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판 뒤흔든 여성 소리광대 삶 그려
2022년 04월 11일(월) 21:00
광주일보 신춘문예 출신 김해숙
고창신재효문학상 수상 ‘비비각시’
장편 ‘금파’로 새롭게 출간
역사 모티브에 상상력 가미
국악인이자 가수인 송가인은 이 소설에 대해 “금파의 애절한 소리가 슬픔을 타고 올라 힘이 되어주니, 음악인으로서 이루 말할 수 없이 반가운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리의 영과 한이 오롯이 살아나 한 편의 아름다운 가사가 되었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소리광대의 삶을 다룬 소설에 대한 송가인의 평이 눈길을 끌었다. ‘선수’는 ‘선수’를 알아보는 법이기 때문에 송가인의 평은 예사로 다가오지 않았다. 어쩌면 소설 속 주인공의 기구한 삶은 저마다 길은 다르지만 다양한 인생을 사는 오늘의 우리 모습을 대변하는 것인지 몰랐다.

지난해 제1회 ‘고창신재효문학상’(5000만원)을 수상했던 김해숙 소설가의 장편 ‘금파’가 출간됐다. 당시 수상작품 제목은 ‘비비각시’. 그러나 출판사에서 주인공의 역동적인 삶을 부각하기 위해 소설 속 주인공 이름 ‘금파’를 책 제목으로 바꾸자고 권유했다.

당초 작품 제목이었던 ‘비비각시’는 유랑녀, 즉 떠돌아다닌다는 여자라는 뜻을 담고 있다. 아마도 이 부분이 작가로 하여금 판소리꾼이 꿈이었던 한 여성의 신산한 일생에 관심을 갖게 했을 터였다.

광주일보 신춘문예(2016) 출신이기도 한 김 작가는 “소설에 배경으로 나오는 동리정사(신재효의 집)를 비롯해 모양성은 어린 시절 많이 다녔던 곳이라 익숙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작가는 “동리정사 출신은 허금파 이전에 진채선이 있었지만 워낙 진채선이 유명한 나머지 허금파는 잊혀졌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작가에 따르면 허금파의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고창으로 이주한 것으로 돼 있다.(아마도 이것도 허구일 수 있다) 그러나 작가의 상상력은 빈 공간을 파고든다. 역사의 기록 한 줄에서 또는 한 단어에서 모티브를 얻어 상상의 집을 짓기 마련이다.

“금파가 소리를 위해 모든 것을 끊고 고창 동리정사에 왔지만 생각만큼 녹록지 않았어요. 지역의 세도가 주 영감이 추근대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동리정사에 후원을 끊거든요. 소리선생인 세종은 외모와 재주가 뛰어난 금파를 아낍니다. 어느 날 고종 황제 즉위 40주년 기념식 무대에 오를 소리꾼을 가리기 위해 소리 경연을 열지만 금파는 명단에 오르지 못합니다. 금파는 주 영감이 모종의 손을 쓴 것은 아닌가 예상을 하게 되지요.”

소설은 묘사가 생생하고 서사 전개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소재는 물론 등장인물을 작가가 완벽하게 장악을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소설적 상상력만으로는 풀어낼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지 않나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고창이 고향인 아버지가 소리꾼이었다”는 말이 돌아온다.

김 작가는 “비록 부친이 무명 시조창 꾼이었을망정 예술가로서의 삶은 그 자체로 존중해 드리고 싶었다”며 “사실은 오랫동안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가슴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가 판소리에 관한 소설을 쓰리라 작정한 것이 5년 전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조금 늦어졌다고 한다.

김 작가 외에는 ‘금파’라는 소설을 쓸 수 있는 소설가는 없을 것 같다. 대체로 모든 작가에게는 자신이 가장 잘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어느 날 문득 찾아오기 마련이다. 오래도록 내면에 드리워져 있던 모티브가 부지불식간에 ‘발효과정’을 거쳐 구체화되는 경우다. 김 작가에게 허금파의 소리인생이 그런 작품일 듯하다.

‘이날치’ 보컬인 안이호는 추천사에서 “‘금파’는 정말 고마운 작품이다. 이야기를 위해 존재를 내던진 이들을 온전히 이야기로 존재할 수 있게 해준 김해숙 소설가와 ‘금파’에게 이야기를 꿈꾸는 한 사람으로서 찬사와 감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2016년 문단에 나온 김 작가는 소설집 ‘유리병이 그려진 4번 골목’을 펴냈으며 2017년 ‘어쩔 수 없다’로 한국소설가협회 신예 작가에 선정됐다. 현재 학원을 운영하며 틈틈이 글을 쓰고 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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