 개관한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남산 예장공원에 조성된 이회영기념관 등 역사 공간들을 둘러본다.

독일 베를린 유대인박물관에 전시된 ‘낙엽’은 다양한 표정을 담은 인간의 얼굴 1만여개로 이뤄져 있다.
◇폴란드·독일의 교훈

세월호를 기억하는 경기도 안산 ‘4·16기억교실’은 역사의 현장을 지켜내는 것, 삶 속에서 그 역사를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주는 곳이었다. 세상을 떠난 이들 모두의 이름을 호명하는 장소다.

해외 사례도 찾아가본다. 2차 대전 당시 가해자였던 독일이 역사를 기억하는 법을 찾아 독일로 떠난다. 나치당이 처음 시작된 곳인 뮌헨에서는 책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의 흔적이 남아있는 뮌헨 대학을 찾는다. 또 뉘른베르크에서는 나치 전당대회 현장을 비롯해 어떻게 독일이 나치를 기억하고 반성하는 지 살펴볼 예정이다.

베를린에서는 홀로코스트 기념물, 노베이하우스 등을 방문하고 무엇보다 그루네발트역 프로젝트 등 일상속에서 역사가 사람들의 삶에 어떻게 스며드는 지 살펴본다. 폴란드 여정은 바르샤바의 혁명과봉기박물관을 거쳐 거리의 흔적들을 찾고 크라쿠프의 아우슈비츠수용소로 이어진다.

폴란드 제 3의 도시 브로츠와프를 방문하는이유는 난쟁이들을 찾기 위해서다. 처음 저항의 상징으로 시작됐던 조형물이 이제는 도시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잡으며 전 세계인의 방문이 이어지는 현장이다.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도시의 풍경에 스며든 10가지 기념 조형물’을 쓴 백종옥 미술생태연구소장은 책 출간 후 가진 인터뷰에서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우리가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며 “무엇보다 생활 속에 밀착되는 것, 예술로 승화된 역사물들이 긴 생명을 가지고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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