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의 수련은 왜 빛을 잃었을까-강석준 보라안과병원 원장
2022년 07월 27일(수) 21:15
“침침하다. 하늘이 누렇게 보이며, 모든 것이 안개가 낀 것 같다.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나는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다” -1922년 클로드 모네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 중.

미술에 조예가 깊지 않은 사람이여도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모네’는 안과의사에게도 큰 의미가 있는 화가이다. 빛과 색채의 마법사라고도 불리는 이 화가의 말년 그림을 보면 색감과 묘사가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시력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모네는 점차 색을 구별하기 힘들고 사물을 정확하게 묘사하지 못하자 안과를 찾았고 양쪽 눈의 백내장을 진단받는다. 백내장 발병 후 그의 작품을 보면 형태가 일그러져 있고 다채로운 색을 표현하였던 젊은 시절과 달리 붉고 노란색 위주의 색채가 뭉뚱그려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붉고 노란 빛의 색은 백내장의 전형적인 색감으로, 눈에 들어오는 빛의 파장 중 푸른색 계통의 빛은 투과가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눈을 카메라로 비유했을 때 렌즈에 해당되는 부분을 수정체라고 하는데 백내장은 이 수정체가 뿌옇게 변하면서 사물을 보는데 말썽을 일으킨다. 사진을 찍을 때 렌즈가 깨끗하지 않으면 사진이 뿌옇고 흐리게 나오는 것처럼 수정체 또한 무색의 투명한 상태를 유지해야 깨끗하게 사물을 볼 수 있는데, 나이가 들거나 자외선 또는 외상 등으로 인해 수정체에 혼탁이 생기면서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을 제대로 투과시키지 못한다. 모네의 경우 화풍이 변한 시기로 보아 노인성 백내장을 의심해 볼 수 있다.

그의 대표작인 수련의 연작들을 시기별로 비교해 보자면 모네가 백내장으로 인해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했을지 짐작해 볼 수 있는데 색채의 구분이 어려워지고 형체를 선명하게 볼 수 없어진 모네는 절망과 우울증에 시달리며 수많은 그림을 찢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창작에 대한 끝없는 열정을 포기할 수 없어 1923년 83세의 나이에 백내장 수술이라는 당시에는 꽤나 도전적인 결정을 했는데 그가 살던 당시의 백내장 수술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현대의 백내장 수술은 눈에 2~3㎜가량 아주 작은 절개를 한 후 초음파나 레이저로 혼탁해진 백내장을 제거하고 환자의 눈에 맞는 인공 수정체를 삽입하게 된다. 수술시간도 10~20분이면 끝나는 비교적 간단한 수술로 절개 크기도 아주 작아 봉합도 필요 없다.

하지만 그 당시 백내장 수술은 눈에 12㎜나 되는 절개창을 만들어서 혼탁해진 수정체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실명의 위험이 높았고, 인공 수정체가 개발되지 않아 수술 후 수정체 없이 생활해야 했다. 수정체가 없는 눈은 거리에 따른 빛의 굴절 조절이 되지 않기 때문에 엄청나게 두꺼운 안경을 착용하지 않으면 선명하게 볼 수조차 없었고 수정체가 흡수하는 푸른빛이 수정체를 거치지 않고 망막에 그대로 닿아 시야가 푸르게 보인다.

실제 백내장 수술 후 그의 작품을 보면 푸른색이 많이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안경을 쓰면 좀 더 선명하게 보인다는 것을 빼면 여전히 색의 구분이 어려워 그가 화가로써 기대했던 부분이 개선되지는 않았지만 모네는 푸른색으로만 보이는 그 현상마저 그대로 표현하며 예술혼을 불태웠다. 그가 죽기 1년 전까지 붓을 내려놓지 않고 남긴 작품은 형체를 알아보기도 힘든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말년 작품은 추상화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오늘날의 백내장은 적절한 수술 시기만 조절하면 수술 후 백내장 발병 전과 같은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 인공 수정체는 혼탁해진 수정체를 대신하여 선명한 시야를 확보해 주고, 다초점 인공 수정체를 사용하면 원래의 수정체는 하지 못했던 노안 문제까지 교정해 줘 돋보기 없는 생활도 가능하게 한다.

모네의 작품을 일생 시기별로 보고 있자면 백내장 수술을 받지 않는 눈이 얼마나 시각적 변화에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다. 백내장으로 시력에 불편함이 있던 시기의 그림까지도 후세 미술에 영향을 미쳤던 그의 예술성으로 보아 모네가 현대에 태어나 백내장이 심해지기 전 수술을 받고, 깨끗한 인공 수정체로 교체했다면 그가 담아냈을 다채로운 빛은 어떻게 표현되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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